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셜or패밀리 워커 Mar 27. 2023

아픈 손가락

첫째 아들의 성장통


 첫째 아들은 29개월이 되던 시기에 동생이 3명이나 생겼다. 삼둥이 임신 기간에 워낙 내 한 몸 추스르기도 힘들었던 터라 첫째와 맘껏 놀아주고, 사랑해주었어야 했는데 그 시기가 너무 짧아 미안할 뿐이었다. 아직 말도 잘 못하고, 기저귀도 떼지 못한 채 어린이집 종일반에 보내야만 했다. 


 출산 후에는 3주 동안 산후조리원에 가 있느라 큰 아이와 생이별을 했고, 아이는 그나마 남아있던 아빠와도 지낼 수 없는 형편이라 이 집, 저 집 맡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삼둥이 출산하기 전에 겨우 기저귀를 떼었는데 동생이 태어나고 다시 기저귀를 차기 시작했다. 


 아이가 변을 잘 보지 않고, 늘 참다가 속옷에 지리는 상황이 초등학교 1학년때까지 지속되었다. 어딜 가나 외출도 쉽지 않고, 늘 변을 지리고 다니는 아이와 옥신각신 하며 삼둥이 육아와 함께 지쳐갔다. 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이 문제가 학교생활에 너무 큰 지장을 줄 것 같아 큰맘 먹고 소아정신과에 찾아갔다. 

'유분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놀이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인데 놀이치료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알게 된 OOO아이존을 방문했다. 수급자나 차상위계층은 치료비가 무료였다. 의사의 진단서와 각종 검사를 통해 1년 동안 무료로 모래놀이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상담소장님과 면담을 했다. 


"치료를 시작하게 되면 엄마와 같이 올 수 있나요?"

"네, 가능합니다."

"엄마와 자녀가 치료센터에 1:1로 함께 다니는 것만으로도 치료효과는 50%입니다."

이 말을 듣고 반신반의했다. 같이 다니는 것만으로도 치료효과가 있다는 게 말이다. 그러나 소장님의 말씀은 바로 현실이 되었다. 첫째가 9살이 되는 해 1월에 치료를 시작했는데, 치료를 시작함과 동시에 유분증 증상이 바로 없어졌다. 치료가 시작도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매주 화요일 학교 앞에서 첫째를 만나 간식을 먹고 치료센터로 가는 데이트가 시작되었다. 그 시기에 여러모로 매우 바쁜 시기였으나, 첫째와의 약속은 꼭 지키려고 1년 동안 웬만하면 빠지지 않고 열심히 치료를 다녔다.  아이도 치료센터에 다니는 걸 좋아했고, 특히 치료 선생님을 너무 좋아했다. 1년의 치료를 잘 마치고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을 나름 표현하며 선물도 했다. 그렇게 큰 아이의 치료는 끝났다. 


 지금 그 아이는 거뭇거뭇 콧수염이 나는 중학교 1학년이 되었다. 방문을 닫아버리고, 엄마의 잔소리를 듣기 싫어하는 사춘기가 시작되었다. 첫째 아이에게 바랄 수 있는 게 없다. 다만 바라는 건 그저 건강하게만 커다오밖에...


 2007년 OO위스타트 마을에서 만난 OO이라는 아이가 생각난다. 그 아이는 그 당시 3학년이었는데 센터에 변냄새를 풀풀 풍기며 오곤 했다. 옷을 갈아입히려고 하면 질겁을 하며 도망 다니던 아이였다. 그 아이는 엄마가 없이 할머니가 키우던 아이였다. 그때는 몰랐다. 그 아이가 왜 변을 지리고 다니는지 말이다. 첫째 아이처럼 기저귀를 땔 때쯤 엄마의 부재로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했을까? 엄마가 있어도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나의 아픈 손가락인 첫째 아들처럼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자나깨나 말조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