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작가 Nov 11. 2023

인스턴트식 인간관계를 좋아합니다.

나와 맞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방법

한 번은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나의 인간관계에 대하여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인간관계를 오래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나도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나에 대해 어떻게 이렇게 잘 꿰뚫어 설명하시는지... 놀라웠다. 맞는 말이다. 나는 예전부터 인스턴트식 짧은 인간관계는 꽤 잘 만드는 편이다. 하지만 이 인간관계를 몇 년 몇십 년 오래 유지하는 데는 잼병이다. 그래서 내가 여행을 좋아하나 보다. 여행에서 만난 인연은 대부분 여행하는 그 순간만 유지되는 일회성 인간관계를 만들기에 편한 상황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보통 그 일회성 인간관계는 따뜻한 추억으로 남는다. 평생. 그게 좋았나 보다. 조금 아쉬울 수 있으나 평생 따뜻한 추억으로 남을 수 있으니까.


나는 도대체 왜 그럴까? 생각해 본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겁이 많아서’이다.

처음에는 좋았던 이 관계가 시간이 지나면서 안 좋은 관계로 스트레스를 받고 상처를 받는 관계로 변하는 게 무서워서다. 고로 나는 인간관계 쫄보. 상대방이 의도를 했던 안 했던 내가 그 사람에게 상처받는 것이 무서워서 그냥 피하고 있는 거다. 이런 찐다 쫄보 같으니!


또 정신과 의사 선생님 말씀이 생각난다.

“마음의 벽이 얇은 사람은 사람들이 던지는 돌에 쉽게 깨지기 마련입니다. 마음의 벽이 두꺼운 사람은 아무리 돌을 맞아도 쉽게 깨지지 않습니다”

첫 진료 시 하신 말씀이다. 이 말을 듣고 사실 화가 났다.

‘아무리 단단한 유리벽이라도 아주 오랜 기간 수많은 돌을 지속적으로 맞으면 깨질 수밖에 없는 거 아닌가? 돌을 던지는 사람들이 문제인 거 아닌가?’

라고 생각하며 씩씩거렸지만 와장창 깨진 유리벽 마음을 가진 쫄보는 찍소리도 못하고 일기장에 끄적거릴 뿐이었다.

지금은 선생님의 말씀을 이해한다. 그래서 깨진 유리벽을 녹여 더 강한 유리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서울에서 일을 하던 때의 내 인간관계라고는-

가족

남자친구

소중한 동네 친구 한 명

멀리 떨어져 있는 고등학교 친구들

지옥 같은 속에서 악마라 표현했던 그들

이것이 전부였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든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특히 일을 하는 동안 단순히 일 적으로만 지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매우 지쳐있었기에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세계여행을 하고 있는 지금의 나의 인간관계는 어떨까?


우선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남자친구인 '와노보노'가 있다. 인간관계와 연인관계가 약간 다르다고 느낄 수 있으나 어찌 되었든 남자친구 또한 인간임은 같기 때문에 연인관계 또한 인간관계인 것은 마찬가지다.

나는 와노보노를 만나기 전 8년간 연애를 하다 헤어진 후 이 '연인관계'에도 많은 상처와 회의감을 느꼈다. 나의 20대 시절 인간관계에 있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이 관계가 끝이 났을 때의 상처는 사회에서 받은 상처와는 또 다른 느낌의 고통이었다.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고 살아가기 위해 힘을 내려고 하는 중 와노보노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 함께 세계여행을 하고 있다.우리는 어떻게 만나게 되었을까?


좋아하는 곳에 가면 그것을 함께 좋아하는 나와 맞는 사람을 만날 확률이 올라간다.

바다를 좋아한다면 바다에 가면 나와 같이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가능성이 높다.

산을 좋아한다면 산에 갔을 때 산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내가 '울릉도'에서 내 남자친구를 만났다.

바다와 산을 좋아하고 섬을 좋아하는 공통점으로 인해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와서 만났다.

이것에는 어느 정도 엄청난 운도 따랐으리라 생각한다. 실제로 나는 3개월 전부터 울릉도행 배표와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고, 남자친구는 강릉에서 딱 하나 남아있던 울릉도행 배표를 구하고 예정에 없던 게스트하우스를 오게 되었다. 그곳에서 만난 첫날부터 마지막날까지 우리는 함께 여행했다.

혹시나 솔로를 탈출하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조심스럽게 조언해 본다.

본인 스스로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을 알아내고 그 좋아하는 것을 혼자 마음껏 즐기고 있다면 자연스럽게 그 속에서 소중한 인연을 만날 가능성이 높다고-


함께 세계여행을 하고 있는 와노보노와의 인간관계를 제외한 현재 나의 인간관계는 어떤가?


한국에 있는 가족, 친구들의 경우 종종 카톡으로 연락을 하고 있다. 세계여행을 시작하면서 달라진 점은 서울에서 일을 할 때와 비교하였을 때 가족들과의 관계가 더 좋아졌다는 것이다. 우울증이 심해지면서 죽고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들 때마다 생각의 마지막은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존재에 대한 분노였다. 왜 하필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 이런 고통을 느끼게 한 것인지. 계획되어 있던 일도 아니고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심지어 따뜻한 가정환경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더더욱 분노하였다. 그러다 보니 결국 가족들과는 연락을 단절하게 되었다.

와노보노를 만나고 그의 도움으로 세계여행을 떠나기 전 함께 부모님을 만나 뵙게 되었다. 세계여행을 하며 느리지만 조금씩 마음의 평화가 생기면서 부모님에 대한 분노감이 많이 사라졌다. 그만큼 우울증이 좋아지고 있다는 것이겠지?


세계여행을 하면서 직접 만나게 되는 인간관계는 어떨까?


나는 사람을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생각해 보니 나는 '사람'자체가 싫은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받는 '상처'가 싫었던 것이다.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하지만 사람에게 받는 상처에 대해 극도로 무서워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인스턴트 인간관계'를 잘하는 것 같다.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사실 두 번 다시는 못볼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더 솔직하고 편안하게 대할 수 있다. 함께 하는 시간 자체가 길지 않기 때문에 상처를 받을 시간도 딱히 없다. 그 시간에 상처를 주는 사람이라면 피해야 하는 사람이겠지. 인스턴트 인간관계에서 나의 마음의 유리벽은 잠시나마 성질이 변하는 것 같다. 어차피 이다음에 볼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그것 만으로 마음이 편한 것이다. 그렇다고 상처를 안 받는 것은 아니지만 견뎌내는 힘이 강해진다.


그렇다면 태어나서 죽기 전 까지를 '여행'이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어차피 인간은 모두 결국에는 죽는다. 어떤 인연을 만나든지 내가 죽든 그 인연이 죽든 결국 관계는 끝이 난다. 이렇게 생각하면 나의 '인스턴트 인간관계'를 조금 더 오래 발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을 만날 때 결국 언젠가 이별이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면 그 순간순간 내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낼 용기가 생긴다. 그리고 생각보다 별거 아닌 일에는 상처를 덜 받게 된다.


죽음에 대한 생각을 깊이 해본 사람은  강한 사람이  수도 있다. 죽음까지 생각해 봤기 때문에 어떤 것에 대한 '도전' 해볼 용기가 생길  있다고 생각한다.  도전이 나에게는 세계여행과 인간관계다. 죽음에 대한 생각의 끝이 자살이 아니라 앞으로 남은 삶에 용기를 내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나도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인생을 여행이라 생각하면 내 인생을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동물이 좋아서' 수의사를 선택한 결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