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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작가 Nov 06. 2023

'동물이 좋아서' 수의사를 선택한 결과

나의 상처 이야기 : 직업을 선택하는 기준

어렸을 때부터 동물을 좋아했다. 아마도 시골에서 1년간 유치원을 다녔던 적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동물들과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외할머니집에는 많은 동물들이 있었다. 닭, 토끼, 개, 소... 나에게는 또래의 친구들과 노는 시간보다 동물들이랑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래서 내가 사회성이 떨어지는 걸까?'라는 생각도 든다. 한참 사회화 시기인 유치원 시절 나에게 남아있는 기억의 조각은 동물들과 논 것, 혼자서 흙장난을 했던 것, 외할아버지와 다방에 간 것...(?!) 또래의 친구와 즐겁게 놀았던 기억은 남아있지 않다.


 이렇게 시골에서 혼자 보냈던 1년의 시간이 나에게 영향을 준 덕분일까? 나는 자연스럽게 직업을 선택할 때 '수의사'라는 목표를 꿈꾸게 되었다. 동물 중에서도 개, 고양이를 좋아한 나는 수의사 중에서도 '소동물 수의사'로 진로를 정했고 졸업 후 바로 동물병원에서 일하게 되었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다시 외할머니와 지내게 되었다. 시골 외할머니댁에서 1년간 유치원을 다녔던 꼬맹이가 다 커서 이제는 서울에서 지내고 계시는 외할머니 집에 얹혀살며 동물을 고치는 일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만 들으면 참 해피앤딩인 무지갯빛 인생 같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어떤 직업이든 그 직업군이 아닌 사람들에게 보이는 이미지와 그 실상은 참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생각했던 동물병원에서 아픈 동물들을 치료해 주는 수의사선생님 또한 직접 겪어보니 이것을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동물병원 수의사선생님이라고 하면 으레 흰색 가운을 걸치고 청진기를 목에 두르고 따뜻한 눈빛으로 다정하게 아픈 동물을 치료하는 모습이 상상되지 않는가? 실상은 흰색 가운에 똥, 오줌, 털이 덕지덕지 묻기 마련이고 심지어 항문낭액이 얼굴에 튀기도 한다. 항문낭액이 어떤 냄새가 나는지 아는 사람만 아마 짐작이 갈 것이다. 이런 것들은 사실 그냥 옷을 갈아입고 씻으면 해결이 된다.


동물병원에 온 개, 고양이들을 진료하는 일이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이들은 왜 이곳에 왔는지 이해를 전혀 할 수 없고 자기 스스로 온 것도 아니다. 그냥 보호자에게 끌려 온 것이다. 또한 아픈 개, 고양이들은 더 예민해져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태에서 갑자기 끌려온 개, 고양이들이 협조적으로 검사에 임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드물게 정말 천사가 아닌가 하는 개, 고양이도 있다). 검사는 또 어떤가? 어린아이들 병원에 데려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동물은 사람을 정말 심각하게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단순히 손, 팔에 흉터만 남은 정도였지만 얼굴에 큰 상처가 난 사람, 심각한 인대 손상으로 오랜 기간 후유증을 앓게 된 사람도 있다. 아마 내가 알지 못한 더 심각한 부상도 있을 수 있다.


처음에는 사실 다친 것이 아무렇지 않았다. 그냥 그럴 수 있지... 내가 조심 안 한 게 문제지... 그렇게 생각했다. 일을 시작하고 1년, 2년, 3년.... 6년... 시간이 지날수록 요령이 생겨 처음만큼 많이 다치지는 않았다. 나름 다치지 않는 것에 대한 약간의 자부심도 있었다. 초보들이나 다치는 일이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지만 아무리 조심을 해도 다치는 경우가 생기는데 다친 상처보다 마음이 너무 서러워져 혼자 있을 때 운 적도 있다. 수의사도 동물을 치료하기 전 그냥 한 사람에 불과하다. 다치면 아프고 서럽다. 나는 특히 더 그랬다. 아무래도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기 때문에 이러한 물리적인 상처가 하나의 트리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일 자체는 견딜 수 있었다. 내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다. 어렸을 때 또래의 아이들과 함께 노는 것보다 혼자 동물들과 노는 것이 익숙했던 아이는 커서 수의사가 되었지만 이는 동물과의 관계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사람'이 있었다. 나는 이 '사람들과의 관계'가 너무 어렵고 힘들었다. 개, 고양이 말고 내 주위의 모든 사람이 어렵고 힘들었다. 차라리 나를 상처 내는 개, 고양이가 더 좋았다. 고백하자면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그 속에서 만난 동물들에게 위로받기도 하였다. 동물들이 낸 상처는 눈에 바로 나타나고 본인을 지키고자 했을 뿐 악의가 없다는 것도 안다. 또한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나아지는 것도 보이고 아프지 않게 된다.

하지만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눈에 보이지도 않아서 상처가 났다고 말을 할 수도 없다. 쉽게 그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알아봐 주지 못한다. 심지어 본인 스스로도. 그리고 악의가 있는지 없는지 정확히 알기도 어렵다. 또한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낫고 있는지 확인하기도 어렵다. 다 나았다고 생각했지만 문득문득 생각이 나고 꿈에도 나오면서 한 번씩 나를 괴롭힌다.




나는 동물이 좋아서 수의사를 선택했다. 하지만 결국 '우울증'을 앓게 되었고 수의사를 그만뒀다.

이제 나는 그냥 내 개 '칠갑이'의 보호자일 뿐이다.


고등학생 때 블로그를 했었다. 블로그명은 'I must become vet'이었고 수능을 본 뒤 수의대에 합격한 나는 그 첫 발자국을 내디뎠다. 그게 너무 신나고 벅차서 블로그에도 글을 올렸다. 그리고 꽤 많은 수험생들에게 연락을 받았다. 대부분은 나처럼 동물을 좋아해서 수의대에 가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었다. 그 당시의 나는 그런 학생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혼자 뿌듯해했다. 그 시간이 행복했다.


일을 한 지 3-4년 정도가 되었을 때 정신적으로 매우 고통스러웠던 날 저녁에 우연히 블로그에 다시 들어간 적이 있었다. 미처 내가 못 봤던 댓글을 읽고서 오열을 하지 않을 수없었다. 수의사를 그만두려 다짐했던 나를 위로해 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조금 더 힘을 내서 일할 수 있었다.


지금의 나라면 수의대에 가고 싶다고 나에게 조언을 구하는 학생들에게 뭐라고 말을 할까? 똑같은 말을 하겠지만 그때의 나처럼 마냥 희망차게 말을 건넬 수는 없을 것 같다.


신입생 시절 얼핏 흘려들었던 선배의 말이 생각난다.


동물을 좋아하면 오히려 수의사로 일하는 게 힘들다


이 말을 이제야 내 나름의 해석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것은 좋다. 나는 동물을 좋아하고 치료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수의사'로 일을 나름 오래 버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는 단순히 그것만이 전부가 아님을 깨달았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나와 맞지 않은 그 직업의 이면까지도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그 이면을 직접 겪지 않고서 알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혹시나 나처럼 마냥 동물이 좋아서 수의사를 꿈꾸는 학생이 있다면 이 글이 조금이나마 직업을 선택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세계여행이 끝난 뒤의 나는 어린 시절 '수의사'를 꿈꿔왔던 그 간절한 마음을 한번 더 가지고 어떠한 꿈을 또 꿀 수 있을까?

아직까지는 두렵다. 어떤 선택을 하든 수의대에 합격을 하고 나와 같은 꿈을 꾸는 학생들을 응원해 줬던 것처럼 스스로를 응원해주고 싶다.




언젠가 새로운 꿈이 생긴다면 나에게도 해주고 싶은 응원의 말
2010년 꿈을 이루는 첫발을 성공하고 가장 행복했을때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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