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에 대한 생각을 스리랑카 스리 파다에서 하다.
스리랑카로 오기 전 세계테마기행 스리랑카 편을 보며 스리랑카에 대해 알아봤다. 옛날부터 막연하게 한번 꼭 가보고 싶다고만 생각했던 나라인데 세계테마기행을 보고 더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가장 큰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스리랑카의 '종교 문화'이다.
스리랑카는 나라의 70%가 불교다. 그 외에 힌두교 12%, 이슬람교 9.7%, 기독교 7.4%가 있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불교사원에 있는 힌두교신들이다. 불교에서는 소원을 비는 것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소원을 빌고 싶을 때 이슬람신들에게 빈다고 한다. 기독교에서는 지옥에 떨어질 일이라며 욕을 했을 것이다. 인간은 무언가에 의지하고 소원을 빌고 싶어 하는 것을 인정해 주는 것이 인상 깊었다.
스리랑카 여행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은 ‘스리 파다(Sri Pada)’이다. 다른 말로는 아담스 피크(Adam's Peak)라고 한다. 이곳이 유명한 이유는 정상에 있는 발자국 때문이다. 아주 재미있는 사실은 같은 발자국을 보고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발자국, 기독교와 이슬람교에서는 아담의 발자국, 힌두교에서는 시바신의 발자국이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생긴 발자국인지 너무 궁금해졌다.
스리 파다 정상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오전 12시쯤 일어났다. 3-4시간 밖에 잠을 못 잔 상태였다. 헉 비가 오는 소리가 들린다. 걱정을 하며 창문을 열어 밖을 확인하니 아니다 다를까 비가 퍼붓고 있었다. 한 시간을 고민하다 일단 입구까지는 가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오전 1시쯤 우비를 챙겨 입고 숙소를 나왔다. 입구 쪽으로 걸어가니 많은 상점에 불이 켜져 있었다. 상점 앞에는 비를 피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 사람들에게 스리 파다에 오르는 게 위험하지는 않은지 물어봤다. 사람들은 모두 그 질문 차제가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괜찮다고 대답했다. 말보다는 그 표정에 안심이 되었다. 우리와 함께 오르는 현지인들을 보니 대부분 슬리퍼차림이었다. 심지어 맨발로 오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노인부터 어린아이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오르고 있었다. 올라가도 괜찮을까 걱정을 했던 나 자신이 조금 부끄러워졌다.
신발과 양말이 젖어 챙겨 왔던 크록스로 바꿔 신었다. 크록스를 신고도 충분히 오를 수 있었다. 비도 조금씩 그치기 시작하고 너무 더워 비옷도 벗어던져버렸다. 가벼운 마음으로 신나게 올랐다. 새벽부터 공복에 유산소운동을 하니 상쾌해지는 기분마저 들었다. 이 좋은 기분은 정상까지 함께 가지 못했다. 우리가 스리 파다를 오른 시기는 스리랑카의 명절이었다. 그리고 이 기간에 정말 많은 스리랑카 사람들이 스리 파다를 오른다. 이 사실을 한국인 여행자가 미리 알기란 어려웠다.
어느 순간부터 계단을 한 칸 오르기 위해서는 한참을 기다려야만 했다. 마치 어린이날에 놀이동산에서 가장 유명한 놀이기구를 기다리는 줄과 같았다. 두 줄로 서있기도 좁은 길이었다. 왼쪽에는 내려오는 길이 있었는데 내려오는 사람은 많이 없었다. 명절날 고속도로의 모습과 같았다. 가끔 어떤 사람은 내려오는 길로 올라가기도 했다. 역주행을 할 만큼의 심장을 가지고 있지 않은 우리 둘은 한참을 현지인들 속에 정체되어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점점 일출 시간이 다가왔다. 마음이 조급해지면서 갑자기 혼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우리는 비자도 사고 와서 돈을 쓰는 관광객이 아닌가? 믿는 종교도 없고 그저 일출을 보고 싶어서 이렇게 일찍 온 것인데... 일출도 못 보고 계속 여기 서있는 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눈 꼭 감고 역주행을 하기로 했다. 한 친절한 현지인은 일출 보려면 빨리 올라가라고 말해주셔서 더 힘이 났다. 일출을 보겠다는 마음으로 높은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하지만 정상까지 가기란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그래도 해가 보이는 곳 까지는 올 수 있었고 일출을 볼 수 있었다. 엄청난 인파에 낀 상태로 보느라 힘들었지만... 그래도 봤다.
숙소를 나온 지 6시간이 넘어서야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정상에 올랐지만 발자국을 보기 위해서는 또 기다려야 했다. 드디어! 그 발자국이 있다는 1평 남짓 되어 보이는 공간에 들어갈 수 있었다. 너무 줄이 길어서 5초 정도 있었는데 뭐가 발자국인지 찾을 수 없었다. 얼핏 알아들은 바로는 밑에 깔려있는 천 아래에 있다는 것 같은데... 가려놓은 건가? 허탈했다. 내가 열심히 발자국을 찾는 동안 현지인들은 진심을 담아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올라왔던 그 계단을 다시 내려가야 한다. 허탈한 마음으로 터벅터벅 내려가고 있는데 6-7살 정도로 추정되는 남자아이를 안고 뛰어 내려가는 가족을 봤다. 그리고 15-16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탈진한 것 같은 모습도 보았다. 너무 힘들어하는 모습에 안쓰러웠다. 하지만 가족들은 내려갈 생각은 하지 않는 듯해 보였다. 둘 다 미성년자였다. 아니 이게 뭐라고 이렇게 까지 올라야 하는 건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아이들이 정말 원해서 여기를 오르는 것인지 부모의 욕심으로 오르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웠다. 심지어 갓난아기를 안고 오르는 젊은 부부도 있었다.
나는 미성년자일 때 엄마에게 종교 강요를 당했다.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다. 그래서 이 모습을 보고 더 화가 난 것 같다. 그 당시의 엄마가 오버랩되면서 이들의 부모가 너무 미웠다. 물론 부모의 마음은 이해한다. 이 힘든 곳을 오르는 목적 자체가 가족들의 평안을 위해서일 테니까. 아무리 그래도 젊은 우리도 이렇게 힘들어한 이 길을 꼭 어린아이들이 함께 올랐어야만 했을까? 그러다 큰 일이라도 나면? 신의 뜻이었다고 생각하며 죄책감을 덜을 것 같아 끔찍하다.
미성년자에게 종교를 강요하는 행위는 정신적 학대와도 같다고 생각한다. 종교를 믿을지 말지, 믿을 것이라면 어떤 종교를 믿을지는 스스로 고민해서 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종교를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는 악마가 있기 때문에 더더욱 성인이 되고 나서 결정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본인의 종교를 강요하는 것은 결국 본인 자신을 위한 행위이다. 아니면 그 종교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인물이 본인의 이득을 위해 그렇게 만든 것일 수도 있다. 원치 않은 상대에게 그리고 미성년자에게 강요하는 것은 민폐이자 정신적 학대이다.
나는 어렸을 때 정신적 학대를 당했고 그로 인해 특정 종교에 대한 혐오감이 생겼다. 한국에 있었을 당시에는 함께 지내던 할머니가 찬송가를 부르는 소리에 두통이 몰려와 참을 수 없었다. 길에서 전도를 하는 사람들을 쳐다보기도 싫었고 속으로 욕을 했다. 어렸을 때 엄마의 방언소리가 나에게는 귀신소리 같았다.
세계여행을 하며 의도하지 않게 다양한 종교를 접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종교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고 종교에 대한 나만의 가치관을 세울 수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던 것보다 종교 강요로 인한 상처가 꽤 컸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이 상처가 회복되어 혐오감이 어느 정도 희석되었으면 좋겠다. 모든 종교를 존중하지만 남에게 강요하거나 피해를 주는 종교인들은 존중하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