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의사였다
내가 초등학생 때 기억하는 노란색 수첩이 있다. 첫 장을 들여다보면 맨 위에 '나의 버킷리스트'라고 적혀있다. 그리고 번호가 매겨져 있다. 몇 번까지 번호가 있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1번과 2번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1,2번의 순서는 기억이 안 나지만 수의사와 세계여행이라고 적혀 있다. 어렸을 때 누가 딱히 알려준 기억은 없는데 버킷리스트라는 것을 나는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본가의 집을 뒤져서 이 수첩을 발견할 수 있다면 얼마나 반가울까 싶다.
구체적으로 수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본 것은 중학생이 되어서다. 중학교 1학년 도덕 시간 선생님께서는 숙제를 내주셨다. 전지에 자신의 인생계획서를 구체적으로 작성해오라는 숙제였다. 나는 그날 문구점으로 가서 노란색 전지를 500원에 샀다. 그 당시 인생계획서는 직업을 선택하고 그 직업을 가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주된 내용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인터넷 검색창에 '수의사 되는 방법'을 검색한 뒤 수의학과에 입학을 해야 한다는 사실과 수의학과는 전국에 10개의 대학에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그 문턱이 높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공부를 잘하지는 못했지만 누군가 내게 어느 대학에 가고 싶냐고 물으면 나는 대학은 상관없고 수의학과에 입학하고 싶다고 말했다. 심지어 고등학생 때 운영했던 블로그 또한 이름이 'I MUST BECOME VET'으로 해놨다. 이것은 엄마의 영향이다. 엄마는 어렸을 적 꿈이 약사라고 하셨다. 하지만 누군가 꿈이 무엇인지 물어봤을 때 약사라고 말하지 못했다고 하셨다. 혹시나 약사가 되지 못했을 경우 너무 창피하니까... 하지만 그때 용기 내어 나는 약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면 더 열심히 노력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남는다고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가 해준 이 이야기가 내가 수의사가 될 수 있도록 도움을 많이 주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이 되어 담임선생님과 처음으로 상담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수의대에 갈 수 있는 성적이 안되었다. 하지만 어느 대학에 입학하고 싶냐는 고3 담임선생님의 질문에 나는 1초의 고민도 없이 수의학과가 있는 대학교라면 어디든지 상관없다고 말씀드렸다. 담임선생님의 그다음 대답이 기가 막혔다. "네가 그렇게 가고 싶다면 재수, 삼수 아니 사수를 해서 가면 된다" 담임선생님의 말투에 짜증이 섞였거나 인상을 쓰셨거나 하지는 않으셨다. 그냥 현실적으로 말씀해 주신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청나게 T 성향이 강하신 분이었다 보다. F 성향이 강한 나는 그 말씀이 아직까지도 조금 상처로 남아있다. 하지만 수능 다음날 나의 성적을 확인한 담임선생님은 바로 수의대에 갈 수 있다는 말만 해주셨다. 보통 성적이 가능하면 과 상관없이 이름이 있는 대학에 보내려고 하는 걸 알고 있다. 특히나 사립고등학교였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지만 담임선생님은 첫 상담 때 나의 말을 기억해 주셨다. 이건 감동이기는 하다. 아빠 또한 수능 성적이 나오자 엄마에게 내가 교대에 입학하여 선생님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을 했다고 하셨다. 나에게는 한 번도 말씀하신 적 없다. 계속해서 내 꿈은 수의학과에 가는 거라고 말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재수를 하지 않고 수의대에 입학을 했다. 휴학 한번 없이 6년 대학 생활을 했고 국가고시에 합격을 했다. 거의 졸업과 동시에 동물 병원에서 일을 시작했다. 일을 하는 7년의 시간 동안 서서히 내 마음의 병은 점점 커졌고 나는 그 당시 이것을 알지 못했다.
현재 나는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으며 수의사를 그만둔 백수다. 나의 어릴 적 노란색 수첩에 적혀있는 버킷리스트는 한 개 지워졌고 세계여행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