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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작가 Oct 13. 2023

D-DAY

내가 죽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3개월, 6개월, 9개월 단위로 고비가 찾아온다는 말이 있다. 나 역시 그랬다. 아니, 처음에는 그냥 남들 다 있는 그런 고비인 줄 알았다. 그래서 이 악물고 버텼다. 3개월만, 6개월만, 아니 경력을 인정받고 퇴직금을 받으려면 1년까지만 버티자... 그렇게 버티다 버티다 아픈 것이 익숙해졌던 것일까? 아니면 미련했던 것일까? 그렇게 나를 병들어 가게 하면서 7년의 시간이 흘렀다. 마음이 병든 나는 몸까지 병이 나서야 심각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몸의 증상은 이러했다. 스트레스성 장염, 방광염, 부정출혈, 갑자기 시도 때도 없이 심장이 엄청 빠르게 뛰는 증상, 잠을 못 자거나 악몽을 꿨다. 쉬는 날에도 계속 하루종일 생각하기 싫은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아 고통스러웠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빈도수도 늘어났다. 예전 내 일기장을 들춰보면 지옥 같다는 표현이 많다. 이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게 해 줬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어떻게 나는 7년이라는 시간을 버텼을까?


1. 어린 시절의 나

막 수의대에 들어가서 신입생이었던 시절 어떤 선배님의 말씀이 기억에 난다. "넌 왜 수의대에 왔어?"라는 물음에 나는 망설임 없이 "수의사가 되고 싶어서요"라고 말했다. 그 선배님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다. 이제 와서 말하지만 많이 억울했다. 끝까지 믿어주시지 않았기에... 앞에 이야기를 했듯 나는 어렸을 때부터 꿈이 수의사였다. 심지어 초등학교 6학년을 졸업할 때 담임선생님이 모든 반 아이들에게 짧게 한 마디씩 하라고 하시면서 동영상을 찍었는데 나는 무슨 패기였는지 "얘들아~ 내가 동물병원 차리면 꼭 와!"라고 했다. 생각은 참 단순했다. 동물이 좋아서. 순수하게 동물이 좋아 수의사가 되고 싶어 못하던 공부를 뒤늦게 시작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알았다. 수의사가 되려면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것을. 그렇게 하기 싫은 과목까지 수의대에 가기 위해 필요하다면 열심히 공부했고 그것을 결국 이뤄냈던 과거의 나. 너무 힘들어서 일을 그만두고 싶을 때 해맑게 친구들에게 동물병원 차리면 오라고 웃으면서 말했던 나의 모습을 떠올리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지금 현재의 내가 부끄럽고 비참하고 초라해졌다. 하고 싶은 일을 드디어 하게 되었는데 이 일을 하면서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다면 어떤 마음일까? 참 아이러니하지 않나? 꿈을 이뤘는데 죽고 싶다니. 이래서 직업이 꿈이 되면 안되는 것이다.


2. 감사한 사람들

고통 속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동물을 매일   있다는 것은 나를 버틸  있게  주었다. 가끔 정말 치명적이게 귀여워서 사심 가득하게 예뻐했던 강아지, 고양이들이 있다. 단순히 보는 것을 떠나 아픈 동물을 내가 맡아서 치료를 하고 나았을 때의  뿌듯함은 이루 말할  없다. 하지만 아무래도 생명체이다 보니 모든 아픈 동물이  나을  없다. 치료를 하다 죽거나 안락사를 선택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결과가  좋은 경우에도 나에게 감사하는 말씀을 해주시는 분들이 계셨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감사 인사를 들을  어찌해야   몰랐다. 눈물을 참을  없었다. 너무 부끄럽지만 많이 울었다. 나는  상황에서 어떤 감정이었을까...? 내가 위로를 해드려야 하는 상황에 내가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사람에게 상처받은 마음을 사람에게 위로받았다. 이런 분들 중에는 편지를 써주시는 분들이 있었다. 사는  힘들 때마다 읽었다. 일부러 바로 읽지 않고 아껴놨다가 힘들  꺼내보기도 했다. 지금도 보관하고 있고 아마 평생 보관할 것이다. 사실 이렇게 나의 아픈 과거를 회상하면 아직도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나지만 마지막에 이분들이 생각나면 정말  위로를 받는다. 염치도 없이 아직까지도 이분들에게 나는 위로를 받고 있다. 감사하다.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을 살리는 것은 사람의 힘이 크다고 느낀다.


3. D-DAY

나의 노란색 수첩에 적혀있는 수의사와 1,2위를 다투던 세계여행의 꿈이 있었다. 세계여행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여행 자금을 모으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한다. 사회초년생부터 이러한 목표가 있어서인지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심지어 핸드폰 요금도 2만 원대가 나왔다. 아낄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아끼며 모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지옥 같은 시간을 버티기에는 부족했다. 세계여행은 최소 몇 년 뒤 가능하였기에... 특히 중간에 코로나로 인해 더 늦춰졌다. 그래서 마련한 나만의 방법은 여행 디데이를 정해놓는 것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여행 갈 날을 정해놓고 어플로 d-day를 설정해 놓는다. 그러면 하루하루 다가오는 디데이를 기다리면서 버틸 수 있었다. 이 디데이는 최대한 여러 개 만들어 놓는다. 그래서 너무 힘들 때쯤 이제 며칠만 버티면 떠난다!라는 생각으로 있는 힘을 쥐어짜 버틸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마지막 디데이가 '세계여행'이 된 것이다. 세계여행을 떠나면 가고 싶은 곳이나 하고 싶은 것들을 적는 것 또한 내가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었다. 생각해 보면 쉬는 날 여행계획을 세우거나 세계여행에 대한 생각을 하는 시간만큼은 행복했던 것 같다. 세계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나는 죽을 수 없었다. 모아놓은 돈이 아까워서라도 죽을 수 없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 때 그래도 세계여행은 다녀와서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흔히 누군가 세계여행을 떠난다고 하면 마냥 신나게 놀고먹고 즐겁게 지낼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나는 살기 위해 떠났다. 이 마지막 D-DAY의 끝이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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