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작가 Oct 19. 2023

인도에서 머리를 밀다.

디레디레

언젠가는 한 번쯤 머리를 밀어보고 싶은 생각은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지내며 머리를 미는 것은 남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나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세계여행을 시작하면서 여행 중 머리를 밀어보고 싶었고 자연스럽게 '인도'에서 머리를 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는 이상하게 머리를 밀 용기가 샘솟는 나라다. 참 매력적인 이 나라... 인도 리시케시 타포반에 도착한 날 숙소를 구하기 위해 걸어 다니다 우연히 지나친 미용실에서 머리를 밀기로 했다. 미용실이라고 하는 게 맞는지 살짝 망설였다. 1평 정도 되는 공간일까? 오직 딱 한 명의 손님을 위한 자리가 있다.


내 차례가 되어 의자에 앉았다. 거침없이 내 머리를 잘라내기 시작하셨다. 환경은 열악했으나 미용사 선생님의 가위질 소리만큼은 서울 미용실 못지않았다. 처음에는 너무 짧게 다 미는 것이 두려워서 일단 너무 짧지 않게 잘라달라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다 자른 후의 내 모습을 보고 고민 없이 그냥 다 밀어달라고 말씀드렸다. 처음으로 바리깡이 모든 내 머리 두피를 스쳐 지나가는 느낌을 느껴보게 되었다. 머리가 밀리는 동안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차마 내 모습을 볼 용기가 안 났다. 한국인의 빨리빨리를 패치하고 계시는 듯한 미용사분에 의해 내 머리는 순식간에 밀려나갔다. 마지막 바리깡이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가고 3초 뒤 내 모습을 거울로 바라보았다. "어랏? 생각보다는 그래도 괜찮은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뭔가 밋밋한 느낌이 들어해보고 싶었던 스크래치를 부탁드렸다. 단번에 오케이라고 하시며 프로페셔널한 모습으로 내 우측 옆머리에 스크래치 두 개를 넣어주셨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나는 왼쪽에 스크래치를 넣고 싶었지만 빨리빨리 미용사분이 내 우측에 있었기 때문에 우측에 하게 되었다. 우리는 미리 두 명 머리를 미는데 100루피를 말씀드렸고 미용사분은 일단 앉으라며 대답을 피하셨다. 그때부터 아, 우리는 100루피에 머리를 밀 수 없겠구나 하고 예상했다. 예상은 역시나 맞았다. 300루피를 달라고 하셔서 약간의 흥정으로 240루피를 지불했다. 한 명당 약 2천 원 꼴에 머리를 민 셈이다.


리시케시 미용사 선생님의 빨리빨리를 경험하다 보니 7년 전 인도 어딘가에서 내 머리를 잘라주셨던 인도분이 생각났다. 이분에게서 배운 힌디어가 아직도 기억에 난다. 머리를 자르고 숙소로 향하던 중 작은 가방을 미용실에 두고 온 것이 생각났다. 부리나케 서둘러서 미용실로 갔고 다행히 가방은 그대로 있었다. 약속이 있어 허둥지둥 챙겨 나가는데 미용사선생님이 진지하지만 살짝 미소 띤 표정으로 '디레디레'라고 말해주셨다. '디레 디레'는 '천천히 천천히'라는 뜻이다. 한동안 내 프사명으로 해놨었다. 나름 급박했었던 그 상황과 아주 짧은 선생님의 그 말씀이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다시 인도에 와서 미용실에 가보니 더욱 그리워지는 분이다. 그때의 내가 지금처럼 이렇게 블로그에 여행기록을 열심히 남겼더라면 다시 찾아뵐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내가 머리를 밀었든 안 밀었든 인도에서 받는 시선은 변함이 없다. 그 덕분에 머리를 밀었을 때 단점은 없다. 나에게 유일한 단점은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는 것이었기 때문에... 머리를 밀고 나서 장점만 있다. 우선 너무 편하다. 머리를 감고 말리는데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 특히 드라이기를 들고 다니지 않기 때문에 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일이 없다. 선글라스를 쓸 때도 머리카락을 신경 쓰지 않고 쓸 수 있다. 모자를 쓸 때 앞머리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선크림을 바를 때도 너무 편하다.


그리고 물리적인 편리함 뿐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편해졌다. 소위 말하는 속세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남을 느꼈다. 20-30대 한국 여성이라면 외모에 스트레스를 안 받아 본 사람이 드물지 않을까? 피부에 신경 쓰고 정기적으로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관리하고 다이어트를 하고 이것저것 정말 돈도 시간도 많이 들어간다. 필요 이상의 과한 외모스트레스가 발생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외모에 대한 말을 쉽게 서로에게 말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 또한 마찬가지로 상처를 받은 기억이 있다.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말은 코에 블랙헤드 관리 좀 해라, 왜 옷을 항상 똑같은 것을 입냐, 옷이 그거밖에 없냐, 왜 머리를 짧게 하고 다니냐 등... 악의 없이 가볍게 말한 것이라 할지라도 상대의 외적인 것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무례한 언행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함부로 그러한 말을 한 적이 있지는 않은지 반성하고 앞으로는 더욱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반대로 너무 과한 칭찬 또한 좋지 않은 것 같다. 특히 어렸을 때부터 외모에 대한 칭찬을 너무 받으면 자연스럽게 외모가 바뀌었을 때 더 큰 스트레스로 다가올 수 있다. 또한 외적인 것에 대해 잘못된 가치관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냥 외적인 것에 대한 것은 딱이 언급을 크게 하지 않는 것이 서로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그냥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있는 것이니까.


'외적인 것에 대한 언급' 대하여 더 나아가면 '인종차별' 또한 이야기를    없다. 현재까지 세계여행을 하는  심각한 인종차별을 겪은 적은 없다. 혹시나 언젠가 여행을 하다 인종차별을 겪게 된다면 어떻게 대처를 하면 좋을까? 고프로가 손에 있다면 찍을까? 잘못된 것이라고 알려줄까? 아마도 나는 그냥 아무   하고 지나간  씩씩거리며 와노보노에게 투덜투덜거릴  같다. 하지만  상대가 너무 과하다 싶으면 나도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겠다.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이야기가 어쩌다 인종차별까지 왔을까? 아무튼 머리를 밀고 나서 나는 편해졌다. 사는게 조금 더 편해진 느낌이다. 당분간은 짧은 머리를 유지하지 않을까 싶다.


리시케시 타포반 어느 거리에 있는 1인 미용실
거침 없이 밀어주셨다
나도 이런 표정이었을까?
나의 우측옆통수 스크래치 2개
커플 삭발



작가의 이전글 D-DAY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