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자의 일상
세계여행을 하고 있는 지금 나의 일상은 바뀌었다.
서울에서 개미로 살았던 나의 일상의 시작은 동이 트기 전 핸드폰 알람소리로 시작된다. 물론 5분 뒤, 10분 뒤 또 맞춰놔야 한다. 한 번에 일어나는 일이 없다. 잠이 와서 죽겠지만 어쩔 수 없이 참고 화장실로 향한다. 샤워를 하고 나면 그래도 좀 잠이 깨기는 하지만 피로감은 풀리지 않는다. 다 씻고 나갈 준비를 하고 시간이 남으면 끼니를 해결한다. 보통 국에 밥을 말아서 마시는 정도로 해결한다. 이상하게 아침 시간은 항상 더 빨리 간다. 시간이 없다는 말을 항상 달고 살았다. 지하철 시간을 수시로 확인하면서 빨리빨리 준비를 마친다. 그리고 서둘러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잠이 깨지 않았기 때문에 몸을 깨우기 위해 억지로 카페인을 몸속에 허겁지겁 집어넣는다. 지하철을 타기 전에 다 마셔야 한다.
서울의 아침 지하철은 항상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아침 일찍 분주하게 다들 어디론가 향한다. 다들 생계를 위해 출근을 하고 있다. 나도 그 속에 자연스럽게 섞여 이동을 한다. 사람들의 표정은 다양하지 않다. 대부분 거의 무표정이다. 생각해 보면 출근일에 미소를 띠고 있는 사람은 못 봤다. 나 또한 항상 피곤에 찌는 표정으로 출근을 했다. 이런 상황에 조금이라도 사람들과 부딪히거나 누군가 발을 밟는다면 매우 짜증이 난다.
딱 한번 출근길에 따뜻함을 느꼈던 적이 있다. 어느 때와 같이 무표정하게 이동을 하는데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가려고 할 때 어떤 여자분이 가방이 열렸다고 알려주시고 쿨하게 내려가셨다. 몇 초의 짧은 순간이지만 마음의 시간이 잠시 느려진 느낌이었다. 따뜻함을 느꼈다.
리시케시에서는 어느 정도 해가 떠오르는 시간대에 눈이 떠진다. 억지로 일어나는 게 아니라 몸이 이제 일어나도 된다고 신호를 보낸다. 알람을 맞춘 것도 아닌데 항상 7시쯤 눈이 저절로 떠지는 게 신비로울 지경이다. 기지개를 켜고 몸 어딘가 아프지는 않은지 확인을 한다. 침대 바로 옆 창문을 열고 잠시 밖을 바라본다. 오늘 날씨는 어떤지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한다. 하루에 한 번 요가를 하기로 했으니 요가수업 시간에 맞춰 나갈 준비를 한다. 여유롭게 충분히 샤워를 할 수 있다. 머리도 없어서 더 시간을 벌었다. 옷을 갈아입고 쓴 타월을 말리기 위해 밖에 있는 빨랫줄에 널어놓는다. 그러면서 날씨도 확인하고 불어오는 바람을 느낀다. 얼마 없지만 머리도 말린다.
서울에서의 습관이 아직 살짝은 남아있어서 그런지 아직 준비를 다 끝내지 않은 와노보노를 기다리는 것까지는 여유롭게 기다릴 수는 없었다.
서울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대부분 어두웠다. 해가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일을 하는 내내 해를 한 번도 못 보는 경우도 있다. 너무 답답한 날은 일부러 창문을 찾아가서 하늘과 해를 바라봤다. 내가 볼 수 있는 빛이라고는 서울 한복판 길에서 여기저기 뿜어져 나오는 인위적인 빛 밖에는 없다. 그래도 집으로 향하는 것 자체는 기쁘다. 아침과 똑같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 피곤에 찌는 표정으로 이동을 한다. 집으로 들어가기 전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생한 나를 위해 편의점에 들른다. 스트레스가 심했던 날에는 이것저것 왕창 다 사버린다. 나름의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었나 보다. 물론 맥주도 사야 한다.
샤워를 하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뒤 보고 싶은 예능을 틀고 편의점에서 사 온 음식과 맥주를 저녁으로 삼는다. 그 순간만큼은 그래도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그리고 잘 준비를 할 때부터 또 현실을 자각하게 된다. 잠들면 또 오늘과 똑같은 하루가 시작됨을 알기에 아쉬워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다 도저히 눈을 못 뜨고 있을 때쯤 잠이 든다.
리시케시에서는 일을 하는 대신 낙서를 한다. 마음에 쏙 드는 카페를 발견하면 거의 그곳만 간다. 치앙마이에 이어 리시케시에서도 그런 카페를 발견했다. 낙서를 실컷 하기도 하고 아니면 여행에서 미리 해야 하는 일들을 한다(예를 들면 인도비자 신청하기, 인도철도청 가입하기 등). 카페에 있는 동안에는 내가 원하면 언제든지 밖을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는 것을 시계를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해가 지면서 서서히 바뀌는 창문 밖 풍경을 즐긴다. 온도와 조도도 자연스럽게 바뀐다.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벅찰 정도로 좋다.
자기 전 와노보노와 수다를 떨거나 다이어리에 일기를 쓴다.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다 잠이 오는 것 같으면 끄고 눈을 감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스르르 잠이 바로 든다. 내일이 오는게 기대된다. 나는 또 내 몸이 나를 깨우면 일어나 하루의 일상을 시작하겠지.
지금 이 일상이 나는 너무 좋다.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