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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린와이 Aug 29. 2021

프로포즈하던 날

소렌토의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주간이 되면 작고 아담한 소렌토의 광장과 광장에서부터 이어지는 긴 가로수 길은 밝고 활기찬 조명으로 장식된다.

 

다른 유럽의 큰 도시들처럼 화려한 크리스마스 마켓이나 커다란 백화점의 세일 광고를 찾을 수는 없지만 좁은 거리, 골목마다 정겹고 활기찬 사람들로 가득 찼다.

 

광장을 지키는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와 알록달록 장식으로 수놓은 갖가지 상점들.


그리고 광장 한 켠의 인형극.






손바닥만한 스마트폰을 들면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수 만 가지 미디어를 끊김 없이 볼 수 있는 시대에, 이 소박하고 유치한 인형극 앞으로 모여든 사람들이 귀엽게 느껴진다.

 

한참을 서서 그들을 바라본다.

그들은 인형극을 보며 기뻐하고, 우리는 그들을 보며 행복했다.



PC에선 클릭하여 크게 보시길 추천합니다.










여행 내내 나를 안절부절못하게 만들었던

코트 안 주머니에 숨겨진 반지는,


잠시 후면 2개월 동안 적어 온 일기장과 함께 그녀에게 건네질 예정이다. 그녀는 상상도 못 하고 있을 일이었다.


처음 만나 수줍게 인사를 나눈 지 이제 막 5개월이 채워지고 있던 때였고, 우리의 대화에선 아직 결혼이란 단어조차 오간 적이 없었다.











주변에선 내게 ‘복 받았다, 도둑놈이다’라고 했지만

많은 나이 차이는 내겐 걸림돌일 뿐이었다.


1. 오랫동안 기다려 온 이상형에 가장 가까운 사람을 만났기에 빠르게 결정할 수 있었던 나의 진실함이

자칫 결혼 적령기를 한참 지난 남자의 조급함으로 비추어질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2. 어린 시절부터 10년 넘게 홀로 미국에 살다가 이제 막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앞 날이 창창한 그녀를,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나이도 많은 내게 절대 쉽게 허락하지 않을 그녀 부모님의 강한 반대도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3. 주변에선 그녀가 얼마나 바르고 착하고 현명하고 훌륭한 사람인지 우리가 얼마나 비슷한 사고와 잘 맞는 가치관을 갖고 있는지 알려하기 전에, 나이를 먼저 묻고는 내가 그녀를 사랑하게 된 이유를 모두 알게 된 듯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게 그녀의 나이는 그녀가 가진 수많은 장점들 중에 하나일 뿐이었고, 그 한 가지가 빠진다 해도 내 인생 가장 큰 결정은 달라질 것이 없었다.


오랜 기간 많은 인연을 스쳐 보내며

‘내가 찾는 사람은 정말 만날 수 없는 건가...’

포기할 무렵 기적처럼 내 앞에 나타난 사람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녀는 내게 이런 내용이 담긴 편지를 한통 건넸다.





이 사람을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내 결심의 과정은 이러했다.


1. 연말 이탈리아 여행을 함께하기로 결정하고 일정을 짜면서

2. 그때까지 이 사람에게 ‘더’ 확신이 생긴다면

3.

“크리스마스”에

“소렌토”에서

“서프라이즈 프로포즈”를 했을 때


4. 그녀에겐 최고의 선물이자, 우리 둘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이벤트로 남을 것이다.

5. 설사 내 마음이 그때까지 확신을 같지 못해 준비한 것이 허사가 되는 일이 생기더라도 아깝거나 아쉬울 건 없다.

6. 이 완벽한 계획을 미리 준비하지 못해 후회하는 것보다는 100배쯤 나을 테니까.

7. 홀로 세계를 여행하며 수많은 동행자를 만나고 헤어지길 십 수년. 이제 내 남은 인생의 여정을 함께할 영구적 동행을 제안할 시간이다.



한강이 보이는 비싼 레스토랑에서 명품백 속에 담긴 티파니 다이아반지를 세상 로맨틱하고 감동적인 말로 전해 주는 드라마 속 프로포즈는 물론 너무나 멋진 일이지만 우리의 감성은 아니었고 무엇보다 이미 기정 사실화된 이후의 형식적인 프로포즈는 하고 싶지 않았다.


이 계획이 성공한다면 내 인생에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로 남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날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녀를 향한 내 마음의 변화 과정을 적었고, 프로포즈 준비 상황을 적었다.


어느 날은 혼란스러웠고, 어느 날은 확신이 없었다.

그 모든 걸 거짓 없이 적어 내 마음의 변화 과정과 진실함을 솔직하게 다 보여주고 싶었다.


또한, 프로포즈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설렘, 환희, 걱정, 고민 등, 나 혼자 몰래 준비하며 느끼게 되는 그 소중하고 아름다운 감정들을 기록해서 선물하고 싶었다. 함께 하지 못한 멋진 여행에서 기념품을 사다 주듯. 함께 먹지 못한 맛있는 음식의 사진을 찍어 공유하듯.











상황은 완벽했다.

 

로마와 나폴리를 지나,

이탈리아 남부 여행의 시작이었던 소렌토.

 

우리는 이 아름다운 도시와 흠뻑 사랑에 빠졌고,

3일째 밤은 크리스마스이브였다.

 

하늘에선 폭죽이 터지고 있었고, 광장엔 거대한 트리 장식과 사람들. 거리의 레몬 트리엔 아름다운 조명 장식이 반짝이고 세상이 온통 캐롤과 사람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차 그저 서로의 손을 잡고 걷는 것만으로도 동화 속을 거니는 기분이었다.

 





모든 것은 완벽했다.

그녀가 나의 프로포즈를 수락해주기만 한다면.

 










가로수길을 따라 광장의 반대편으로 걷다 인적이 드문 벤치에 앉았다.

 







작은 삼각대를 설치하고 타이머를 설정하는 척 그녀 몰래 REC 버튼을 누른 채 포즈를 잡고, 한동안 대화를 나누다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무심하게 작은 선물 상자를 건넨다.

 

‘서로 안 하기로 약속했으면서…?’



미안해하며 조심스럽게 포장을 뜯던 그녀는 고개를 들어 놀람과 의아함이 섞인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고, 난 아무 말 없이 그런 그녀를 잠시 웃으며 바라보다

커다래진 동그란 눈이 촉촉해지기 시작할 때,


최대한 차분하게, 최대한 간결하게, 수백 번 연습한 대로 마음을 전했다.

 


'우리, 결혼 하자’








- 2019.12.24

우리에게 영원히 특별한 곳으로 기억될

Sorrento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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