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커피산업의 커다란 위협 중 하나인 커피녹병(Hemileia vastatrix)이 결국 태평양을 건너 하와이 섬에 당도했습니다. 커피 잎사귀에 녹이 스는 것처럼 번지는 이 곰팡이는, 실론섬에서 처음 발병한지 150년 만에 세계 커피벨트를 모두 잠식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청정지역으로 남아 있던 하와이 제도에서 커피녹병이 처음 발견된 것은 지난해 10월 21일 마우이섬 Haiku 지역이며(hawaii, 2020/10/26), 10월 31일 하와이섬 남부 Holualoa 지역에서도 녹병 샘플이 수집되어 미 농무부에 의해 공식 확인되었습니다(hawaii, 2020/11/10).
방역조치에도 불구하고 21년 1월, 호놀룰루가 있는 오아후섬과 라나이섬까지 커피녹병이 확산되었으며(hawaii, 2021/3/24), 하와이는 연방환경보호국(EPA)에 녹병 살균제의 사용허가를 요청했습니다(hawaii, 2021/3/30). 4월 21일 긴급 승인된 살균제는 독일 BASF사의 Priaxor Xemium로, 열매채소에 일반적으로 사용되지만 커피에는 처음 허가된 것입니다. 이번 긴급승인은 1년 임시허가입니다.
커피잎녹병(coffee leaf rust, CLR)은 Hemileia Vastatrix 곰팡이에 의해 발생하는 감염병입니다. 잎 뒷면에 다다른 곰팡이는 기공에서 발생하는 습기를 머금고 발아하여 잎 내부로 침투하며, 잎 전체를 장악하고 포자를 내보내 다시 확산합니다. 바람을 타고 빠르게 전파되어, 농장 생산량을 지속적으로 감소시키는 원인이 됩니다.
커피녹병에 의한 황폐화가 처음 기록된 곳은 1869년 실론섬입니다. 영국은 이 섬에서 산업적 커피 플랜테이션을 시작했으나, CLR에 의한 황폐화로 커피재배를 포기하고 지금의 차 재배를 시작하게 됩니다.
다음해인 1870년, 자바와 수마트라에서 한 시즌만에 수확량이 절반으로 줄어들었으며, 해발 1,000m대의 모든 농장이 황폐화됩니다. 1889년까지 세계 커피생산규모 4위를 자랑하던 필리핀은 3년 만에 국가 커피생산을 모두 중단합니다. 지금까지 아시아에서는 아라비카를 재배하지 못하고, 로부스타만 재배하고 있습니다.
이후 CLR은 아프리카로 퍼졌으며, 1970년 처음으로 대서양 건너 브라질에서 녹병이 관찰됩니다. 남미의 녹병은 1976년 중미로 번져나가며, 아시아 녹병 또한 태평양 군도로 확산됩니다.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녹병균은 아직 완전히 분석되지 못했으며, 역설적으로 다른 병충해보다 치명률이 낮아 더 광범위하게 전파되는 경향이 있습니다(WCR, 2018/11/6).
1869년 스리랑카 실론섬에서 첫 발병
1870년대 자바와 수마트라, 한 시즌 만에 수확량 50% 급감
1880년대 레위니옹, 10년 동안 수확량 75% 급감
1889년 필리핀, 커피생산규모 세계 4위 기록 (7,000톤)
1892년 필리핀, 커피생산 중단
1870~1970년대, 아시아에서 아라비카 커피재배 불가능해짐
1966년 앙고라, 서아프리카에서 첫 커피녹병 확인
1970년 브라질, 첫 녹병 상륙 확인
1976년 니카라과, 파나마, 커피녹병 발생 (2012년 심각한 피해)
1979년 엘살바도르, 커피녹병 발생 (2012년 가장 강력한 전염성을 보임)
1980년 온두라스, 과테말라, 커피녹병 발생 (2012년 확산)
1981년 멕시코 치아파스, 커피녹병 발생 (2012년 생산량 30% 감소)
1983년 코스타리카, 커피녹병 발생 (2012년 심각한 피해)
1989년 코스타리카, 심각한 감염병 유행 시작
1995년 니카라과, 감염병 유행 증가가 보고되었으나 기록된 피해 없음
2002년 엘살바도르, 2000년 커피수확량 증가에 이은 감염병 유행
2008~2011년 콜롬비아, 곰팡이 서식에 좋은 기후가 지속되며 감염병 유행 시작
2012~2013년, 중앙아메리카를 중심으로 빅 러스트 발생
*빅 러스트 결과 : 온두라스 -31% 과테말라 -15% 코스타리카 -5% 니카라과 -3% 엘살바도르 -23% 파나마 -13.5%
2012년, 중남미 일부 커피산지에서 무려 90%에 가까운 생산량 감소가 목격되기 시작합니다. 이 감염병 유행은 2012~13 한 시즌에만 약 350만 자루, 그러니까 전체 커피생산량 15%의 손실을 만들게 됩니다. 이른바 ‘빅 러스트’죠.
아시아에서 아라비카 생산이 불가능해지면서, 중남미가 주요 커피산지로 각광받기 시작합니다. 1970년 브라질, 1976년 니카라과에서 각각 커피녹병이 처음 발견되었을 때, 중남미 커피농부들은 사형선고를 받은 기분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이후 36년 동안 파괴적인 황폐화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실론섬과 중남미는 무엇이 달랐던 걸까요? 또, 중남미에 상륙한 녹병이 빅러스트를 일으키기까지 36년 동안 남미 대륙에선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걸까요? 스탠포드 대학의 Feral Atlas에서 흥미로운 주장을 담은 리포트를 내놨습니다.
70년대 말, 중남미에서는 이른바 ‘기술화’라고 하는 혁신이 시작됩니다. 전통적으로 중남미의 농부들은 울창한 숲속 그늘에서 다양한 작물과 함께 커피를 재배해 왔습니다. USAID는 중남미 커피농장을 현대화하고 커피녹병을 통제하기 위해, 기술화라는 방법론으로 이들을 지원했습니다. 나무를 베어 그늘을 없애고 살균제 사용을 장려했으며, 녹병에 강한 품종을 지원했죠.
더 조밀하고 개방된 환경의 현대 커피농장에서, 농부들은 커피를 대량생산할 수 있게 됐습니다. 다만, 커피나무에 접근이 용이해진 것은 농부들만이 아니었습니다. 커피녹병 곰팡이는 포자를 바람에 날려 확산합니다. 커피나무만 심은 단일 농장은 바람이 잘 통하고, 곰팡이도 빠르게 확산시키는 구조가 됩니다. 녹병을 통제하기 위해 숲을 정리한 결과, 실론섬의 플랜테이션과 동일한 환경이 된 것이죠.
이 기사는 CLR이 커피 플랜테이션과 함께 확산되었다고 말하며, 혼농임업을 권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