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벚꽃이 안폈나요..?ㅋㅋ
항상 4월, 5월이 되면 벚꽃엔딩이 자동으로 생각나는 때에 여느때와 다름없이 그림들을 쭉 보다가 이 벚꽃 그림은 찐이다! 하고 발견한 김수빈 작가의 작품들을 보면서 작가님과 벚꽃 시기에 맞춰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이날 벚꽃 핀다며...ㅠㅠㅠ 개화시기에 오류를 범한 저는 작가님을 벌벌벌 떨게 하면서 인터뷰를 강제로 진행했습니다. 그래도 우리 작가님 추워도 끝까지 성심성의껏 인터뷰해주신거 넘넘 감사드립니다.
태어난 곳이 일본이고, 유년시절을 일곱살까지 보내고 한국으로 왔어요.
그때 언어가 다 형성되고 인격이 만들어질 때인데, 그 시절을 일본에서 보냈기 때문에
정서적인 분위기가 일본의 느낌도 묻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찍고 있는거 아니죠??
좀 더 편하게 인터뷰하고 싶어서 몰래 시작했어요... ㅋㅋ
사실 갑자기 한국으로 이주를 하게 됐는데 저한테는 제 나라인데도 너무 낯선거에요
엄마가 물론 집에서 한국어를 하셨지만 그래도 제가 전체적으로 듣고 사는거는 일본의 그 분위기인데
소리가 웅성웅성 들리더라고요. 그런데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잘 적응해서 다녔어요.
예빠: 저도 일본어과를 나온 사람으로서 ㅎㅎ 혹시 일본어로 조금 인사 가능할까요?ㅋㅋㅋ
김수빈작가:
こんにちは.桜を描くキムスビンです 日本で生まれた韓国人です。
(반갑습니다 벚꽃을 그리는 김수빈입니다 일본에서 태어난 한국인입니다 )
아리마스케도 도죠 요로시쿠 오네가이시마스..ㅋㅋ
예빠: 寒いですか?(춥습니까?)
김수빈작가: 寒いですね...(춥네요)
예빠: 일본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벚꽃이죠. 이 작품에 나오는 벚꽃들도 일본의 영향이 있나요?
김수빈작가: 네, 일본하면 떠오르는게 벚꽃이라고 하더라도 제 경험이 없다면 이런 작품을 하지 않았을텐데, 일본에서 살 때 집 앞이 되게 벚꽃이 가득한 마을이었어요.
벚꽃 밑에서 놀고... 엄마가 사진도 찍어주시고.. 그런 보낸 추억이 많아서요. 그래서 벚꽃을 되게 상징적으로 생각을 하고 있던 것 같아요.
유독 또 제가 사는 곳 마다 벚꽃이 있어줬어요. 그렇게 삶 전반에 벚꽃이 계속 있어요
그리고 교복을 입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살고 있는 곳이 벚꽃이 막 마구마구 피워주는 불광천이 있는 곳이라서 그 벚꽃들은 그때 애기 나무였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20, 30대 넘어가니까 벚꽃들고 풍성해져가지고 지금은 가지도 굵어지고 되게 단단해졌어요.
그래서 벚꽃은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 늘.. 지금도 저랑 함께 하고 있고
그래서 벚꽃은 저에게 특별한 존재이죠.
예빠:그럼 작품하나에 스토리 텔링을 할게 굉장히 많겠어요
김수빈작가: 저는 계속 풍요롭게 자랐었는데 갑자기 집 안에 문제가 생겨서 데 그렇지 못한 상황이 된거에요. 그때 안 해봤던 일을 다 해본 것 같아요. 카페 알바, 서빙. 그런데 저는 도저히 몸을 쓰는 일은 못 하겠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건 뭘까..
평생 해온게 그림이니까 가르치는 일은 얼마든지 할수있고 그렇게 아이들을 가르치고 전시하고..
처음에는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나 너무 싫었는데 그냥 저는 평탄하게 계속 살아왔더라면
지금의 벚꽃은 없었을 거에요
예빠: 아픔이 있어야 작품이 더 잘된다는 이야기가 있기도 하더군요..
김수빈작가:네, 다행히 부모님이 건강한 정신도 물려주신거라 생각이 들어서 잘 넘어가게 됐고 더 강해진 것 같아요
예빠: 여기서 궁금한 게 있는데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풍요롭게 자란 것이 부모님이 어떤 일을 하신건지 여쭤보고싶네요.
김수빈작가: 할아버지가 성공한 사업가셨는데요, 일본에서 일하는 한국인 사업가 중에 제일 성공하신 분이어서.. 일본은 할아버지가 젊은시절에는 일본에서 되게 부당한 대우를 받는 한국인들이 많이 있었거든요 아무래도 식민지가 있었고 멸시받는 분위기가 남아있다보니까요.
그런데 우리 할아버지가 그 당시에 한국인 사업가로서 힘이 있으시니까한국인들의 입장에서 법정에 서주는데 법정 비용을 대주신다거나 직접적으로 한국인들을 도와주는 일들, 또 외에도 좋은 일을 많이 하셨어요. 그래서 우리나라 대통령들한테 상 받으신게 많은데 저한테 그 상패가 아직 남아있어요
나도 행복하고 그림을 봐주는 사람도 행복한 그림
예빠:흔히 꽃 그림은 그리는 사람도, 관람 하는 사람도 왠지 고리타분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김수빈작가: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어요. 그런데 저는 즐거워서 하는 작업이에요. 원래는 20대 때는 알머리 인형들이 나와서 현대사회를 비판하고 인형 통속에서 알몸 인형들이 갇혀있고..자기 호소적인 작업을 하고 자화상을 엄청 많이 그렸어요. 제 스스로 내 안에 있는걸 내뱉기 위해서 샤우팅을 하는 그런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30대에 넘어와서는 조금 마음을 정돈했고 좀더 세상에 다가갈수 있는 작업이 뭐가 있을까. 나도 행복하고 그림을 봐주는 사람도 행복하게. 그랬을 때 저한테는 치유가 되는 풍경이 지금의 낭만산수였어요.
예빠: 낭만산수화라는 것은 작가님이 지어내신건가요?
김수빈작가: 네 제가 만들어낸 저만의 제목이에요. 낭만이 있어야 삶도 있는거니까
예빠: 그렇다면 호소력 있는 작품을 하다가 작품이 변화 된 건데, 그동안 마음도 좀 편안해 진건가요?
김수빈작가: 제가 길게 산건아니지만 살아오면서 인생은 에디튜드라는 생각을해요. 그래서 상황을 바꿀수없으면 내 마음부터 바꾸고 마음을 바꾸니까 상황이 바뀌더라고요 이렇게 인터뷰를 하고 저를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저를 찾아오는 좋은일이 생기는 것처럼.
예를들어 배우들도 자기들이 슬프고 아프고 죽고 이런 역할을 맡으면 본인의 캐릭터에 빠져서 어쩔수 없이 따라가게 되는 경우가 있잖아요 제가 자꾸 슬프고 아픈 작품을 하면 제 삶도 아파질까봐 저는 그게 제일 걱정이 됐어요 우선 누구에게나 한번뿐인 삶인데 제 삶이 행복해야하잖아요.
예빠: 꽃그림이 쉽다고 하는 사람에게..(저같은..?ㅋㅋ)
김수빈작가:저는 그 사람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 타입이라서 그렇게 생각하고싶으면 생각해 하고 놔둘거같아요.
그런데 제 그림은 그렇게 쉬운 꽃그림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제가 담은 정신까지 따라서 담을수 있으면 해봐" 이렇게ㅋㅋㅋㅋ
어린 왕자가 수 많은 장미중에서도 자신에게 중요한 장미가 딱 한송이였듯
나의 벚꽃도 수 많은 꽃들 중 중요한 것이다.
예빠: 다른 꽃 작품들과 내 작품의 차이를 굳이 꼽자면?
김수빈작가: 그분들도 물론 훌륭하시겠지만 저는 저만의 벚꽃이기 때문에 어린 왕자가 수많은 장미중에서도 자신에게 중요한 장미가 딱 한송이었듯이 저의 벚꽃도 그런게 아닐까 싶어요
예빠: 벚꽃을 바라보면서 그림 요청을 하면 더 좋았겠지만.. 가능할까요?
김수빈작가: 그럼 그냥 생각나는데로 그릴께요. (손수 재료까지 다 가지고 온 착한 작가님 ㅠㅠ)
예빠: 그림을 그릴 때 어떤 마음으로 그리나요?
김수빈작가: 예쁜 마음일수도 있고 예쁘고 싶은 마음일수도 있고 여러가지 라고 생각해요.
사랑하는 마음일수도 있고 사랑하고 싶은 마음일수도 있고
인터뷰 너무 즐거웠어요.. 좀 추웠지만 ㅋㅋㅋ 아 이제 그림 다 완성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