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프라하 버스터미널에서 울다

by 정가을

대학교 4학년, 체코 프라하로 혼자 여행을 갔다. 배낭여행을 하기 전, 국제 워크캠프에 참가 신청을 했다. 워크캠프는 세계 여러 나라의 청년들이 모여, 몇 주간 함께 생활하며 봉사활동을 하는 국제 교류 프로그램이다. 나는 체코의 지방에 있는 한 지역에서 유적과 유물 발굴을 돕는 봉사활동을 하기로 했다.


미리 해당 지역의 담당자로부터 언제, 어디로 오라는 이메일을 받았다. 프라하 버스 터미널에서 오전 9시 버스를 타고 봉사하는 지역의 버스터미널에 내리면, 담당자가 차로 마중을 나오기로 했다. 하지만 그 지역 이름이 체코어로 되어있어서 내가 전혀 발음할 수가 없었다. 당시엔 스마트 폰이 없었기 때문에, 이메일을 그대로 인쇄해서 터미널에 챙겨갔다.


프라하 버스터미널은 아주 작은 규모였다. 15년도 더 지난 일이니, 지금은 어떤 모습일지 모르겠다. 그때는 유리로 된 작은 창구 두 개와 직원들이 일하는 사무실 하나가 있었다. 창구에 서서 직원에게 인쇄해 온 종이를 보여주며, 내가 가야 할 장소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러면 버스표를 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손으로 지역 이름을 가리켜도 창구의 직원은 승차권을 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몇 번의 시도 끝에야 알았다. 그 직원은 시각장애인이었다. 엄청난 충격이었다. 시각 장애인이 버스터미널 창구에 있을 줄이야. 당시 장애인들이 공공장소에서 일하는 모습을 한국에선 거의 보지 못했던 터라, 나의 편견을 깨준 꽤 놀라운 일이었다. 우리나라도 그런 부분은 배워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당시 그 상황이 너무 당황스럽던 나는 다른 창구를 쳐다봤지만, 하필 거기엔 직원이 없었다. 순간 패닉에 빠져 어찌할 줄 몰라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는데, 마침 한 청소년 무리가 왔고, 나는 도움을 요청했다. 한 학생이 그 지역 이름을 창구의 직원에게 읽어줬고, 드디어 버스표를 받을 수 있었다. 부랴부랴 버스를 타러 달려갔는데, 문제가 생겼다. 버스표를 구매하느라 시간이 너무 지체된 것이다. 내가 타야 할 버스는 이미 떠나버린 뒤였다.


또다시 당황한 나는 일단 창구로 되돌아갔다. 이번엔 사무실에 들어가 짧은 영어로 내 상황을 설명했다. 60대로 보이는 남자 직원과 여자 직원이 있었는데, 여직원이 다음 시간 버스로 바꿔주었다. 그런데 다음 버스는 오후 3시 출발이었고, 그 버스를 타면 나는 워크캠프 장소에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할게 분명했다. 얼른 공중전화를 찾아 담당자에게 전화해 버스를 놓쳤다고 말했다. 담당자는 다음 버스는 너무 늦다며 워크캠프 장소가 아닌 다른 지역으로 가라고 했고, 거기서 또 다른 버스로 갈아타고 오라고 했다.


나는 다시 사무실에 가서, 담당자가 말한 지역으로 가는 버스로 교환해 달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 여직원이 갑자기 불같이 화를 냈다. 체코말로 뭐라고 소리를 질러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대략 ‘나는 이미 티켓을 한 번 교환해 줬으니, 또 해줄 순 없다.’ 이런 느낌이었다. 나는 온 몸이 오들오들 떨리고 너무 무서웠다.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에서 이런 일을 겪다니... 승차권을 교환해 주지 않으면, 워크캠프 장소엔 밤에나 도착할 텐데, 낯선 나라에서 어찌해야 할지 몰라 그저 눈에 눈물이 고였다.


바로 그때 옆에 있던 남자 직원이 여직원에게 뭐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그 둘은 싸우기 시작했다. 둘 다 나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하는 것으로 보아, 남자 직원은 내가 외국인이니 봐주라고 말하는듯했다. 얼마간 둘 사이에 큰 소리가 오가더니, 결국 버스표를 교환해 주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번엔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얼른 탑승구로 뛰어갔고, 무사히 버스에 탈 수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놀란 가슴이 진정되고, 걱정하던 마음도 안심이 되었다. 동시에 배고픔도 밀려왔다. 아침 일찍 버스 터미널에 가느라 서두른 탓에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가방에 있던 빵을 꺼내 한입 베어 물었다. 그야말로 눈물 젖은 빵이었다.


학창시절, 나는 그야말로 교실 한구석에 조용히 앉아있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소심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여행하며 겪은 이러한 몇몇 사건 후, 나는 좀 더 단단해졌다. 그때는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외국에서 어찌해야 할지 몰라 울기만 했지만, 나중에 한국에 돌아왔을 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곤경을 이겨낸 사람이다! 어찌 됐든 나는 목적을 이뤄냈다.’ 마치 큰 싸움을 이겨낸 전사가 된 느낌이었다.


혹시 나처럼 소심하고 겁이 많은데 극복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그렇다면 체코 버스터미널에 가보길 강력히 추천한다. 거기서 눈물 젖은 빵을 먹고 나면, 당신은 분명 다른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안녕하십니까, 관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