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형색색의 아름다운 등불이 반짝이는 호이안 사진 한 장을 보고 베트남행을 결심했다. 10년 전 일이다. 지금은 다낭, 호이안은 한국 사람들이 많이 찾는 베트남의 인기 관광지가 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하노이, 호치민 등을 주로 여행하던 시절이었다. 호이안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아 여행 준비를 하며 걱정도 있었다. 그럼에도 꼭 호이안의 등불을 보고 싶었다. 아마 등불처럼 따뜻한 온기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일 년간 일했던 한 초등학교에서 방과 후 강사 일을 그만두고 나서였다. 아이들이 어찌나 예뻤는지, 나는 1학년 학생들이 6학년이 될 때까지 그 학교에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계약 업체가 처음 말한 것과 다른 인센티브를 주었고, 자신들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사회 경험이 많지 않아 내가 계약서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큰 실수를 했다. 배신감을 느끼고 좋은 마음으로 일하던 곳을 그만두게 되자, 내 마음엔 사람과 사회에 대한 불신이 커지게 되었다.
이런 마음으로 시작한 여행이었다. 고맙게도 한 친구가 나와 동행해 주었고, 늦은 밤 다낭 공항에 도착해 택시를 타고 호텔로 이동했다. 그날 밤 여행 피로로 금세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조식 후 호텔 근처를 둘러보다 한 카페로 향했다. 한국인은 한 명도 없고 베트남 사람들만 가득한 토요일 오전 카페에서, 이국적인 분위기를 한껏 느끼며 진하고 달콤한 베트남 커피를 마시는 기분이 꽤 즐거웠다. 한국에서의 스트레스가 모두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런 여행의 설렘도 잠시. 우린 혼란에 빠졌다. 호텔로 돌아가야 하는데 도무지 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당시에 스마트 폰이 있었지만, 로밍은 비싸서 하지 않았고, 지금처럼 유심을 바꿔 현지에서 데이터를 쓰는 경우도 보편적이지 않았다. 와이파이가 되는 곳에서만 인터넷 접속을 할 수 있으니, 스마트 폰으로 길을 찾을 수도 없었다. 주변에 도움을 청할만한 한국인도 없었고, 우리는 같은 자리를 뱅뱅 돌며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한 음식점 문 앞에 베트남 직원이 서 있는 게 보였다. 나는 얼른 그 청년에게 호텔 이름을 말하며 길을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청년은 그 호텔을 잘 모르는 듯 보였고, 이내 자신의 스마트 폰으로 그 호텔을 검색했다. 우린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마음을 가라앉힐 겨를도 없이 청년은 우리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가게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우린 너무 당황했다.
“길을 몰라서 다른 직원한테 물어보러 간 건가?” 라고 걱정스런 어투로 친구가 말했다. “그러게.” 나도 어리둥절한 얼굴로 아직 오픈하지 않아 텅 비어있는 가게 안을 들여다보며 대답했다. 그렇게 10분 가까이 지난듯했다. 호텔을 모르면 모른다고 말 좀 해주지, 아무 말도 없이 그냥 안으로 들어가 버린 직원이 원망스러울 때쯤, 음식점 옆에 있는 다른 큰 문으로 누군가 나왔다. 바로 그 직원이 큰 오토바이 한 대를 끌고 나타난 것이다. 헬멧을 우리에게 주며 오토바이에 타라는 손짓을 했다. 나는 한국에서 한 번도 오토바이를 타본 적이 없어 매우 당황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오토바이까지 끌고 나와 우리를 호텔에 태워다준다는 청년의 친절에 너무나 감동했다. 얼떨결에 처음으로 낯선 남자의 허리를 잡고 오토바이를 탔다. 씽씽 쌩쌩 부르르릉---, 빠르게 달리는 오토바이에 웃음이 났다. 놀이기구를 탄 듯 신나고 재미있었다.
왜 그 청년이 길을 가르쳐주지 않고 오토바이까지 끌고 나왔는지, 호텔에 도착해서야 알 수 있었다. 우린 호텔에서 꽤 멀리 와 있었다. 호텔 앞에서 오토바이 청년에게 연신 감사의 인사를 했다. 무사히 호텔에서 짐을 찾은 뒤, 택시를 타고 진짜 목적지인 호이안으로 향했다.
상상했던 대로 형형색색 아름다운 등불이었다. 어두운 밤이 되자 등불은 더 밝게 빛났고, 내 마음은 따뜻해졌다. 그러나 내 마음이 따뜻해진 것은 그토록 보고 싶었던 이 아름다운 등불이 아니라, 그 청년이 베푼 다정한 친절이었다. 한국에서 내가 안고 온 불신의 마음을, 따뜻한 친절로 바꿔주었다. 이 세상에 나쁜 사람만 있는 건 아니구나, 이렇게 누군가를 통해 마음이 따뜻해질 수도 있구나 하는걸, 낯선 나라에 와서야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