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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i Dante Nov 01. 2018

달리기에서 배우는 인생의 정수

한순간 바람이 되어라 <사토 다카코 지음>

 달리기만큼 단순하고 명쾌한 운동이 어디 있으랴. 어떤 도구도 사용하지 않고 온전히 몸 하나의 움직임에 의해 기록과 승패가 결정되는  달리기는, 순수한 인간의 빠른 장소이동 본능을 선분의 트랙에서 구현하는 스포츠이다. 또한 인간의 본능과 몸의 한계의 간극을 좁히고자하는 피 끓는 의지에 기초해 인간의 현존을 증명하는 스포츠이기도 하다. 사토 다카코는 소설 <한순간 바람이 되어라>에서 고등학교 육상선수의 훈련과 대회 참가 과정을 통해 이런 달리기의 속성과 인간의 한계극복의지를 극명하게 풀어내고 있다.


 고등학교 달리기 동아리 활동을 잔잔하게 그려낸 이 소설은 온갖 기교와 수사와 플롯과 꾸밈이 난무하는 그 어느 소설보다 읽고 난 뒤의 여운이 깊었다. 주인공들은 달리기 연습과정에서 스스로 성취동기를 확인하며 성장해간다. 이들의 목표는 보다 좋은 기록을 달성하는 것이지만 훈련의 한순간 한순간에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입하고, 약점과 강점을 확인하며 매순간 성장해가는 과정도 그만큼 중요하다. 특히 감성 돋는 청소년기의 학생들이 한 곳에 몰입하는 모습은 독자에게 바람직한 삶의 자세를 시사한다.


 육상대회 참가를 위해 오랜 기간 동안 체계적으로 훈련하는 과정이 이 소설의 핵심이다. 작가는 신체운동역학과 청소년 심리에 대한 깊은 지식을 동원해 스포츠과학에 기초한 달리기 훈련과정을 상세히 그려냄으로써, 한 인간의 성장과 도약이 우연이 아닌 필연의 결과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달리기 훈련이 주행자세와 숨쉬기, 스타트와 중간 달리기, 마지막 스퍼트와 종료 때까지 매우 정교한 데이터 분석과 꾸준한 연마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소설의 놀라운 점은 달리기 훈련의 세부적인 내용을 달리기 선수의 일상을 토대로 아주 정치하게 그리고 있는 점이다. 작가는 해부학적 관찰자시점의 서술과 청소년 선수의 심층을 파고드는 심리표현으로 아마추어가 결코 다다를 수 없는 경지에 이르고 있다.


 주인공인 고등학교 선수들은 각자 자신들의 특성에 맞게 100미터, 200미터, 400미터,1,000미터, 3000미터 달리기, 마라톤, 이어달리기   등등 여러 종목을 훈련한다.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여러 고등학교 학생들이 함께 모여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끊어 달리기>를 연습하는 장면이다. 이 연습은 단거리를 온 힘으로 달리는 연습이다. 3,000미터를 최단거리로 나눠서 전력으로 달리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처음 30미터를 전속으로 달리고 나서 다시 시작점에서 40미터를 전력으로 달린다. 이렇게 가장 긴 거리가 100미터가 될 때까지 거리를 10미터씩 올려 가면서 단거리를 온 힘으로 매 순간 전력 질주한다. 이렇게 끊어 달린 길이의 합이 3,000미터가 되면 훈련이 완성된다.


 3,000미터를 한꺼번에 달리는 것은 10여분이면 끝나지만 이렇게 끊어 달리기는 중간 휴식시간을 포함해 거의 5시간이 걸린다. 주인공 신지는 3,000 미터를 달린 후 그대로 땅바닥에 쓰러진다. 이때 그는 손가락 한마디도 움직일 수 있는 힘도 남아있지 않다. 말 그대로 몸 안의 에너지를 완전히 다 써버린 것이다. 이 얼마나 멋진 질주인가. 이 순간에 느끼는 충일감을 그 무엇에 비길 수 있으랴.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삶의 표상이 아닌가?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4명이 함께 뛰는 400미터 계주 훈련과 지역대회 400미터 계주에서 1등을 하는 장면이다. 이어달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톤 터치이다. 이어달리기 선수는 앞 주자와 뒷 주자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 훈련과정에서 앞뒤 주자 그리고 4명의 조원이 한 몸이 되어 달리는 모습과 마음까지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이 경이롭고 아름답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주인공들이 달리기를 통해 인생의 정수를 알아버리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의 목표에 다가가기 위해 인생의 한 순간을 온전히 소모하기 때문이다. 인생의 한 순간을 불태우며 느끼는 좌절과 희망, 고통과 즐거움의 모든 것이 완벽하게 현실의 달리기 위에서 구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본능에 충실한 달리기가 그 어느 운동보다 이성적인 과정을 통해 설계되고 건축된다는 것, 인간이 추구하는 높은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초절의 몰입과 탁마의 정진이 필요하다는 것을 증명한 이 소설을 읽으며 모든 삶의 표상이 달리기가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한순간 바람이 되어라>의 달리기에서 인생의 정수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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