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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i Dante Sep 27. 2018

12인의 성난 사람들
 (12 Angry Men)

  정치(精緻)한 플롯, 흥미진진한 사건 전개와 해결, 배우의 뛰어난 연기가 어우러진 수준 높은 법정영화는 많다. 그중 가끔 다시 찾아보는 영화는 1957년 작품 시드니 루멧 감독, 헨리 폰다 주연의 ‘12인의 성난 사람들’(12 Angry Men)이다. 그 이유는 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장면들로 영화 전체를 소화하는 단순한 흑백영화가 스펙터클한 전개의 어느 법정영화보다 정의와 인간의 판단력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법정영화는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을 다룬다. 범죄를 다루는 형사법정은 판사의 주재로 검사와 변호사가 증거와 증언을 바탕으로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두고 다투며, 이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배심원들이 법정에서 다뤄진 내용을 기초로 피고인에 대한 유무죄를 판단한다. 이 영화는 미국 사법제도의 핵심인 배심원의 피고인에 대한 유무죄 토의 과정 전체를 담고 있다.

 

 18세 소년이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다. 범죄를 입증할 증거물은 소년이 아버지를 찌를 때 사용한 것이라고 검사가 주장하는 잭나이프이고, 이웃 주민 두 명이 증인으로 출석해 소년의 범죄 혐의 입증에 유력한 진술을 하고 있다. 


 이제 사건에 대한 원고인 검사와 피고 측 변호사의 공방이 끝나고 배심원의 최종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12명의 배심원의 최종 판결은 유죄든 무죄든 만장일치여야 한다. 그들이 만장일치로 유죄로 판단하면 피고는 사형에 처해지고 무죄로 판단하면 피고는 석방된다.

 

 배심원들은 법원의 배심원실에 모여 피고의 유무죄에 대한 토의와 표결에 들어간다. 편의상 그들은 본격적인 토론에 앞서 피고의 유무죄를 두고 배심원 각자의 생각을 묻는 최초의 투표부터 한다. 최초 배심원 투표에서 12명의 배심원 중 11명이 유죄를, 1명이 무죄를 주장한다. 유죄를 주장하는 11명의 배심원들은 법정에서 진술된 내용과 증거를 바탕으로 소년이 유죄라고 판단한다. 


 단 한 사람 8번 배심원은 소년이 아버지를 죽였다고 증언한 증인들의 주장과 검사가 제시한 증거에 대해 합리적 의심(Reasonable Doubt)이 있다며 무죄를 주장한다. 여기에서 합리적 의심이 있다는 것은 범죄를 뒷받침하는 여러 정황이나 증거 및 증언에 의심해봐야 할 점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즉 합리적 의심이 있다면 소년에게 유죄를 선고할 수 없다.

 

 최초 투표 이후부터 유죄를 주장하는 배심원과 무죄를 주장하는 배심원 간에 법정에서 드러난 여러 증거와 진술을 두고 끝없는 공격과 방어가 벌어진다. 이 공방 과정이 이 영화의 전부다. 이 과정에서 배심원들끼리 치열하게 대립하게 되고 이것이 곧 '12인의 성난 사람들'로 나타난다. 열띤 토론 과정에서 사건과 관련된 실체적 진실이 하나씩 드러나게 되고 배심원들은 하나의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로써 정의가 실현되는 것으로 완결된다.

 

 이 영화의 핵심 스토리는 소년이 유죄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과정과 최후의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스토리를 넘어 영화의 중심을 이루는 배심원제에 대해 주목해 보자. 관객은 배심원들의 토의 과정에서 배심원 각자의 개인적 삶과 가치관, 성장배경 등이 사건 자체의 실질적 진실만큼이나 유무죄 판단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을 목격한다. 


 즉 사건의 진실이 배심원의 인간적 한계와 약점에 의해 훼손되고 진실을 왜곡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배심 과정을 지켜보면서 관객은 피고의 운명이 결정되는 과정이 얼마나 취약한 인간적 약점에 의존하고 있는지 알게 되고 더불어 그럼에도 그 약점을 딛고 서있는 배심원제도가 갖는 집단지성의 힘을 확인하게 된다.

 

 배심원 토의 과정에서 자신들이 판단에 이른 근거를 서로 묻고 대답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간적 한계가 바로 이 영화가 관객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테마가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영화의 목표는 피고의 유무죄 자체가 아니라 유무죄를 결정하는 의사결정 구조를 들여다보는 데에 있다. 관객은 합리적 이성적 판단을 지향하지만 절대적 진실에 대한 확고한 판단에는 이를 수 없는 인간의 내재적 한계를 배심원제도라는 차선의 방식으로 극복해가는 사법 현장을 본다.

 

 배심원 실에서 배심원이 펼치는 토론이 전부인 이 영화는 화려한 구성, 무대장치, 배경, 카메라 웍이 필요하지 않은 저예산 영화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의 힘은 그 어느 영화보다 크다. 그것은 헨리 폰다를 비롯한 배우들의 열연에도 있지만,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는 치밀한 이야기 구조에 있다. 


 복잡한 스토리는 아니지만 법정에서 다뤄진 증거와 증인들의 증언에 대해 하나씩 따져가며 그것들이 지닌 오류와 이것으로 인한 배심원들의 판단의 오류를 하나씩 찾아내고 교정해가는 과정은 그 어떤 영화의 스펙터클한 전개보다 힘 있고 설득력이 있다. 이것이야말로 이 영화의 깊은 힘이다. 


 그 힘은 1997년에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 잭 레몬 주연으로  리메이크한 동명의 영화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이 작품은 브로드웨이 무대에도 자주 등장하며, 최근에는 우리나라 연극무대에도 오르고 있다.  


 우리는 늘 정의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정의의 최종적인 구현 장소는 법정이라고 믿으며, 신처럼 절대적 판결자가 한 치의 오류도 없이 정의를 판단해 줄 거라는 막연한 환상을 지니고 있다. 더불어 현실의 법정에서 우리가 바라는 정의는 늘 완벽하게 실현되지는 않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모순적 믿음에도 불구하고, 정의는 실현된다는 믿음에 기초하여 진실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 인간이 걸어가야 할  길이다.  이 영화는 정의에 대해서, 사실과 진실에 대해서, 범죄와 처벌에 대해서, 인간의 판단과 이성의 한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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