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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i Dante May 19. 2019

나는 야구다.

나는 야구다. 


땡볕 아래서 공을 던지고 치고 달려 동물의 회귀본능을 따라 원점으로 돌아오면 1점의 영광을 안기는 경기인 나를 찾아 인생의 3시간을 기꺼이 소비하는 족속이 바로 호모 사피엔스, 인간이다.     

 

그들은 나를 즐기며 기뻐하고 환호하고 슬퍼하고 탄식하며 승리의 여신의 몸놀림에 탐닉한다. 


누군가는 나를 위해 인생 전체를 걸고 누군가는 나를 빌미로 돈을 쓸어 담는다.      


그들은 공과 방망이의 접점을 절묘하게 구사하는 기술을 타율이라는 통계기반 언어로 치환해 부른다.


그들은 나를 처음 탄생시킬 때 스포츠라는 고귀한 이름으로 치장했지만, 초등학교 때 아빠를 따라 동네 공터에서 방망이를 휘둘러 허공에 포물선 궤적을 그릴 때를 제외하고는 순수한 의미의 스포츠라는 부름은 이제 더 이상 내게 맞지 않는다.      


그러기엔 나는 너무 오염되어 사람들의 영혼에 짧은 쾌감과 승률과 돈 그리고 지역성을 비빔으로 제공하고, 허울 좋은 우리끼리 문화와 동류의식을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구사하는 핑계에 지나지 않는 존재가 된 지 오래다.      

오늘도 TV는 나를 위해 기꺼이 시간과 인적 물적 자원을 풀가동해 시각과 청각 그리고 약간의 셈법만으로 사람들의 시간소비를 독려한다. 


스포츠 중계방송이 귀중한 전파자원을 나의 일일 행장기에 할애하는 것은, 같은 말을 반복해 질러대는 캐스터와 해설자를 배치하고 나에게 카메라를 주구장창 들이대면 낮은 비용으로 프로그램 제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공격과 수비의 교대와 선수 교체 타임에 쉼 없이 쏟아부을 광고와 그에 따른 수입 때문이기도 하다. 

     

감독에 의해 설계되고 선수들에 의해 건축되는 <나>라는 이름의 공간 창작물을 이용해 최대의 수익을 올리는 방송의 상술과 기술의 협연에, 관중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자신의 시간을 쏟아부으며 나의 완성에 조연으로 성실히 역할을 수행한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기업의 시스템에 육체와 영혼이 녹아든 채 보낸 그들이 노동의 대가로 맞이하는 3시간 동안의 나와의 조우를 탓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들이 나와 함께 보낸 시간의 기회비용에 대해 생각해보는지 궁금할 뿐이다.   

   

그라운드의 다이아몬드에서 몸과 영혼의 각축과 향연이 사람들의 환호와 탄식과 함께 저물고 승리의 여신이 한편에 기대설 때, 운동장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에 슬쩍 비쳤다 사라지는 나의 잔영을 알아채는 사람은 없다.     

 

TV 화면에서 멀어져 가는 전광판의 숫자와 함께 잠시 현실을 잊은 사람들의 감각기관은 다시 일상으로 그 주인을 소환한다. 


오늘 나를 건축한 선수들은 내 프레임 한 컷 한 컷을 반추하며 내일의 나를 맞을 준비를 할 것이다.      


나는 오늘도 사람들이 내게 아낌없이 주고 간 시간을 밤안개 내린 레테의 강물에 크로노스를 부르며 풀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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