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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ameLee Feb 10. 2023

23년 1월의 창업 일지

노력의 잔인함, 완벽주의자와 자기혐오

목차  
1. "노력한다"는 말은 잔인하다.  
2. 완벽주의자의 창업 여정  
3. 자기혐오로 나를 깨부수기  
4. 자유가 나태함이 되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말은 잔인하다.

 요즘 들어 "열심히 노력한다"라는 말이 잔인하게 들린다. 유튜브, 기사, 책을 보면 노력한 사람의 성공 이야기가 나온다. 이들이 성공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를 보면, 성공하기 위해서 노력은 필수적임을 느낀다. 더 나아가, 이들이 이뤄낸 노력은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고, 노력 그 자체만으로 가치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노력이 의미를 갖게 되는 순간은 성공을 달성했을 때다.

스윙스의 파급효과 가사 (TMI. 나는 랩을 좋아한다)


 바꿔 말해, "열심히 노력한다"는 말은 성공을 해야 비로소 가치를 지닌다. 실패를 한 시점에서 그동안의 노력은 본연의 가치를 잃는다. 물론, 노력의 과정 속에서 성장은 보장된다. 다만, 노력을 하는 이유는 자신이 갈망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다. 성장은 부수적인 결과물이지, 결론만 두고 본다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이다. 과거에는 열심히 노력하면 설령 실패하더라도, 많은 걸 경험했고 누구보다 성장하기에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창업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면 모든 것이 의미가 없는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든다.


 문득, 지금까지 나는 "노력하는 모습" 자체에 만족하며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가 어떻든 간에, 노력에 집중했고, 흘리는 땀과 눈물에 만족했다. 주변 지인은 노력하는 내 모습을 존경했고, 응원해 주었다. 하지만, 앞으로 지향해야 하는 나의 모습은 "노력의 가치를 인정받은 모습"이 돼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한다.

쏟아부은 노력이 가치를 인정받으면 좋겠다. (출처 : <도라에몽>)




완벽주의자의 창업 여정

 어제 완벽주의자를 다루는 게시글을 보고, 나는 완벽주의자임을 깨달았다. 완벽주의자에게 목표치가 100이라면, 10을 달성했든지 혹은 90을 달성했든지 모두 같은 실패로 인식된다. 즉, 완벽주의자에게 과정은 어떠하든지, 결과를 달성했느냐 못했느냐가 중요하다.

완벽주의자에게 완벽은 너무도 힘들다. (출처 : <치즈덕>)


 창업은 완벽주의자에게 고된 여정이다. 더군다나, 주변에서 쉽게 접하는 유명 스타트업의 사례를 목표로 잡은 완벽주의자라면, 여정은 더욱 어려워진다. 높은 수치를 목표로 잡았지만, 이 목표에 도달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다양한 가설을 검증해야 하고, 서비스가 막상 나와도 폭발적인 성장은 눈에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시간이 길어질수록,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스트레스와 감정 피로도는 계속 누적된다.


 그렇기에, 작은 목표를 설정해서 차근차근 올라가는 게 중요하다. 다만, 머리로 이해해도, 가슴이 따르지 않는 게 문제다. 이럴 때, T인 사람들이 부럽다. 앞으로는 목표를 더 잘게 쪼개고, 빠르게 헤쳐나가도록 업무 패턴을 바꿔야겠다.

이 게시글을 보고, 난 완벽주의자임을 깨달았다. (출처 : <인스타그램 @bba_zza_> )




자기혐오로 나를 깨부수기

 완벽주의자일수록 자기혐오가 심하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자신을 용납하지 못하고, 왜 그거밖에 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혐오감이 생긴다. 비록 단어의 어감이 부정적으로 보이지만, 나에겐 적절한 원동력이 되기에 이 단어를 오히려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편이다.


 나는 자기혐오가 많은 편이다. 목표한 바를 달성하지 못할 때, 스스로를 비난한다. 다만, 이 비난은 "나"라는 존재를 움직이는 데 적절한 원동력이 된다. 물론 심적으로 좋지는 않다.  오히려 자신을 비난한 후, 같은 실수를 다시 반복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더 많은 노력을 쏟는다. 또한, "나"라는 존재를 벌거벗긴 채로 다시 되돌아보게 만들며, 이는 더 성숙한 메타인지로 이어진다. 적절한 자기혐오는 자신을 깨부수고, 다시 재조립시킨다.

(출처 : <컴퓨터 부수기 플래시 게임>)




자유가 나태함이 되지 않도록

 학교에 다닐 때는 강의 시간표가, 회사에 다닐 때는 출퇴근 규정이 있다. 대학생과 직장인의 하루는 강의, 출퇴근이란 틀에 맞춰지며, 최소한의 규칙이 적용된다. 출근 시간에 맞춰, 첫 강의 시간에 맞춰 눈을 뜬다. 바꿔 말해, 대학생도 직장인도 아닌, 초기 창업가의 하루는 완전한 자유가 주어진다.


 완전한 자유는 자칫 나태함을 만들 수 있다. 그렇기에 자유를 경계해야 한다. 직장 퇴사도 했고, 대학교도 졸업했기에 나의 하루, 24시간은 스스로 온전히 컨트롤할 수 있다. 처음에 이러한 자유가 주어졌을 때, 내 하루하루는 나태한 순간이 많았다. 아침 11시에 눈을 뜰 때도 있고, 늦게 일어나기에 그만큼 일하는 시간도 줄어들었다.

자유가 나태함이 되지 않도록!


 나태한 나를 향한 자기혐오를 느꼈고, 더 이상 나태해지지 않도록 루틴을 정해서 살아가고 있다. 요즘 루틴은 아침 6시에 기상해 오전 근무를 하고, 가볍게 운동을 한 후에 회사로 간다. 회사로 가는 시간 동안,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다. 퇴근 후에는 별도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어찌 보면, 지루한 하루일 수도 있지만, 루틴화를 시켜놓으니 나태함이 줄어들었다. 물론 너무 피곤하면 늦잠 잘 때도 있다...

벌써 3개월이나 진행한 북 인증 스터디. 루틴은 나태함을 막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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