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이유

'남은 인생'에 대한 조급함

by 로벨리아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가속도가 붙어 흐른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진리다.

하지만 그 속도의 가속이 왜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 타인에게는 '꼰대'라는 이름으로 비치게 만드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배우 이서진 님의 인터뷰에서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았다.


"나이가 점점 들어서 우리 나이가 되면 우리가 남은 인생이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한단 말이야. 우리가 살아온 인생보다 남은 인생이 짧게 남았다고 생각이 들면 사람이 조급해져. 조급해지니까 자꾸 나만 생각하게 되는 거야. 내 위주로 생각하게 되고. 그래서 꼰대가 되는 거야."

그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꼰대'의 이유를 경험의 우위나 권위 의식에서 찾았던 내게, 그 원인이 남은 시간에 대한 '조급함'이라는 통찰은 날카롭게 다가왔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을 재는 기준이 달랐다.

유치원생 때는 초등학생이 되고 싶었고, 초등학교를 입학하니 6학년 선배들이 부러웠다.

중고등학생이 되자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고 막상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니 4년의 대학 시절은 중학교 3년보다 훨씬 빠르게 흘러갔다. 스무 살에는 '이제 인생의 4분의 1을 살았어' 하며 생각했지만, 서른이 되니 문득 '60년 인생 중 벌써 반을 살았구나' 하는 생각에 조급함이 밀려들었다.


이 조급함의 뿌리는 단순히 '남은 시간이 적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선택의 폭이 좁아든다'는 현실 인식에서 온다.

어린 시절의 꿈은 장대했고, 가능성은 무한했다. 우주 비행사가 될 수도, 대통령이 될 수도 있었다.

그때는 세상을 모르는 대신 나를 현실적으로 가두는 '한계' 또한 몰랐기에, 생각의 폭이 넓고 자유로웠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현실을 알게 될수록, 세상은 '이것은 안 돼', '그것은 너의 길이 아니야'라며 수많은 선택지를 지워나간다. 우리의 삶은 미로의 출구가 점점 좁아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선택의 폭이 좁아들 때, 사람은 필사적으로 '가장 안전한 길', '나에게 가장 이득이 되는 길'만을 선택하려 들고, 이것이 타인을 배려할 여유를 잃은 '나 위주의 생각'을 낳고, 결국 꼰대가 되는 것이다.


시간의 가속과 선택의 축소, 이 모든 불안을 멈출 방법은 없을까.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 불안을 새로운 성장의 동력으로 전환하고 싶었다.


"40세부터는 세상에 내가 경험하고 얻은 것을 베푸는 나이로 1살부터 시작하는 게 좋지 않을까?"


나이를 먹는 것을 '잃어가는 과정'이 아닌, '새롭게 시작하는 과정'으로 재정의하는 것이다.

그러면 스무 살의 1살은 '무엇이든 얻어야 하는 나이'였지만, 마흔의 1살은 '이미 가진 것을 나누기 시작하는 나이'가 된다.

선택의 폭이 좁아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세상과 나를 현실적으로 바라본 덕분에 얻은 '정확한 경험치'가 쌓였음을 의미한다. 40대의 1살은, 이제 더 이상 무엇을 얻기 위해 조급해할 필요 없이, 쌓아 올린 이 경험과 지혜를 다음 세대나 주변에 나누어주는 데서 새로운 즐거움과 보람을 찾을 수 있는 나이다.


축소되던 선택의 폭이 '나'를 벗어나 '세상'으로 향하는 순간, 갑자기 무한한 가능성으로 확장되는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잃어버린 시간의 조급함을, '베풂과 기여'라는 새로운 기준의 시간으로 덮어쓰는 것이다.


40세에 1살로 시작해 20년이 흐른 60세의 나는, 비로소 '베풂의 20세'가 될 것이다.

그때는 잃어버린 시간의 조급함을 털어낸 채, 세상에 관대하게 시선을 돌릴 줄 아는 '좋은 사람'으로 서 있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제 마흔의 1살을 준비하며, 내가 가진 작은 지혜를 어디에 나눌 수 있을지 고민하는 즐거움을 누려보려 한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