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줄곧 '거시 세계'의 편이었다.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 느껴지는 그 압도적인 크기, 끝을 알 수 없는 우주의 팽창, 블랙홀 너머의 미지.
그런 것들이 좋았다. 거시 세계는 마치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을 닮아 있는 것 같아서, 그곳엔 한계라는 게 없을 것 같아서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반면 '미시 세계'는 어쩐지 답답하게 느껴졌다. 쪼개고 쪼개다 보면 결국 분자가 되고, 원자가 되고, 쿼크가 되고….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는 기분이랄까. "여기가 끝이야, 더는 없어"라고 선을 긋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무한히 뻗어나가는 거시 세계를 사랑했고, 한계가 명확해 보이는 미시 세계를 외면하곤 했다.
그런 내 오만한 편견에 균열을 낸 것은,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의 짧은 한마디였다.
"미시 세계를 보다 보면 너무 작은 세계예요. 근데 그 작은 애들 덕분에 지금의 거시 세계가 다 작동합니다. 걔네들이 하나하나 역할을 하지 않으면 거시 세계는 전부 무너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한계'라고 치부했던 그 닫힌 세계가 실은 거대한 우주를 떠받치고 있는 기둥이었음을 깨달았다.
쿼크가, 전자가, 그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입자들이 제자리에서 묵묵히 진동하고 회전하지 않는다면? 거대한 별도, 은하도, 우리가 사는 이 세계도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그 '끝'이 있고 '한계'가 있어 보이는 작은 입자들이야말로, 무한해 보이는 거시 세계의 실체였던 것이다.
거시 세계가 멀리 있는 우주가 아니라 '우리의 삶' 그 자체라면 어떨까.
그리고 나는 그 삶을 구성하는 지극히 작은 미시 세계의 입자라고 말이다.
우리가 오늘 아침 힘겹게 눈을 뜨고, 출근길 만원 버스에서 버텨내고, 누군가에게 작은 친절을 베푸는 이 사소하고 반복적인 일상들. 어쩌면 이것은 쿼크의 진동처럼 하찮아 보일지 모른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내 인생은 너무 좁고 한계가 있어"라고 투덜댈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이 작은 역할들을 멈추는 순간, 나의 세계는, 내 가족의 세계는, 나아가 우리 사회라는 거시 세계는 조금씩 삐걱대거나 무너질지 모른다.
나는 여전히 거대하고 무한한 것들을 동경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 무한함은 가장 작고 유한한 것들이 치열하게 움직이며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도 나는 나의 미시 세계에서 부지런히 움직인다. 비록 나는 우주의 먼지 같은 한낱 입자일지라도, 내가 멈추지 않기에 나의 거시 세계는 오늘도 무너지지 않고 찬란하게 작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