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꾸준함은

'익숙해진 뒤'에 시험대에 오른다.

by 로벨리아


무언가를 처음 시작할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꾸준함'을 장착한다.

서툴고 느린 내 모습이 답답해서, 하루빨리 이 낯선 일을 내 몸에 붙이고 싶어 안달이 나기 때문이다.

이때의 꾸준함은 사실 '생존을 위한 속도전'에 가깝다.

남들은 10분이면 끝낼 일을 나는 한 시간이나 붙잡고 있어야 할 때, 그 격차를 줄이기 위해 우리는 매일 같은 자리에 앉는다. 그렇게 몇 년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덧 '능숙함'이라는 보상이 주어진다.

이제는 눈을 감고도 할 수 있을 만큼 익숙해진 상태. 비로소 안도감이 찾아온다.


익숙함이 찾아온 뒤의 공허

그런데 아이러니는 여기서 시작된다.

그토록 원했던 '익숙함'이 몸에 붙는 순간, 역설적으로 '꾸준함'은 위기를 맞이한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더 이상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고, 이는 곧 성취의 도파민이 줄어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매일 해내는 것 자체가 도전이었는데, 이제는 숨 쉬듯 당연한 일이 되어버리니 재미가 사라지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 지점에서 멈춘다. "이 정도면 됐지"라는 생각과 함께, 몸에 익은 습관은 서서히 마모된다.

나 또한 빨리 익숙해지고 싶어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달려들지만, 막상 그 일이 손에 익어 '쉬운 일'이 되어버리면 어느새 마음이 붕 뜬 채 다른 새로운 자극을 찾아 기웃거리곤 했던 것 같다.


진짜 꾸준함은 익숙해진 뒤에 시작된다

내가 우러러보는 '꾸준한 사람들'의 위대함은 바로 이 지점에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익숙해져서 재미없어진 일을, 여전히 어제와 같은 무게로 해내는 사람들이다.


초보자의 꾸준함: 익숙해지기 위한 '노력'

숙련자의 꾸준함: 익숙함을 견디는 '인내'


익숙함은 양날의 검이다. 그것은 우리를 편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우리를 안주하게 만든다.

진짜 꾸준함이란, 몸에 붙어 버린 익숙함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그 지루한 평온함을 매일 다시 선택하는 용기일지도 모른다.


빨리 익숙해지고 싶어 노력했던 그 마음을, 이제는 익숙해진 일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바꿔보려고 한다. 꾸준함은 결과가 아니라, 익숙함이라는 권태를 이겨내는 과정 그 자체니까.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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