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판(Scaffolding) 만들기

Ep. 3. 엄마가 준비하는 수학강의

by Estelle

Ep. #3 엄마가 준비하는 수학강의

레프 비고츠키(Lev Semenovich Vygotsky, 1896–1934)는 러시아(당시 소련)의 심리학자이자 교육학자로, 사회문화적 발달 이론(Sociocultural Theory)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인간의 발달과 학습이 사회적 상호작용과 문화적 맥락에 의해 깊은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가 제안한 개념으로 근접발달영역(Zone of Proximal Development, ZPD)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학습자가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지만, 유능한 타인의 도움을 받으면 해결할 수 있는 과제의 범위를 의미한다.


근접발달영역 이론에 따르면, 학습자가 혼자서 독립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과제의 수준을 현재 발달 수준(Current Development Level)이라 하고, 학습자가 유능한 타인의 도움(교사, 부모, 또래 친구 등)을 받으면 해결할 수 있는 과제의 수준을 잠재적 발달 수준(Potential Development Level)이라 할 때, 현재 발달 수준과 잠재적 발달 수준 사이에 근접발달영역이 존재하며, 이 영역에서는 적절한 도움 (발판, Scaffolding)을 통해 학습자의 발달이 촉진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자전거 타기를 배울 때, 자전거를 혼자서 못 타는 상태(현재 발달 수준)와 스스로 자전거를 타게 되는 상태(잠재적 발달 수준) 사이에 부모의 손이나 보조 바퀴가 도움을 주는 상태가 근접발달영역이다. 입니다. 부모의 손이나 보조 바퀴가 바로 그 도움 역할이다. 즉, 학습자가 어려운 과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단계별로 적절한 지원을 제공하는 과정이 발판을 마련해 주는 것이고, 학습자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게 되면 지원을 줄이며 스스로 하도록 유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들의 수학 공부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나 자신도 수학을 다시 공부해야 했다.


고등학교 2학년을 앞둔 아들이 배우기 시작한 수학 내용은 극한, 미분, 적분이었다. 이 내용은 이과에서 배우는 본격적인 미적분 과목이 아니라 현재 교과 과정에서는 ‘수학Ⅱ’로 불리는 과목으로, 다항함수의 미적분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쉽게 말해 미적분의 도입 부분이었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려 보아도, 이 내용은 처음 배울 때 꽤 어려운 개념이었다. 특히, 대치동 학원 문제 난이도를 생각할 때, 학원 진도를 무리없이 따라간다는 것은 아들에게 상당히 힘든 일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치동 학원에서 아들과 함께 수업을 듣는 학생들 대부분은 이미 ‘수학Ⅱ’를 선행학습으로 한 번 이상 학습한 상태였다. 자연히 학원의 수업 속도는 매우 빠르게 진행되었고, 문제 수준도 상당히 높았다. 반면, 초등학교 시절 아들은 선행학습 대신 즐겁게 학원을 다니며 인성교육(?)에만 힘을 쏟았던 아들의 수학 실력은 다른 학생들과 간극이 많이 벌어져 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물리적으로 따라가기 어려운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처음 배우는 미적분이라는 개념 자체도 아들에게는 낯설고 어렵게 다가왔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 상황을 방치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아들과 함께 학원 숙제라도 해결해 보기로. 아들이 혼자서 학원 숙제를 해내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상태에서 그대로 두는 건 엄마로서 도리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문제는 나 자신이었다. 막상 아들과 숙제를 같이 풀어보려고 준비했지만, 기본 개념조차 희미하게 기억나는 수준이었다. 나름 고등학교 시절 수학을 제법 잘 했다고 생각했지만, 올해 만으로 50세인 내가 고등학교 시절 배운 미적분은 너무 오래된 기억 속의 내용이었다. 그동안 직장생활 하면서 간단한 미적분은 접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금새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난이도 높은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기본 이론부터 차근차근 다시 복습해야 했고, 게다가 아들과 함께 문제를 풀어나가기에는 시간도 턱없이 부족했다.


또 하나의 고민은 내가 아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권위를 어떻게 세울 것인가였다. 아들과 함께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내가 길을 잃고 헤매는 모습을 보인다면, 아들은 나를 믿고 의지하기 어려워할 것 같았다. 학습이라는 여정을 함께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준비된 모습을 보여야 했다.


결국 나는 인터넷 강의를 찾아보기로 했다. 요즘은 메가스터디와 같은 여러 교육 플랫폼에서 유명한 일타 강사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나도 메가스터디의 유명 수학 강사의 온라인 강의를 신청해 듣기 시작했다. 필기를 하며 집중해서 들을 시간은 없었지만, 설거지를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침대에 누워 잠시 쉴 때마다 강의를 틈틈이 들었다. 강의를 듣는 시간만으로도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지만, 아들을 돕기 위해서라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들의 학원 숙제를 내가 먼저 풀어보기로 했다. 문제집을 펼쳐 문제를 하나씩 풀면서, 필요한 개념을 정리하고 풀이 과정을 노트에 정리했다. 쉬운 문제들은 굳이 미리 풀지 않았지만, 난이도가 높은 문제들은 내가 먼저 풀이법을 익힌 뒤 아들에게 설명할 준비를 했다.


아들이 왜 어려워하는지, 어떤 부분에서 혼란스러워하는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명확히 설명해야 했다. 마치 학원 선생님처럼, 아들이 이해하기 쉽게 체계적으로 정리된 설명을 제공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문제를 완벽히 이해하고, 그 과정을 아들에게 논리적으로 전달할 수 있어야 했다.


높은 산을 오를 때, 함께 손을 잡고 길을 찾아갈 수도 있다. 참여해 함께 오른 모든 이들이 뿌듯한 경험을 가질 것이고 자신이 찾아낸 길을 기억하고 흐뭇해 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잘못된 길로 들어설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먼저 산 정상에 올라가 길을 확인하고, 아들에게 그 길을 알려주려고 했다. 내가 먼저 올라가 '이 길로 따라오면 된다'고 말하면, 아들은 나를 믿고 내 손을 잡고 자신감을 갖고 따라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여정은 결코 쉽지 않겠지만, 아들에게 내가 믿을 수 있는 길잡이와 발판이 되어주고 싶었다. 그것이 엄마로서 내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믿었다.


월요일 연재
이전 02화학습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