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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방계 소녀 Dec 02. 2024

슬픔의 모양

예민한 자의 슬픔


“가끔 알고는 못 떠날 먼 길처럼 긴 하루가 있다. 그날이 그랬다.” (이석원, 슬픔의 모양) 


서사가 담긴 산문은 소설을 닮아 있다. 이석원의 글이 그러하다. 작가의 이름을 지우고 나면 소설 같은 이야기로만 남는다. 예민한 자의 슬픔을 노래하는 그에게서 받는 위로가 나는 고마울 따름이다. 나와 꼭 닮은 어느 가족의 기쁨과 슬픔. 내내 슬픈 엄마 생각이 나서 한 권을 더 주문하고 말았다. 


하필이면 오늘도 울 엄마는 외갓집에서 배추 몇 포기를 얻어온 김에 손수 담근 김치를 퇴근길에 들러 가져가라는데, 못돼먹은 나는 앞으로도 갚을 수 없을 만큼 큰 사랑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알고도 아니 하는 효도를 갑자기 할 자신도 없을뿐더러, 살가운 면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나로서는 도무지 그 사랑을 갚을 재간이 없으니까. 


내리사랑은 원래 그런 거란 속 편한 말은 하지 마시라. 우리가 뭘 몰라서 하지 못한 게 과연 얼마나 될 것이며, 주고 싶은 사랑이라 해서 어찌 내내 무조건적일 수가 있으랴? 차라리 아싸 하고 냉큼 받아먹을 만큼 무던한 놈이었더라면 차라리 좋았겠건만. 난 그저 이렇게 생겨 먹은 내가 서글프고, 그런 엄마를 생각하면 내내 슬퍼질 뿐이다. 


알고는 못 떠날 길처럼 먼 하루가 내게도 있다면 아마도 오늘이겠다. 


벌써 3쇄라는 기쁜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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