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분명 귀여우면서도 때때로는 알 수 없는 미묘한 존재다. 쓰다듬어 달라며 사랑스럽게 팔을 내미는가 하면, 보호자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때는 전혀 죄책감 없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그리고 높은 곳으로 올라가 역시 똑바로 보호자를 응시한 채 놓여진 물건들을 바닥으로 툭툭 쳐낸다. 이런 행동에는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더 싫게, 좋아하는 사람들은 더 좋게 만드는 독특함이 있다.
그러나 이런 잘 알려진 속내를 알 수 없는 행동들 외에도 한 가지의 또 다른 궁금증을 유발하는 행동이 있다. 바로 상자다. 고양이는 왜 상자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좋아할까?
만일 반려묘를 키우고 있다면 당장 집에서 이 실험을 감행해도 좋다. 장난감이 가득 찬 바구니와 아무것도 없는 빈 골판지 따위로 만들어진 상자를 나란히 놓고 고양이의 반응을 살펴보는 것. 그 많은 값비싼 장난감들을 철저히 외면하고 상자로 갈 확률은 99.9%다. 대체 왜?
고양이 행동 전문가에 따르면 고양이가 상자를 찾는 요인으로는 스트레스 수준과 따뜻함, 편안함, 그리고 숨어 있기 위해서 등 몇 가지가 있다.
고양이 관련 매체 더캣코치닷컴의 운영자이자 고양이 행동 컨설턴트인 마릴린 크리거는 "스트레스를 다루는 고양이의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고양이가 무엇인가 곤욕을 치르고 있거나 혹은 멘붕상태이거나 압박받는 상황에서 상자는 안에서 밖을 볼 수는 있지만 밖에서는 안을 못 보는 안전한 공간이 된다는 것.
응용동물행동과학저널(Applied Animal Behavior Science journal)에 발표된 한 연구에서도 규칙적으로 상자를 갖고 노는 고양이들의 스트레스 수준이 감소하고 환경에 더 빨리 적응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이 보호소에서 상자가 있는 곳과 없는 곳의 고양이들을 관찰한 실험에서도 상자가 있는 곳의 고양이들이 더 평온한 상태를 유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크리거는 만일 고양이를 새로 입양할 계획이라면 집을 더 많이 느끼도록 만들기 위해 상자들을 배치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그는 고양이들에게 상자는 통제할 수 있는 안전한 숨은 공간으로, 그 안에서 보호받고 있다고 느끼며 평온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상자는 벽에서 어느 정도 떨어지게 배치하고 상자 안에 수건이나 장난감 등을 넣어주면 좋다. 혹은 티셔츠나 담요 등 보호자의 체취를 느낄 수 있으면 더욱 좋은데, 냄새가 고양이들을 덜 불안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
집에 고양이를 혼자 놔둘 경우라면 더더욱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고양이들이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 여전히 상자를 좋아하는 이유는 뭘까?
미 UC데이비드에서 고양이 관련 연구를 진행하는 미켈 델가도는 상자 안에서 고양이들이 따뜻함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고양이는 온열중성대(thermoneutral zone)를 갖고 있는데, 즉 몸을 따뜻하게 혹은 차갑게 만드는 등의 체온 조절을 위해서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되는 온도를 가리킨다. 골판지로 만들어진 상자는 고양이의 신체 열을 유지시키는 단열재 역할을 하기 때문에 따뜻함을 느끼게 된다.
열은 또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고양이가 랩탑이나 라이에이터 같은 따뜻한 장소에 올라가 자리 잡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외에도 상자 안에 있는 것은 어미의 자궁안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역할도 한다. 고양이 테라피스트인 캐롤 윌본은 좁은 공간은 고양이가 안전하고 이곳을 지배하고 있다고 느끼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상자 안에서 아늑한 느낌을 받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상자 안에 있으면 자신을 은폐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 델가도는 상자 안에 있으면 숨어 있는 동안 고양이에게는 먹이를 잡거나 훔칠 수 있는 선택이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이 행동은 주로 집고양이에게서 관찰되는 것이지만, 전문가들은 야생 고양이들 역시 상자를 갖고 노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플로리다 고양이 구조센터의 수잔 배스 이사는 고양이가 갖고 있는 일명 "몸에 맞으면 들어간다"는 식의 행동은 야생 고양이들의 독립적인 천성과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