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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팸트리 Oct 04. 2015

한국 족보의 뿌리 [1]

족보는  총26,277권이 국립중앙도서관과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소장

한국 족보의 뿌리 [1]

 국립중앙도서관과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소장된 족보 총26,277권중 본격적인 한국의 족보 시대가 개창 된 성종조에서 현종조까지 13종 26권을 발간한 13개 성관註1을 대상으로 한국 족보의  뿌리를 알아보기로 한다. 


안동권씨의 시조 권행(權幸)의 생졸년은 미상이다. 그러나 서기 930년 왕건이 고창군(高昌郡) 병산에서 백제군과 싸울 때 권행이 크게 공을 세운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권행은 서기 800년 후반이나 900년 초반에 태어났을 것으로 추측 된다. 더구나 신라 왕실의 후손으로, 성씨는 김씨였다고 하니 권행은 서기 8백년대를 거슬러 올라가 신라김씨의 천년 DNA를 지니고 있는 셈이지만 권행의 상계 선조(先祖) 김씨 세계가 명확하지 않아 신라 김씨 천년 역사를 안동권씨 DNA역사에 편입시키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성화보를 만든 역사는 기원 후 537년이며 안동권씨 실제의 족보 역사는 서기 800년 후반이나 900년 초반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약1100년 정도 이어져 내려왔다. 안동권씨 족보는 약1100년의 역사가 담겨 있다. 우리나라는 벼슬을 지낸 이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에게 벼슬을 추증하였다. 이것이 우리의 오랜 관습이다.   


능성 구씨(綾城 具氏) 시조 구존유(具存裕)의 생졸년 역시 미상이다. 구존유는 1224년(고종 11)에 송나라가 몽골에 패망하자 금성(錦城: 나주의 옛 이름)으로 망명해 왔다. 한편 중국 사료에는 고려인으로 나와 있기도 하다. 그 뒤 구존유는 능성에 세거하였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능성을 구씨의 관향(貫鄕)註2으로 삼았다고 한다. 

註1; 13개 성관 명단은 7대 DB 일련번호 3 『한국 족보 26277권 王代別 분석』7쪽 참조 요. 註2; 성씨의 고향, 본향을 뜻한다. 능성구씨의 능성구씨성보[현좌파 현로파 홍파 성량파 성노파]를 만든 시기는 437년이며 능성구씨 족보 역사는 약 8백년이 된다.  


연안 이씨의 시조는 당나라 장군 이무(李茂)이다. 그는 660년 나당연합군의 중랑장(中郞將)으로 소정방(蘇定方)을 따라왔다가 신라에 귀화하였다고 한다. 그 뒤 황해도 연안에 터를 잡아 후손들이 세거하였다. 연안이씨족보를 만든 역사는 408년이며 연안이씨 DNA 역사는 약간 깍아내려도 14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연안이씨 족보는 약1400년의 역사가 담겨 있으며 연안이씨 선비 역사도 약1400년이 된다.

창녕성씨 시조 성인보(成仁輔)는 고려 후기 사람으로 호장중윤을 지냈다. 신라 때의 인물인 성저의 후예로 알려졌다. 성인보의 후손은 경상남도 창녕군에 세거하며 창녕을 관향으로 삼았다. 고려 후기 인물이라 하니 고려후기 어느 때인지 추정하기가 곤란하다. 창녕성씨족보[중윤공인보계]를 만든 역사는 397년이지만 창녕성씨 DNA 역사 추정은 불가한 상태이다.  


 초기 단계의 13개 성관 중 4개를 뽑아 족보 역사를 알아 보았다. 외형적으로 족보를 만든 역사는 537년부터 397년 사이에 있다. 그러나 그 내부로 눈을 돌려 족보에 실린 내용물의 역사는 착수부터 난관에 봉착하여 조선왕조 분의 전체 족보 내용물의 역사를 알아보는 작업은 거의 불가능한 상태이다. 그러나 이들을 통해 우리 족보의 시조부터 지금까지 약 800년에서 약1400년의 역사가 있다는 정도 짐작하는 선에 그치고 말았다. 따라서 한국 선비의 D NA역사도 약 800년에서 약1400년 정도로 짐작이 된다. 아마 좀 더 선비의 DNA 역사 추정작업의 대상을 신라 김씨나 가락김씨로 확대하면 선비의 역사가 약2천년은 족히 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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