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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팸트리 Oct 05. 2015

삼국시대 초(初)  DNA 특성(1) - 주몽, 온조

삼국시대 초(初)  DNA 특성


1.주몽의 DNA 구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하면 해모수는 주몽의 아버지 이다. 해모수는 천제(天帝)의 아들이므로 천신(天神)을 상징한다. 유화(柳花)는 주몽의 어머니이다. 유화는 물의 신 하백의 딸이므로 수신(水神)을 상징한다. 단군이 천신 환웅과 지신 곰 사이에서 태어났듯이 주몽도 그런 스타일로 태어났다. 천신(天神)은 수직형 DNA를 지니고 있고 수신(水神)은 수평형 DNA를 지니고 있다. 단군이 수직형 DNA와 수평형 DNA의 합작품이듯이 주몽도 그러하다. 주몽의 DNA 구조는 단군의 DNA 구조와 똑같다.   

이후 동부여의 왕 금와왕이 우연히 우발수(優渤水)로 나들이를 갔다가 유화(柳花)를 만나고, 유화의 처지를 불쌍히 여긴 금와왕은 유화를 궁궐로 데려왔다. 동부여의 금와왕도 수평형 DNA를 지니고 있다. 이 지역 사람들은 모두 수평형 DNA가 강세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녀에게 햇빛이 계속해서 비치더니 마침내 임신하게 되었다. 하지만 유화는 아이가 아니라 커다란 알을 낳았다” 여기서 ‘햇빛’은 수직형 DNA를 물려받았다는 뜻이며 ‘알’은 수평형 D NA를 뜻한다. 주몽의 DNA 구조는 수직형과 수평형의 복합구조이다.    


 2.온조의 DNA 특성

온조 설화에 의하면, “동명성왕이 고구려를 건국하고 비류와 온조는 왕위에 오르는 가장 유력한 순위에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비류와 온조를 얻기 이전에 동명성왕과 북부여의 예씨 사이에서 태어난 유리가 고구려에 찾아오자 동명성왕이 반겼다. 게다가 동명성왕은 첫째 아들인 유리를 태자로 임명하자, 비류와 온조 형제는 후일이 두려워 남쪽으로 내려가 새로운 땅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고 하였다. 여기서 ‘새로운 땅을 찾아 나서다’는 문구에 주목해야 한다. 온조 형제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보려 하였다. 옛 관습이나 풍습 혹은 낡은 국가 조직과 사회 제도를 버리고 새로운 땅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 온조 형제는 스스로 새로운 생각을 하며 스스로 나아가서 새로운 일을 성공시키려는 의지가 있다.  이는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프론티어 정신이다. 온조는 프론티어 정신 DNA가 있다.


  비류 설화에 의하면 “형인 비류가 아우인 온조에게 말하기를, 대왕의 업적이 크고 우리를 잘 보살펴 주었으나, 이제 나라가 부여에서 온 큰 형의 손에 들어갔으니 다른 나라를 세우자고 하였다. 그리하여 두 형제는 어머니 소서노와 함께 대수와 패수를 건너 미추홀에 나라를 건국하였다.”고 하였다. 여기서 ‘대왕의 업적이 크고 우리를 잘 보살펴 주었다’는 말은 부왕의 은혜가 크다는 뜻이다. 은혜가 태산 같은 부왕이 부여에 두고 왔던 큰 아들이  찾아 왔다. 아비 없이 자란 ‘호로 자식’이란 설움을 딛고 자란 부여에서 온 큰 형이 천신만고 끝에 부왕과 만나 서로 어쩔 줄 모르는 광경을 볼 때 온조 형제는 부여의 큰 형에 대해 연민의 정을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더구나 부왕이 부여에서 온 큰형의 처지를 딱하고 가엾게 여길 것을 생각하니 온조 형제가 부왕과 유리에게 부담스런 존재가 되지 않을까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심 끝에 온조 형제는 어머니와 함께 정든 고향을 버리고 눈물을 머금은 채 길을 떠나기로 작심했을 것이다.  

부왕이나 온조는 물론이려니와 그의 어머니와 형까지 연민의 정(情)이 강하였다. 온조(溫祚)의 ‘온(溫)’자는 따뜻할 온자이며 ’조(祚)‘자는 자리조다. 온조(溫祚)란 따뜻한 정이 많은 임금이란 뜻이다. 온조는 대체로 정(情)이 많고 감정이 풍부하고 감동하기 쉽다. 이게 온조의 정(情) DNA다. 

마침내 한산 땅에 이른 온조 형제 일행은 부아악(지금 서울의 북한산)에 올라가 자리 잡고 살 만 한 곳을 두루 살펴보았다. 비류는 서쪽으로 보이는 바닷가에 가서 살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온조는 한수(한강) 남쪽 땅은 북쪽에 강이 있고 동쪽에는 높은 산이 감싸고 있으며 또 남으로 기름진 들이 있고, 서쪽은 큰 바다로 막혀 있는 곳에 도읍을 정하여 번창하였다. 백제의 시조 온조는 이와 같이 상황판단이 빠르고 닥쳐올 일을 미리 아는 지혜가 있다. 


 신라 말기의 승려이며 풍수설의 대가인 도선이 백제 지역인 전라남도 영암에서 나왔으며 천문(天文)과 복서(卜筮)에 정통하였다. 

고려 태조 왕건의 1급 참모 최지몽도 왕건에게 닥쳐 올 재앙을 예고하여 여러 차례 위기를 모면시킨 바 있다. 최지몽도 백제 지역인 영암 출신이다. 백제 지역의 천문과 풍수지리의 대가들의 뿌리를 찾아올라 가면 온조에 닿는다. 온조는 풍수지리에 일가견이 있었다.  

온조는 하북위례성(河北慰禮城)에 정착해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십제(十濟)’라고 하였다. 십제(十濟)의 ‘제(濟)’자는 구제한다는 뜻이 있다. 국호 십제(十濟)는 제민(濟民; 어려운 백성을 구함)사상 과 제세(濟世; 세상을 잘 다스려 인류를 구원한다) 사상이 함께 들어 있다. 또한 ‘제(濟)’자는 많은 것이 갖추어져[부(富)] 있다는 뜻이다. 백제는 물산(物産)이 풍부한 편이다. ‘제(濟)’자는 백제의 부화(富華)를 상징하고 있다. 또한 인물이 많고 성하다[제제다사(濟濟多士)]는 뜻이기도 하다. 온조는 재능 DNA를 지니고 있다.  

온조가 부왕 주몽의 슬하를 떠나 올 때 신하들 가운데서도 오간, 마려 등 열 명이 이들을 따라가겠다고 나섰으며 이들이 함께 남쪽을 향해 길을 떠나자 많은 백성들도 뒤를 따랐다. 온조는 대중에 인기가 좋은 인물이다. ‘온조(溫祚)’의 ’조(祚)‘자는 천자의 지위를, 온은 백[百]을 각각 뜻한다. 온조는 백성의 임금이며 대중의 지도자라는 뜻이다. 온조는 대중성향의 DNA가 있다.  

백제 건국 이야기는 신화적인 요소가 거의 없다. 건국의 주인공을 아름답게 꾸미거나 영웅시 하지 않았다. 온조는 실질을 숭상하며 현실주의(現實主義)의 기질을 갖고 있다. 삼라만상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인식하고 표현하며 행동한다. 사실에 근거하여 진리나 진상을 탐구하려 한다. 온조는 리얼리스트의 DNA가 있다.

 구태 설화에 의하면, “백제는 동이의 큰 나라”라 하였다. 백제가 마한의 54개의 소국을 병합하는 저력을 볼 때 백제는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등의 일체 행위에 대해 천부적인 소질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작전의 수행 방법이나 기술이 뛰어나며 조직원을 거느리고 집단을 운용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또한 백제인들은 집단의 주도권 장악을 위한 준비, 계획, 동원, 조직 등에 대한 방략이 주도면밀하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백제인의 시조 온조에게는 전술. 전략에 능한 DNA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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