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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앓이 Jul 03. 2024

스스로 섬에 갇힌 사람들, 어쩌면 우리가 가둔 사람들

음악극 <섬: 1933~2019> 후기


1933년, 수선은 가까스로 소록도행 차편에 몸을 싣는다. 소록도, 그 섬은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서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치료도 받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수선의 마음은 기대에 부풀어 오르면서도, 한편으로는 한센병이 문둥병이라 불리던 그 시절에 마을 사람들의 차별에 둘러싸여 살아온 만큼 한센인들끼리의 편안한 삶이라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기도 하다. 그렇게 시작된 소록도에서의 삶은 기대와는 달리 참혹하기만 하다. 강제 노역은 물론 신사 참배와 같은 일본식 생활이 강요되었고, 사후에도 시체를 해부당하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섬을 다시 벗어날 수도 없다. 위험을 무릅쓰고 도망친다고 해도, 결국 제 발로 소록도로 들어오게 만들었던 그 삶이 섬 밖에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1966년, 오스트리아 출신의 간호사이자 수녀인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소록도에 입도한다. 이들은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고 치료하고, 한센병에 대한 대중들의 오해를 바로잡으며 사회 인식 개선에도 힘쓴다. 타인과의 접촉을 꺼리며 스스로를 섬 안에 가두던 한센인들은 두 수녀의 노력에 희망을 되찾는다. 한편 소록도에서 나고 자란 영자는 마리안느와 마가렛을 열심히 도우면서도, 섬 안에서의 생활이 지겹기만 하다. 섬 밖의 생활을 꿈꾸던 영자는 끝내 소록도를 벗어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린다. 그렇게 섬을 벗어났지만서도 영자는 고향 땅인 소록도가 그리워 종종 섬으로 두 수녀를 만나러 돌아온다.


2009년, 난임과 난산 끝에 아이를 출산한 지선은 겨우 얻은 아이가 발달장애아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과 남편의 집안에 관련된 유전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본인이 임신 중에 무언가를 잘못한 것도 아니다. 쉽지 않았던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상상해 온 아이와의 삶이 아니기에, 지선과 남편 모두 어디에도 화살을 돌릴 수 없는 힘겨운 현실에 울분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지선은 한때 자신이 극장에서 일하던 시절 자폐성 장애를 지닌 관객에게 소리를 질렀던 것에 대한 벌을 받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자신의 아이에 대한, 그리고 과거 본인의 잘못에 대한 죄책감에 사로잡힌 지선은 커리어도 포기한 채 아이의 발달과 적응을 위해 힘쓴다. 그러나 애써 굳게 먹은 마음과 직접 발로 뛰는 노력만으로는 발달장애아의 부모로서 이 세상을 헤쳐 나가기가 녹록지 않다.



음악극 <섬>을 이루는 세 시대의 이야기는 동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차별 어린 시선에 못 이겨 스스로를 섬에 가둔 사람들과 이들에 대한 희망 어린 손길이라는 주제로 엮인다. 그 당시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한센병 환자들이 소록도에 강제 수용되듯, 시민들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장애인들 또한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장애도(島)에 갇혀버린 것이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한센병에 대한 따뜻한 관심이 치료법의 개발과 인식 및 처우 개선으로 이어졌듯, 현시대에도 장애인들을 장애도에서 꺼내기 위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극은 말한다. 한센인들의 마음속에 피어났던 희망이 단순히 당사자들이 마음을 굳게 먹은 결과가 아니라 두 수녀의 공헌으로 말미암아 생길 수 있었듯, 오늘날에도 희망은 온 사회가 더불어 살아가려는 노력을 함께 할 때 비로소 품을 수 있는 것이다.


음악극 <태일>을 제작했던 목소리 프로젝트의 두 번째 작품인 음악극 <섬>은 이번에도 역사적 사건 속 인물들의 목소리를 빌려 현 사회에 필요한 목소리를 낸다. 본 작품은 삼대에 걸친 세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인식을 제고시키기도 하지만, 그저 낙관주의자들의 허황한 마음가짐처럼 보일 수 있는 '희망'의 힘을 보여주기도 한다. 모든 사람들이 희망을 품고자 할 때, 그리고 그 희망을 위해 움직일 때, 나의 삶도 이 사회도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음을 극은 역사적 사건을 통해 증명하는 것이다.


실제 사건에 가미된 약간의 허구적 요소는 서사를 더욱 극적으로 만드는 동시에 관객이 해당 사건으로 절망하고 힘겨워하는 극중 인물들의 감정을 내 것인 것처럼 따라갈 수 있도록 돕는다. 함께 억울해하고 분노하고 슬퍼하던 관객의 마음속에 이야기 속 섬들은 문신처럼 자리 잡아 실제 섬에 갇힌 사람들을 위한 목소리와 행동으로 이어질지 모른다. 물론 세상을 바꾸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음악극 <섬>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하지만 버젓이 존재하는 장애도를 사람들에게 알렸다는 것만으로 의미를 지니는 작품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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