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닥터지바고> 후기
작년 12월 27일, 그저 30년 전을 제목으로 한 영화 한 편이 개봉하였다.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습니다.” 영화 <1987>은 한 대학생의 죽음을 시작으로 6월 항쟁을 통해 민주주의를 쟁취해 나가는 모습을 스크린에 담아냈다. 정부의 은폐에도 불구하고 숨길 수 없는 진실을 부르짖은 당시 국민들의 열정에 관객들은 뜨거운 눈물로 응답하였고, 영화 <1987>은 작품성까지 인정받으며 자연스레 꼭 봐야만 하는 영화로 자리 잡았다.
‘혁명의 순간, 운명적인 사랑’을 슬로건으로 하는 뮤지컬 <닥터지바고>는 러시아 혁명을 소재로 한다. 짜르 체제와 제1차 세계 대전, 레닌의 사회주의 혁명과 스탈린의 공포정치를 아우르는 20세기 초반을 배경으로 하는 <닥터지바고>는 유리, 라라, 파샤, 코마로프스키와 토냐를 통해 당시 처참한 러시아의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주인공 유리 지바고는 모스크바 부호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사회주의 하에서 재산을 빼앗기는 등 수많은 고난을 겪고, 이와 달리 어려서부터 한없이 가난했던 라라는 법관 코마로프스키와의 원치 않는 관계로 고통받는다.
코마로프스키에 대한 환멸을 지닌 채 살아가는 것은 라라뿐만이 아니다. 기회주의자 코마로프스키는 유리의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몬 사람이었으며, 그로 인해 유리 또한 코마로프스키에 대한 증오를 품고 있었다.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과거와 이해받을 수 없는 코마로프스키에 대한 반감을 기반으로 둘은 잘못된 감정임을 알면서도 운명적 사랑을 느낀다. 유리는 토냐와의 결혼식에서 처음 라라를 마주했음에도 “앳된 손으로 총구를 거침없이 겨눈 그녀”에게 “떠나지 못한 관객처럼” 사로잡히고, 라라 또한 남편 파샤를 찾으러 종군 간호사로 참전한 곳에서 만난 유리에 대한 마음을 숨기지 못한다.
지식인이자 급진적 혁명가인 파샤는 사랑하는 라라를 “욕망의 노예로” 짓밟은 부르주아 층에 대한 분노로 인해 스트렐니코프로 살게 된다. 붉은 군대의 통제 하에서도 코마로프스키는 그에 동조하며 살아남고, 후에 파샤에게는 사형 선고가 내려지지만 기회주의자답게 코마로프스키는 또다시 위기를 면한다. “살면서 나 같은 사람을 친구로 두는 게 오히려 편할 거야. 적이되기엔 난 너무 위험한 상대거든.” 자신이 건네는 도움의 손길을 유리가 마다할 때마다 경고하듯이 건네는 코마로프스키의 말은 얄밉지만 부정할 수가 없다.
<닥터지바고> 속 핵심 인물 다섯 명은 격변의 시대를 살아가던 러시아 사람들의 모습을 반영한다. 아니, 해야 한다. 하지만 원작과는 달리 각색된 대본은 그 임무를 제대로 수행해내지 못한다. 프로듀서는 이번 프로덕션에서 역사적 배경보다는 주인공들의 운명적인 사랑에 중점을 뒀다고 밝혔다. 비난을 면치 못한 무대 연출에 있어서는 무대를 시적으로 표현해보고 싶은 마음에 각 장면이 갖고 있는 정서를 잘 전달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고 디자이너는 언급한 바 있다. 이로 인해 역사적 배경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졌고, 그 속의 인물들의 처참한 삶이 생생하게 전달되지 못했다.
과거 기억에 대한 아픔 속 둘만의 감정적 유대를 기반으로 하는 유리와 라라의 애절한 사랑은 불륜이라는 프레임을 뚫지 못하고, 배우자의 내연 관계를 이해해주는 토냐와 파샤의 선택은 관객들에게 물음표만 남길뿐이다. 혐오의 대상이었던 코마로프스키와 라라가 단 둘이 유리아틴을 탈출하도록 한 유리의 선택에 힘이 실리려면, 코마로프스키가 라라를 아끼는 마음이 한순간이라도 진심으로 비춰져야 한다. 각자의 목적이 뚜렷하고 선량한 인물들의 기질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선택은 관객으로서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밖이고, 그들의 감정은 공감의 범위를 벗어난다. 결과적으로 뮤지컬 <닥터지바고>는 당시의 러시아를 구현해내는 데 실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뮤지컬 <닥터지바고>를 보기 위해 샤롯데씨어터를 두 번이나 찾은 이유는, 단연 작곡 때문이다. 그 어떤 곡도 홀로 튀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넘버들의 연결이 좋고, 주인공이 시인인 것을 대변이라도 하듯, 아름다운 가사말은 속이 빈 채 마냥 화려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인물들의 감정을 잘 담아낸다. 각 인물들의 솔로 넘버들과 유리와 라라의 숭고한 사랑을 노래하는 듀엣 넘버들, 다섯 명의 비극적 관계를 담아낸 5중창 넘버와 앙상블들과 함께 한 넘버들까지, 무엇하나 버릴 곡이 없었다. 넘버들에 대한 애정은 시나리오가 지니는 결함에 대한 아쉬움을 키울 뿐이었다.
혁명은 늘 사람의 마음을 뜨겁게 만든다. 누군가는 진부한 소재라고 할지 모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혁명 속 사랑 이야기에 동요되고 가슴 아파한다. 혁명 속 사랑이 돋보인 대표적인 뮤지컬이라 하면 다수가 <레미제라블>을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빅토르 위고의 원작은 물론 영화와 뮤지컬까지 성공을 거둔 <레미제라블>은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장발장, 판틴, 자베르 등의 캐릭터에 당시 프랑스 시민들의 군상들을 녹여냈다. 보는 내내 심장이 뜨거워지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던 <레미제라블>과 달리 왜 <닥터지바고>는 관객들의 냉혹한 감상을 피해갈 수 없었는가. 노벨상을 거머쥔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원작이 무색 해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