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의 여유와 향락
<2017-06-11>
좋은 기후에 산다는 것은 축복인 듯하다.
개인별로 추운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더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후자이다.
어느 정도냐 하면, 아직도 내 자취방에서 겨울용 이불을 덮고 있는 정도.
기본적으로 보온을 잘 해줘야 하는 몸뚱이를 가지고 있다.
지금보다 더 더워지면 에어컨도 틀겠지만,
되도록이면 창문을 열고 자연풍 그대로를 맞는 게 좋다.
물론 바람보다 모기에 더 노출되기 쉽지만.
고민이라는 것이 고민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뭔가 나이를 먹어갈수록 더 고착화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해결이 안 되는 부분들에 대해서 순응하고 포기할 것은 포기하는 것
그것이 나이 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한다.
한편으로는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있기에
무기력하고 순응하는 역할을 맡아 살아가는 내가 바보 같다.
얼마나 꿈을 잃었고 얼마나 친구들을 잃었는지...
가족과 친구 누구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한지는 오래되었다.
술을 마시거나 밥을 먹으면 가끔씩 수다스러워질 때가 있다.
그 외의 순간에는 말을 거의 안 하기 때문일까.
해야 하는 말의 총량이 있고 몰아서 하기도 하고... 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입대한 빈지노가 내놓고 간 재지팩트 2집에서
타이틀곡으로 '하루 종일'이라는 곡이 있는데,
비디오도 그렇고 누워서 퍼질러 있을 때 듣고 싶은 곡이다.
평일 아침에 출근하기 싫을 때 그 곡을 한두 번 더 돌리면서 게으름을 피고 싶은데,
그렇다간 지각을 할 테니 그럴 수가 없다.
문제는, 그렇게 나름대로 서둘러도 회사에 가면 나보다 빨리 온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한국이란 사회는 어찌나 이렇게 부지런하게 돌아가는지...
괴리감에 빠져 괜시리 혼자 유리되고 도태되는 기분이다.
출근은 두렵다. 남들도 그렇겠지만, 언제부턴가 심해진듯하다.
아무튼 오늘은 일요일이어서 늦게 눈을 뜨고도 (아침 10시쯤)
더 자면서 이 '하루 종일'이라는 곡을 틀어놓고 게으름을 필 수 있었다.
너무 크지 않은 볼륨으로 귀를 과도하게 자극하지 않으면서
기분 좋을 정도로만 1곡을 반복하고 누워 있었다.
중간에 잠들었다 깼다를 반복하며 자연스럽게 몸이 깰 때까지 있었는데
그래도 12시를 조금 넘었다. 나름 선방했다는 기분
어떤 휴일에는 최대한 구질구질하게 지내고 싶어 지는데 오늘이 그랬다.
머리를 감을까 말까도 엄청 고민하다가 일단 거리로 나섰다.
나오자마자 눈이 부셔서 방안의 세계와 다른 세계로 진입하는 기분이 들었다.
뭐라도 해야 할 거 같은 기분이 들어서 집 앞 정거장에서 그냥 아무 버스나 잡아 탔는데,
그냥 익숙하게 종로 근처에서 내리게 되더라.
청계천에 가보니 사람들이 역시나 많았고...
더운 날씨치고는 커피가게의 줄이 길지 않아서 아메리카노를 하나 샀다.
일하지 않는 주말에도 커피를 찾게 되는 것을 보면 내가 커피를 좋아하긴 하나보다.
약간 녹차나 둥굴레차 마시듯이 마신다. 체내 수분의 몇퍼정도를 커피로 마실까 궁금하다
정처 없이 온 청계천이었지만 마음이 따뜻해졌다
멍하니 서있으면 몸도 살짝 데워지는 것이
근심 걱정이 조금은 햇빛에 살균되는 기분
1년 내내 봄과 여름이 반복되는 왕국이란 어떨까
캘리포니아가 약간 비슷한 느낌일 것 같기도 하다.
암튼 그렇게 설렁설렁 걸어 다니며 맥 드마르코 one another 들으면서
광화문까지 갔다.
광화문 광장에는 잔디가 깔려있어서
작년 니스에 여행 갔을 때가 생각났다.
메세나 광장과 광화문광장 둘 다 왠지 주는 느낌이 비슷해지는 것을 보니
정말 여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를 다 마실 때쯤에 그래도 오늘 같은 날 정도면
행복한 거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