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ORST Jun 22. 2017

기계처럼 살고 싶다

인간성을 잃어가는 사무직 직장인의 삶

<2017-06-22>


나는 회사원이다. 직무로 말할 것 같으면 넓게 말해 기획/총무/법무적인 일을 아울러(?)하고 있다.

수많은 대한민국의 직장인들이 끙끙 앓는 소리를 한다.

아마도 나는 그중 상위 10%에 들어가는 징징러일것이라고 생각된다.


회사가 고통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끔 보면 투덜투덜 대는 것 같지만 결국 일, 혹은 결과에서 도출되는 성취감을

사랑하는 타입들이 있다.

연인의 100%, 모든 면이 만족스러울 수는 없다 하더라도,

단점을 커버할 만한 좋은 점이 있다면 제법 괜찮게 지낼 수 있듯이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문화나 업무 스타일이 자신이 중요시 여기는 핵심가치와 어긋나서는 안될 것이다.


너무 이야기가 넓어지니 내 이야기로 국한시켜보면,

나는 일단 딱딱하고 권위적인 분위기에 거부감을 느끼고,

내가 의미 없다고 느껴지는 일을 성실히 하는 것이 어렵다.

만약 그런 일을 해야 한다면, 아예 굉장히 반복적이었으면 좋겠다.

회사는 겉만 번지르르한 일을 위해서 내 소중한 정신력 소모를 강요한다.

사실 낮시간을 회사에 묶여있는 것은 어쩌면 납득이 된다.

시간과 돈을 맞바꾼다는 점에서는 그렇다.

그러나 내가 하는 일들... 기안지를 만들고 하는 전형적인 회사원의 paper work들은

창의적이지도 않고, 의욕적으로 해볼 이유도 없으나, 한편으로 회사는 뭔가 예전과 다를 것을 요구한다.

의욕 제로인 상태에서 꾸역꾸역 무언가를 해내지만...

인생이든 일이든 의미부여가 전부인 나에게는 버티기 힘들게 느껴진다.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없다면, 최대한 기계적인 일을 하고 싶다.

그 일이 숙달되면 별다른 생각도 정신력의 소모도 필요 없는 그런 일을 하고,

돌아와 뿌듯한 성취감과 휴식을 취한 두뇌로 뭔가 나만의 가치를 창출하고 싶다.

그러나 현재와 같이 하나하나의 산별적인 업무들이 나를 압박하고

집에 돌아오면 쉬기 바쁜 유리멘탈로는 아무것도 할 수없다.

어느 순간부터 인생의 결정권을 내려놓은 느낌으로 흘러갈 뿐이다.

누군가 선고해주기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모습...

사슬에 묶인 코끼리의 비유가 떠오른다.


최근 농담처럼 이야기하곤 했는데, 

찰리 채플린의 모던타임즈에 나오는 장면처럼

그냥 완벽하게 단순한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현재의 사무직들이 더 그들의 정신노동에서 가치를 못 찾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

노동의 가치... 사람들이 행복하게 일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기술의 발전으로 과거 여러 명이 하던 일을 한 명이 하고,

더 빨리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일하는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고 생산성을 강요당할 뿐이 아닐까


포기하고 싶지만 돈 때문에 혹은 다른 이유 때문에 지금의 직업을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돈 버는 것도 고마운 줄 알라'라고 일갈하는 타입의 사람들

타이트한 직장에서도 적응하고 결국 승리하는 강인한 사람들

그 중간에 어중띠게 있는 나를 본다.


나의 존재를 세상에 각인시킬 수 없다면

반대로 조용히 사라지는 것도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이전글 이화동  기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