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캠프의 인솔교사 자원봉사 중 만난 민주주의’의 첫 번째 이야기
여기는 독일이다. 도로에 깔린 자동차는 죄다 입이 떡 벌어지게 비싼 포르셰, 아우디, BMW 등의 외제차다. 얼굴색이 하얗고 머리가 노란 사람, 얼굴이 까맣고 머리카락이 꼬불꼬불 한 사람, 나이가 아주 많아 보이는 노랗고 빨간 머리카락의 단체 관광객들이 무리 지어 다닌다. 안내 표지판, 도로 표지판, 상가 간판들이 알아볼 수 없는 글자로 써진 채 걸려 있다.
2022년 7월 26일 아침 베를린 동쪽 외곽의 한적한 호텔에서 한국과 유럽 청소년(한국 교민 2세 혹은 3세) 44명과 어른 참가자이면서 인솔 자원봉사자와 한인 유럽연합회 소속 관계자 20여 명이 버스에 올랐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소년에게 독일 통일의 역사적 현장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려, 한인 유럽연합회와 사단법인 이어짐, 통일부가 함께 준비한 독일 통일 캠프다.
나는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자꾸 카메라에 담았다. 한참을 찍다, 그게 뭐라고.. 하는 생각에 슬며시 그만두었다가 끝없이 평야가 펼쳐지는 순간 다시 셔터를 눌렀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만 하면 모두 예술작품이다. 왜 이리 멋져 보일까? 우리나라와 다른 풍경이라서? 현대를 사는 내가 중세 시대 한복판을 걷는 듯한 착각이 들어서? 오래된 건물을 유지 보수하는 이들의 노력에 대한 감탄 때문에? 아니면, 선진국이라는 동경의 대상을 만난 것이 기뻐서? 마음을 한참 들여다본다.
독일은 대한민국 면적의 약 1.5배, 인구수도 비슷하다. 독일도 분단의 경험이 있으며 우리는 분단국가이다. 우리나라는 산지가 70%인 반면 독일은 평지가 70%이다. 독일은 사용 가능한 대지가 많으니, 건물과 도로 사이사이 공간이 꽤 넓었다. 서울에는 1000만 명이 살지만, 베를린에는 30만 명 정도 산다.
탁 트인 시야를 통해 하늘과 구름, 건물이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마음까지 시원하게 해 주었다. 맑은 날씨가 20도 안팎으로 건조하여(사진 속에는 조금 흐려 보이지만, 육안으로는 훨씬 화사한 날씨였다.) 하루 종일 걸어도 지치지 않았다.
도시의 여유로움, 넓은 공간, 날씨 등만 봐도 베를린은 여행하기 꽤 괜찮은 도시였다. 그러나, 사진만 찍으면 멋있다고 느끼는 부분은 이게 전부는 아니었다.
독일은 건물 지을 때 지켜야 하는 것이 있다. 지붕의 색깔과 높이이다. 지붕 색깔은 붉은색이다. 만약 다른 색깔로 하고 싶다면 따로 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 대부분 붉은 지붕을 얹는다. 지붕의 높이는 앞 건물보다 높으면 안 된다. 기존에 있던 사람들의 조망권 보호를 위한 정책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건물의 높이가 일정하고 색깔도 통일된다. 하나 더 중요한 것은 디자인 승인이다. 건축 허가를 받기 전, 새로 짓는 건물이 주변 건물과 조화를 이루는지에 관한 디자인 승인을 반드시 받아야 건물을 올릴 수 있다.
건물들이 자신의 힘을 과시하지 않고 주변과 어우러져 존재한다. 홀로 있어도 아름답지만 함께 있을 때 더욱 아름답다.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각자의 개성을 충분히 살린 도시를 바라보고 있자면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이 그려진다.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약자와 공감하고 연대하는’ 그런 사람.
타인의 눈에 띄기 위해 남보다 더 밝고 더 커다란 간판을 걸어 놓지 않은 도시는 평온하고 감동적이다. 내가 카메라에 담은 것은 그냥 건물이 아니라, 서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숨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