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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재댁 Aug 27. 2022

강자에서 약자로 흐르는 에너지를 멈추는 방법.

‘독일 통일캠프의 인솔교사 자원봉사 중 만난 민주주의’의 세 번째 이야기

민주주의는 단지 정치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태도의 문제이다.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며, 약자와 공감하고 연대하며, 불의에 분노하고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태도 - 이러한 심성을 내면화한 민주주의자를 길러내지 못하는 한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언제라도 독재의 야만으로 추락할 수 있다. 이것이 광장의 촛불이 내 마음속에서, 우리의 삶 속에서 다시 타올라야 하는 이유이다.”(김누리 교수의 ‘우리들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중에서)


이 문구를 잘게 쪼개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내 삶 속에서 촛불이 타오르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올드 박물관 앞 동상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기


독일 여름은 우리와 참 달랐다. 이글이글하는 태양볕에 얼굴이 화끈했지만 그늘로 들어서는 순간 차가운 냉수 한 사발 들이켠 것처럼 시원했다. 캠프팀은 마틴 루터가 가톨릭 교회의 탄압을 피해 활동했던 바르트부르크 Warburg성을 시작으로 베를리너 돔, 루스트 정원, 베를린 장벽 등등 독일과 통일에 관련된 베를린의 구석구석을 방문했다. 우리는 야외 활동에서도 대부분 마스크를 착용했다. 여름 볕에 아이들은 이마와 눈 주변은 까맣게 타고 마스크 안쪽에 있던 입과 턱 주변은 하얗게 남았다. 특히, 한 남학생(가명 : 진우)은 유난히 그 자국이 진했다. 마스크를 벗는 때면 어김없이 진우의 얼굴이 눈에 띄었다. 선명하게 남은 마스크 자국을 보며 사람들은 진우를 “마스크 맨~” “다람쥐~”라 불렀다.


아이들을 챙기다 보면 종종 진우가 눈에 들어왔다. 걸걸한 목소리에 키가 큰 사춘기 소년 진우지만 턱과 입 주변이 유난히 하얘서 나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뜻밖이었다. 진우는 마스크 자국이 싫었단다. 친구들이 그처럼 부르는 건 더 싫었단다. 눈웃음이 예쁜 진우의 하얀 턱이 사랑스럽다는 생각만 했다.  ‘별명이 싫지는 않을까?’ 한 번쯤 고려해 볼 법도 한데, 난 진우가 싫어할 거라 상상도 못 했다는 것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나는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했는가?’


불의에 분노하고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기


나는 부라덴브르크 광장 통일 행진 중 아이들이 이탈하지 않도록 앞에서 뒤로 연신 이동하며 돌아다녔다. “돌대가리냐? 수학 성적이 25점이야? 다리는 짧아가지고!”  진우가 희정이에게 인격모독 수준의 발언을 서슴없이 쏟아내고 있었다. 말이 심하다 싶었는데 희정이는 진우의 등짝을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그 순간 진우의 주먹이 희정이의 가슴에 꽂혔다. ‘퍽!’ 소리에 주변엔 갑자기 정적이 흘렀다. 나는 얼른 진우 팔을 잡고 대열 가장자리로 이동했다. “너 지금 뭐한 거야?” “희정이가 저를 놀렸단 말이에요.” “야! 내가 봤거든! 네가 희정이한테 말하는 거.” “ 그전에 희정이가 마스크맨이라 놀렸어요!!” “…”


네가 그 말이 싫었구나. 네가 싫어할 거라 생각 못했어. 미안해. 앞으로는 조심할게. 음.. 그렇지만 폭력은 안돼, 그러면 네가 다쳐.” 내가 진우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여기까지였다.


자신이 겪는 불편함을 상대에게 표현해 본 경험이 적은 아이들. 어쩌면 자신의 불쾌한 감정을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혹은, 땡볕 행진에 지쳐 피곤하고 짜증스럽던 차에 때마침 꼬투리를 잡았을 지도…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란 속담이 떠오르는 건 나만의 느낌일까? 강자에서 약자로 쏟아지는 분노의 에너지 흐름 앞에서 나는 희정이의 놀란 마음을 달래주는 것 외에 무엇을 해야 할지 방향을 잡을 수 없었다. 나는 어떤 어른으로 서 있어야 하는가?


약자와 공감하고 연대하기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가? 명확지 않게 얽혀 있는 실타래를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진우는 자신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단 한 명의 어른이 필요했을까? 여행 도중 경험하는 당황스러운 일을 편안하게 나눌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이 문제를 다루었다면 어땠을까?


누군가는 ‘오지랖’이다!라고 얘길 할지 모른다. ‘오지랖 떤다.’는 다소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경향이 있지만, 우리에겐 이런 ‘연대의 오지랖’이 필요하다. 연대의 오지랖으로 ‘안전한 공동체’를 구축할 수 있다면?  뿌옇고 희미한 감정을 명료하게 인지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공동체, 솔직한 감정을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의 공동체. 사람들이 서로를 기다려주고 이해할 수 있는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지는 공동체. 공감, 이해, 따뜻함, 배려, 공동체 의식, 상호성, 신뢰, 믿음, 재미, 즐거움, 행복… 많은 아름다운 것들이 가득한 연대의 공동체를 꿈꾼다.

작센 하우스 강제 수용소 입구


삶의 태도


캠프 활동 속에서, 나는 순간순간 ‘멈칫’했다. 더 많은 순간에 누군가의 아픔과 불편함을 놓쳤다. 아쉽지만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처럼 부족하고 못난 내 모습을 돌아보는 것이다. 다음에 만나는 비슷한 상황에서는 ‘마음’에서 끝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행동’으로 폭력의 에너지를 멈출 수 있는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기를 오늘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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