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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재댁 Oct 08. 2022

대한민국의 주부들이여, 프라이팬을 던져라.

화가 풀리면 인생이 풀린다는데, 내 꼬인 인생은 언제 풀리려나…

“외출을 하려면 설거지 정도는 해놔야 하는 거 아니냐?” “어? 설거지하고 나갔는데…” “프라이팬이 그냥 있더구먼!” “…” “이럴 거면 생활비를 깎을까? 기본은 하고 살자. 너 가정주부잖아.”


생활비를 깎아?’ 순간 현기증이 일었다. 거실에는 아들이 만화책을 읽는다. “내가 당신 월급 어쩌고 저쩌고   없잖아.”  다문 이빨 사이로 말이 뭉그러지며 새어 나왔다.  이상의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한  적당히 둘러댔다. “내가   할게.”


당신이 지금까지 한 게 뭐 있냐! 네가 남편이냐? 사람이긴 하냐? 등의 비난 섞인 말을 쏟아낼까 봐 입을 닫았다. 아~ 화를 냈어야 했는데, 화를 ‘잘’ 냈어야 했는데… “맘에 안 들면 네가 해! 어떻게 내가 하는 집안일을 당신 기준으로 평가해서 생활비를 깎네 마네 하냐? 정말 서운하다.” 라 내 마음을 표현했다면 남편이 나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틱낫한 스님은 ‘화가 풀리면 인생이 풀린다’에서 ‘화가 나면 3초만 참았다가 24시간 이내 풀어라. 화를 다스릴 때마다 삶이 조금씩 즐거워진다. 화가 풀릴 때마다 우린 더 행복해진다.’ 라 말한다. 스님도 화를 풀으라 하지 참으라 하지 않는다. 한국 비폭력대화(NVC) 센터는 ‘화’를 소주제로 다룰 뿐 아니라 화를 ‘잘’ 낼 수 있도록 돕는 특별 워크숍을 비정기적으로 마련하고 있다. 서점을 둘러보면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화에 대하여,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등의 ‘화’를 다룬 책이 가득하다. 오랫동안 NVC 연습 모임에서 ‘분노’를 다뤄왔지만, 실전은 연습과 다르게 매번 어렵다.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프라이팬 설거지 안 한 걸로 생활비를 깎는다고? 내가 일하는 아줌마야? 아니, 그도 아닌 식모였구나. 미쳤지! 내가 왜 사나…’ 한참을 뒤척이다 돌아누운 남편의 등짝도 보기 싫어 건넌방으로 넘어가 자리를 폈다.


생각은 끝없이 이어졌다. 나는 가족의 일원이 아니다. 그냥 가정주부다. 아니, 식모다. 밥만 축내는 쓸모없는 인간. 내가 앞으로 뭘 하겠나. 머리끝에서 발 끝까지 기운이 쫙 빠져나가 흐물흐물하다. 손가락 까딱 할 힘도 없지만, 아들 밥은 챙기겠다는 정신력으로 하루 두 번은 일어난다. 남은 스물두 시간은 죽은 듯 누워 있다.


깨면 울고 지쳐 잠들기를 반복한 지 5일째 되던 날, 이렇게 밥 안 먹고 누워있어 봐야 ‘원인불명 고독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겠구나… 싶어 마지막으로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당신 참 나쁘다. 내가 겨우 200짜리 아줌마였어? 300 올려주니 아까워? 근데 알고 보니 난 그 아줌마도 아니더라. 그냥 받은 돈 다 쓰고 그냥 얹혀사는 식모더라. 내 주머니엔 아무것도 없이.. 이제 그 식모는 안 할 거야.” 보내자마자 띠리링~ “저녁에 얘기 좀 해.” 답 메시지가 온다. 그는 퇴근 후 방문을 열지만 난 기운이 없다. “내일”이라 짧게 답한다. 조금 뒤, 남편은 싱크대에 있는 그릇과 수저의 개수를 확인했는지 다시 방문을 연다. “죽 끓여 줄까? 아무것도 안 먹은 거 같은데…” “아니 “.


새벽 4. 눈이 떠졌다. 따뜻한 밥물이 아른 했다. 냄비에  가득   숟갈 넣고 끓여 후후 불어 마셨다. 속이 뜨뜻해지며 마음도 한결 누그러졌다. 다시 한숨 자고 일어났다. 이번엔 냄비에   술을 넣었다. 보글보글 끊여  비운  다시 누웠다. 아직 기력이 회복되지 않았지만, 식욕만큼은 살아나고 있었다. 우린 일주일 만에 얼굴을 마주했다.” 맞벌이  때도 100%, 지금도 100% 집안일은  항상 내가  일이야? 내가 당신 출장 간다고 잔소리한   번이라도 있어? 연말연시&기념일과 생일 때마다 1주일,   혹은  달씩 출장 갔을 , 내가 싫은 내색   있어? 근데,  당신은 매번 설거지, 청소, 빨래 사사건건 간섭이야!” 과거에 묵혀두었던 서운했던 일까지 모두 들춰냈다.


그는 그저 조금 더 가정에 신경 써 달라는 뜻이었단다. 자신이 조금 더 참겠단다. ‘뭘 참아? 방이 지저분한 거? 내가 식재료비 60 쓰는 거?’ 그의 말에 다시 한번 속이 뒤집혔다. ‘도대체 내가 왜 화가 났는지 전혀 이해하지를 못했잖아?!‘. 뒷목이 뻣뻣해지며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 순간 ‘이쯤 하면 됐어. 내가 이겼어 ‘라는 말이 머릿속으로 푹 들어왔다. 어디선가 ‘푸슉~’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멍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만히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다음날 아무  없이 부스스 일어나 아침을 차렸다. 우린 조용히 밥을 먹었다. 일요일 아침 하늘이  맑았다. 나는 반짝이는 프라이팬을 서랍장에 넣고 홀로 운동화를 신고 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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