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 없는 사람_심보선 시집
그 노인과 나는 눈이 마주쳤다.
아니다. 사실 마주치지 않았다.
그 노인은 내게 하나의 이미지였다.
내가 대변할 수 없는 세계로부터 던져진 잿빛 가죽 포대였다.
그 노인이 나와 눈이 마주쳤더라면 단 1초만 마주쳤더라면 나는 이렇게 썼을 텐데.
그는 내게 말하는 듯했다.
시인이여, 노래해달라.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나의 머지않은 죽음이 아니라
누구도 모르는 나의 일생에 대해.
나의 슬픈 사랑과 아픈 좌절에 대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생존하여 바로 오늘
쪽동백나무 아래에서 당신과 우연히 눈이 마주쳤음에 대해.
나는 너무 많은 기억들을 어깨 위에 짊어지고 있는데 어찌하여 그 안에는 단 하나의 선율도 흐르지 않는가.
창가에 서 있는 시인이여,
나에 대해 노래해달라. 나의 지친 그림자가
다른 그림자들에게 없는 독특한 강점을 지녔노라고 제발 노래해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