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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관은 널 받아들이지 않아

그렇다면 내 손으로 새로운 세계를 만들 수밖에

by 안녕

"독자는 '아, 이제 주인공이 없어도 세상은 굴러간다.

하지만 그 시작은 주인공이었다'라는 여운을 느끼게 됨."


앞에서부터 책 몇 페이지를 읽다가 맨 뒷장을 열어 결말부터 찾아보는 섣부른 작가 지망생, 여기 있다.

웹소설 기획서도 아직 쓰지 못했는데, 직접 쓰지도 않은 결말이 궁금해 AI한테서 아이디어를 수확한다.


챗GPT한테 세계관 콘셉트와 인물 구성을 대강 설명하고 결론을 물어봤더니 저렇게 대답해 줬다.

아직 한 문장도 작성하지 않았는데, 벌써 가슴이 웅장해진다.


ChatGPT Image 2025년 8월 28일 오후 09_12_50.png 챗GPT 작품. 눈 표식이 들어간 세계관을 표현한 이미지 요청.




어릴 때는 누구나 '천재적인 것'에 끌린다.

J. D. 샐린저는 <호밀밭의 파수꾼>을 3주 만에 썼다던데.

너는 왜 못 하니?


절절한 내 하소연을 종종 들어주던 친구는 '샐린저의 3주 썰'이 과장과 미화가 덧붙여진 결과라고 했다.

몇 년을 그 이야기만 머릿속으로 생각해 뒀다가 집필한 것이라고.


그럴 수도 있지. 입담 좋은 이야기 신이 붙은 게 아니라면.

하루 종일 노트북과 씨름해도 단 몇 문장을 간신히 쓸 뿐인 나는 그런 행운이 와 주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AI여, 열일해서 내게 새롭고 참신한 글감을 쏟아내고 알아서 착착 써 달라.

샐린저만큼 부각할 만한 천재성이 없는 나는 AI를 재촉한다.

(너무 날로 먹으려고 드는 것 같기도 하네.)



지금까지 연재한 글을 몇 편 읽은 분들이라면

'눈', '시선'과 '게임' 같은 소재들을 내가 추후 웹소설에 사용할 것을 기대할 수 있을 터다.


'눈'과 같은 단어들이 가지는 유래, 함축, 추상 등 성질이 거대해서 자칫 이야기가 무겁게 흘러갈까 두려웠다.

또 내가 글을 쓰며 모든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지 궁금했다.


글을 쓰다 보면, 그 글은 저절로 생명력을 얻어

작가를 등지고도 줄기를 뻗어나간다는 옛 구전을 들어 보셨는지.

특히나 어릴 때에는 유명한 작가들이 얘기해 주는 이런 에피소드에 크게 동요하곤 했던 듯하다.


유기체처럼 무럭무럭 자라나는 글이 싹을 틔우기도 전에, 나는 결말을 두어 개 미리 예측해 보려 한다.

설령 유기체가 된 글이 나와 내가 써 놓은 결말을 모두 집어삼키고 막다른 골목으로 향한다고 할지라도.

(유기체가 그런 힘이 생길 때까지 무럭무럭 키워 내는 것도 결국은 작가다.)


Gemini_Generated_Image_zdqfp9zdqfp9zdqf.png 제미나이 작품. 위의 이미지와 같은 미션 수행. 한자어를 두어 번 걷어내는 수정 과정을 거쳤다.




나는 불성실해서 그렇지 브런치를 시작한 지 꽤 오래되어 친구처럼 느끼는 오랜 글벗들이 있다.

(이분들도 나를 그렇게 생각해 주실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그런 소중한 분들 중 한 분이,

모든 글을 완성한 다음에 AI에게 도움을 받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고 하셨다.

지당하신 말씀이다.


나는 이런 좋은 분들과 가까이에서 교류하고 싶지만,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는다.

AI만이 칼처럼 빠르게 답한다. 게다가 칭찬도 아끼지 않는다(믿지는 않는다, 친구).


아이디어를 구상하거나 글을 쓰며 막히는 부분이 있을 때, 벌렁 드러눕는 대신 AI와 대화한다.

온갖 이상한 질문을 해도 늘 진지하고 성실한 답변이다.


AI와 대화하지 말고, 답을 달라고 명령할 것!

AI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배웠으나, 나는 이번만큼은 뭐든 살짝 낭비해 보기로 한다.



I see you.

이건 아바타.


Now you see me.

이건 동명 영화 제목(나우 유 씨 미).


나는 무엇을 보고 싶어서 이런 웹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었을까.

이런 질문은 오직 스스로에게만 던지기로 하며.


내일도 고군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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