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싸개

여름 속으로 가을이 오고 있다.

by 방장

올해 가장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 "무슨 일 하세요?"다.


작년 카페 폐업하고 건강부터 챙겨야겠다는 생각에 필라테스 강사과정을 배우고, 올해 5월 말에 간신히 자격증을 땄다. 자격증을 땄다고 해서 모두 강사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필라테스를 가르치는 건 내게 힘든 일이다. 운동하는 자체를 좋아할 뿐 가르치고 싶은 의욕이 없다.


자격증을 따고 생존을 위해 필라테스 강사라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6월부터 의도치 않게 다른 일들로 바삐 움직이게 되었다. 엄마가 새로운 김밥집을 나의 이름으로 시작해서, 한 달 동안 인수인계하고 가게 고장 난 곳 수리하면서 하루도 안 쉬고 일을 했다. 같은 시기 시공매트하는 사촌오빠 회사에서 마케팅 일을 돕기로 했다. 일이 쏟아져 내려서 정신없는 6월, 7월이었다.


그 와중에 8월 초에 이사를 했다. 그렇게 이번 여름은 쉴 틈 없이 정신없이 흘려보냈다. 여유란 내게 찾을 수 없었던 여름이었다. 변화 속에서 늘 불편한 상황과 사람들을 마주했고, 나는 화나고 불평하기 바빴다. 그런 스스로를 받아들이기도 너무 힘들었다. 불평불만은 끝없이 나를 갉아먹었다.


감사함을 잃었다. 마음속에 불평불만으로 가득 차다 결국 딱히 이유라고 할 것 없이 눈물을 왕창 흘리는 날도 있었다. 건강하지 못한 상태에서 숙제하듯이 마케팅 일을 하다 보니, 마케팅 일도 9월까지만 하기로 했다. 문득 지난날들을 되돌아보게 되면서 스스로를 질책하는 감정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퇴사했지만, 정작 퇴사하고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답답한 마음에 운세를 찾아본다. 내 인생이 어디로 흘러갈지 알고 지금을 살아가면 더 잘할 수 있을까 싶어서... 사주에는 60대가 전성기라는데 그때까지 버텨낼 수 있을까? 싶으면서 다시 무기력으로 빠져든다. 책을 읽고 운동을 해야 한다. 하지만 내 손과 두 눈은 하염없이 쇼츠를, 영상을 멀뚱멀뚱 보고 있다.


그러다 김밥집에서 일하시는 분이 갑자기 그만둬서 8월 말부터는 김밥집에서 반타임으로 서빙일도 돕고 있다. 몸이 힘들어지다 보니, 마음이 덜 힘든 것 같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마음속에 무기력함과 답답함이 줄어들지 않는다. 재택하고 있는 나는 엄마의 눈에 놀고 있는 거로 보여서일까, 자꾸 김밥집으로 묶어두려고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힘든 일을 하고 싶지 않다. 아니다. 정말 솔직하게 말하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돈 걱정 없이 그냥 숨만 쉬고 싶다. 잠을 실컷 자고, 누워만 있고 싶고... 딱히 뭔가 할 의욕이 없다. 퇴사 후 뜨거웠던 나의 열정이 얼마나 저렴한 것인지를 실패를 겪고 깨달았다. 지금은 아무것도 쉽게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또 다른 새로운 시작하기가 두렵다. 끝을 못 보고 시작만 하는 내가 너무 싫어서. 9월을 잘 버텨내고 월말에 가족 여행 가기로 했다. 여행 다녀와서 10월은 조금 쉬어볼까 한다.


아침형 인간으로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고, 책 읽고 글 쓰고 운동하는 하루하루를 보내며 잘 쉬어보고 싶다. 건강하게 잘 쉬다 보면 마음의 여유를 찾고, 구체적으로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떠오르지 않을까?


이러한 고민을 최근 집들이 모임에 친구들에게 공유한 적 있다. 배우자와 친구들은 사람들은 그냥 일하고 그냥 살아가는 거라고. 나는 배부른 고민이라고.. 한다.


굶어 죽지 않는 한, 배부르지는 않지만 그래도 충분한 고민을 하고 싶다. 그냥 살아가는 건 내게는 너무 가혹한 일이다.


올해 여름, 많은 일들을 경험하면서 글로 잘 풀어내고 싶지만, 말싸개가 되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일단 쏟아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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