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집에서 서빙합니다.

by 방장

김밥집 서빙 알바도 15년 차다.

김밥을 기똥차게 말 수 있는 기술자다.


8월 말부터 김밥집에 한 달 동안 반타임으로 일하고 있다. 그동안 김밥집 진상 손님들을 글로 모두 써보고 싶었지만 어떻게 재밌게 쓸 수 있을까 고민에 선뜻 글을 쓰지 못했다. 지금도 그냥 생각나는 대로 쏟아낸다.


6월에 새로운 김밥집을 인수하면서, 홀에서 일하는 A양도 함께 일하게 되었다. A양은 이 김밥집에서 일한 지 8년이 된다. 40대 초반으로 젊은 나이지만 성 감수성에 대해서는 조금 무딘 것 같다(내가 지나치게 예민한 건가?).


단골 1은 세탁소 아저씨다. 매일 오전에 한번 저녁에 한 번씩 들려서 김밥 한 줄을 포장해 가는데 오전에 올 때 꼭 요구르트나 주스 사서 온다. 2명이면 2개, 3명이면 3개씩 챙겨 준다. 그리고 자기 선물은 없냐고 농담을 던진다. 단골 2는 배달 아저씨다. 매일 온다. 식사하지 않아도 놀러 온다. 포도를 사 오든, 복숭아를 사 오든 와서 자연스레 주방이 보이는 자리에 앉아서 물끄러미 일하시는 분들을 본다.

나는 이 분들의 호의가 불편하다. 말 걸까 봐 손님으로 깍듯이 모시고, 최대한 물리적 거리를 유지하려고 한다. 어느 날인가 갖고 온 음식에 독을 탈 수도 있지 않을까? 혼자 상상도 한다. 무섭다는 말을 하니까 A양이 단골 2가 하루는 A양이 퇴근하는 시간에 뒤따라와서는 갑자기 팔짱을 꼈다고 한다. 깜짝 놀란 A양, 농담인데 뭘 그렇게 놀라느냐는 단골 2. 나는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뒷목부터 싸한 기분을 느끼며 거북스럽다. 신고하고 싶다.


가끔 오는 손님 3은 사기꾼이다. 사기꾼 냄새가 난다. 엄마에게 500만 원 투자하면 다음 달에 억대로 수익내주겠다고 한다. 손님 3이 나가기 바쁘게 손님 4가 절대 믿지 말라고, 저 사람 사기꾼이라고 알려준다. 자주 오는 손님 5는 매일 저녁 취한 상태로 김밥집에 와서 라면 먹는다. 가끔 김밥을 포장도 한다. 계산할 때면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대기한다. 결제하는 내가 너무 불편해서 조금만 비켜 달라고 하면 정말 2센티 정도 비킨다. 김밥 싸는 엄마의 등을 탁탁 두드리기도 한다. 너무 거북스럽고 토하고 싶다. 손님 6은 강아지 안고 와서 김밥 두 줄 주문한다. 결제하며 무슨 김밥이 이렇게 비싸냐고, 서민 음식인데, 이래서 김밥천국이 다 망한다고... 정말 대답해주고 싶다. 편의점 가서 먹어봐라, 근처 김밥집 가서 먹지 그러냐, 가장 저렴해서 온 거 아니냐. 쌀 한 마대에 가격이 7만 원까지 인상한 건 알고 있냐? 망할 김밥 집에 와서 왜 처먹냐?... 화를 참는다. 그냥 웃는다.


그리고 반면, 매일 오셔서 조용히 드시고 가시는 손님들도 많다. 새삼 그분들께 감사한다. 단골들은 주방이 안 바쁠 때 엄마가 서비스를 챙겨준다. 그럼 잘 먹었다고 주방까지 와서 인사하고 가시는 분도 있다. 이 분들은 결제할 때 검지와 중지로 카드를 주지 않는다.


기본 존중을 바라는 나는 장사하면 안 된다. 이런 태도로 장사하는 거 아니라고 엄마에게 매일 잔소리 듣는다. 기본 존중을 바라는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기본 존중을 하고 있을까? 가끔 반성도 한다.


김밥집에서 인생을 배운다.

20대 김밥집에서 김밥을 싸면서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이 나는 김밥 재료 중 어떤 사람일까? 였다.

단무지 같은 사람? 확실한 존재, 하지만 호불호가 갈린다.

계란? 햄? 가끔 빼달라는 사람이 있다.

당근과 같은 야채? 건강하지만 맛이 없다.

아니다. 나는 짭조름하고 고소한 밥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김밥집에 와서 밥 빼달라는 사람은 없었으니.

그렇게 밥처럼 살다가 내가 너무 밥 맛있었다.

그래서 단무지 같은 사람이 되려고 했다.

그렇게 20대를 살다가 문득,

나는 밥도, 단무지도, 계란도, 햄도, 야채도 아니고 모든 재료가 골고루 있는 김밥이라고 깨달은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내가 김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안에 김이 있는지, 밥이 있는지, 단무지가 있는지? 뭐가 있는지 나도 모르겠다.

내 안에 뭐가 있는지 찾아갈 방법도 사실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하나씩 하나씩 찾을 수 있겠지, 김밥이 아닌 정식(김밥 + 쫄면 + 돈가스) 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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