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의 삶을 고민하기로 했다

30대 중반의 은퇴

by 방장

뭐든 해낼 것 같은 자신감과 영웅주의를 안고 좋은 직장을 당차게 사직했다.

카페를 창업하고 폐업하면서 "실패"를 처음 맛보았다.


자라오면서 뭐든 평균은 해냈고 원하는 대로 대학, 대학원과 직장생활을 해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뭐라도 될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했다.

처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창업과 폐업을 경험했다.

스스로가 한없이 작아지는데 그건 여행과 독서로도 해소가 되지 않는 무기력이었다.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현실과 이상 속에서 발버둥 쳤다.

내가 생각해 온 것들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며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산산이 부서졌다.


폐업 후 1년 동안 쉬는 스스로를 견디지 못해

필라테스 자격증을 땄지만 자격증을 손에 넣자마자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기분이다.

이번에는 정면돌파해야 하는구나 본능적으로 느꼈다.

마음에 여유가 없으니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들로부터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운세를 미친 듯이 찾아보다가 답답해 미칠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살아감에 대한 무가치함을 느낀다.

이런 내가 우울증에라도 걸린 게 아닐까 싶다.


마지막 기댈 것이라고는 여행뿐이었다.

여행하면 이런 답답한 마음으로부터는 잠깐 도망칠 수 있지 않을까? 했다.

여행하고 돌아와서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그게 해결책이 될 거라는 기대는 없지만, 그래도 희망을 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불쾌한 여행이었기에, 내가 살고 있는 무료하고 실패했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았다.

나의 실패에 대해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뭐든 도전하는 불도저 같은 성격을 갖고 있는데

한 번의 실패로 인해 도전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물론 지금도 새롭게 시작하는 것에는 엄두가 나지 않지만 무기력으로부터는 조금 벗어났다.


여행하면서 법륜스님의 말씀을 만났다.

자학을 멈추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충분한 해결책이었다.

집에서 쉴수록 더 일찍 일어나고 바람직한 일상을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피곤하면 자고, 일어나고 싶으면 일어나고,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고

내가 한 행동에 내가 책임질 수 있으면 되고 내가 내 인생을 책임지면 될 것인데 말이다.

나는 늦잠 자는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실패한 사람인데 더 실패한 인생을 살고 있구나 하고.


여행 다녀와서 마음먹고 무료한 일상을 사는 중이다.

심심해볼까 한다.

심심하다 보면 내가 어떻게 살지에 대한 생각이 정리되지 않을까 싶어서.


일을 하고 싶지 않다.

하고 싶은 활동 모두 돈이 되지 않는다.

이걸 받아들이고 나니까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내가 하고 싶은 활동으로 수익을 내려니까 마음이 더 힘들었던 것이다.

기한을 두고 굶어 죽지 않는 선에서 무료하게 한동안 지내볼까 한다.

새삼 생활비 벌어오는 배우자가 있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지인이 해준말이 자꾸 생각이 난다.

우리는 지금 타인보다 일찍 은퇴를 준비하는 중이라고.

대부분의 직장인들의 고민이 은퇴 후 어떻게 살 것인가?라고.

이 말을 곱씹으면서 나는 무기력으로부터 벗어나고 생각하는 힘이 비로소 생긴다.


지금 당장 실패가 아닌

나는 아주 일찍 은퇴 후의 삶을 고민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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