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퐝메리 Mar 07. 2021

이유 없는 고통을 견디는 법, 뮤지컬 <몬테크리스토>




몬테크리스토를 몇 년 만에 다시 봤다. 옥주현 때문이다. 스스로를 연뮤덕이라고까지 지칭하기에는 겸연쩍지만, 옥주현이 나오는 뮤지컬은 부러 챙겨보는 편이다. 앞자리를 기분 좋게 겟하고. 코로나 때문에 세 번 정도 취소 크리를 겪은 후.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만났다.


아아. 봤노라, 좋았노라, 감동했노라.



역사는 승리자의 것


몬테크리스토는 소름 돋는 뮤지컬 넘버가 몇 곡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넘버 중에 하나는 빌런 셋이 부르는 <역사는 승리자의 것> 이다. 주인공 단테스를 지하감옥에 쳐넣고 '어쩔 수 없는 희생이다' 어차피 저렇게 해도 '우린 역사에서 승리자로 인정받을 것' 이라고 도원결의(?) 하는 내용인데 지극히 현실적인 가사와 땅굴 파듯 들어가는 중저음이 너무 매력적이다.






너희에게 선사하는 지옥


1부 마지막에 나오는 <너희에게 선사하는 지옥>은 몬테크리스토에서 가장 유명한 곡이다. 마치 <지킬 앤 하이드>의 지금이순간에 버금가는 명성이라고나 할까. 처음 봤을 때는 류정한 배우였고 이번에는 신성록 배우의 목소리로 들었다. (나는 역시 류정한 쪽이 더 좋았다) 이 노래는 정말 카타르시스가 엄청 난데, 직장상사한테 깨지고 스트레스 만빵인날 노래방에서 부르면 정말 심판자가 된 양 자신의 전지전능함을 느낄 수 있다.




하루하루 죽어가


이 노래는 이번에 관람하면서 새롭게 꽂힌 곡이다. 어두운 지하감옥에서 죄수들이 '하루 가고 한주 가고 한 달 흘러 일 년 지나 해가 뜨고 밤이 오고 또 하루 지나고' 하는데 그 현실적인 좌절감에 소름이 쫙 돋았다. 단테스가 땅굴 파는 모습을 중간중간 보여주는 연출도 너무 좋았고. 몬테크리스토는 뮤지컬 넘버가 대체로 좋은 편인데 단테스의 솔로와 아상블의 화음이 어우러지는 곡이라 '아 맞아 이게 뮤지컬이지' 싶었다.





세월이 흘러


<몬테크리스토>는 여배우가 돋보이는 뮤지컬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타이틀롤부터가 몬테크리스토고, 메르세데스는 단테스를 잃고 슬퍼하는 수동적인 역할에 불과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지만 옥주현 배우가 부르는 <세월이 흘러>는 정말이지 '아 저 배우 너무 대단하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듣는 넘버였다. 메르세데스가 너무 불쌍하다. 그리고 어쩔 수없이 명곡은 비극에서 탄생한다.


뮤지컬은 웬만해선 3열 이내로 앞자리를 선호하는 편인데 이런 감정을 실은 노래를 들을 때 배우의 표정을 보면 감동이 배가되어 그렇다. 그렁그렁한 눈동자, 애절한 미간주름등을 지켜보노라면 말 그대로 극 중으로 완전히 빨려 들어가는듯한 느낌이 든다. 그 수간 메르세데스는 무대 위의 배우가 아니다. 이미 나는 메르세데스의 인생 안에 들어와 있다.



이유 없는 고통을 견디는 법


이번에 <몬테크리스토>를 보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저런 식의 끔찍한 고통. 이유 없이 찾아오는 인생의 고통의 시간들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작품 속 단테스는 스승을 만나 복수를 고대하며 그 시간을 견딘다. 하지만 일반인의 삶은 대부분 복수할 대상도 없이 어느 순간 불현듯 벌어져버린다. 누구의 탓도 아닌 고통 속에서 우리는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몬테크리스토보다 메르세데스의 인생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복수를 위해 시간을 보낸 단테스와는 달리, 메르세데스는 덩그러니 고통 속에서 세월을 버틴다. 그러니까 그런 거다. 어쩔 수 없다. 만고불변의 법칙. 시간이 곧 약인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함성을 지를 수 없어서 아쉬웠다. 박수만 쳤지만 나는 몇 번이고 속으로 옥주현 배우를 향해 함성을 질렀다. 당신은 너무... 너무... 너무해요... 하 비루한 제 사랑을 받아주세요, 언니.


같이 본 친구와 폭풍 칭찬을 하며 극장을 나왔다. 그리고 그날부터 계속 <몬테크리스토>의 넘버를 찾아들으며 망령이 되어 현실을 서성이고 있다. 뮤지컬이 너무 좋다. 옥주현 배우가 너무 좋다. 사랑하고 찬탄하는 무언가를 마음에 품고 '이걸 보기 위해 내가 살아왔었나보다' 하고 감탄하는 삶. 나는 그래서 예술이 현실을 버티는 힘이 되어준다고 믿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운명과 인연에 대한 마음의 빚, <동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