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퐝메리 Jul 12. 2020

도전했거나, 도전하는 이들을 위한 찬가 <야구소녀>




야구소녀를 보고 나의 20대를 떠올렸다. 주인공 수인(이주영 배우)은 야구를 한다. 프로구단에 지명됐으면 계속 야구를 할 수 있을테지만, 그녀는 그렇지 못했고 이제 곧 졸업을 앞두고 있다. 넉넉지 않은 집안형편과 졸업 후 취직이라는 보통의 진로. 그러나 수인이 하고싶은 것은 취업이 아니라 계속 야구를 하는 것이다.






내가 잘하는지 못하는지도 모르잖아, 잘하는거면 어떡해


방송국 pd가 되고싶었던적이 있었다. 20대의 치기로 tv를 보면서 늘 그런생각을 했다. '저것밖에 못 만드나? 내가 만드면 더 잘만들수 있을텐데' 그렇지만 pd라는 것은 바늘구멍의 낙타 통과하기였다. 포기를 하고 취업을 할 것인가, 아님 계속 공부를 하며 기회를 노릴 것인가. 언론고시의 높은 벽. 현실을 깨닫고나서도 쉽게 포기가 되지 않았다. 훌륭한 pd가 될 수도 있는데 여기서 포기하는건 아닐까? 그럼 나중에 억울하잖아. 나도 그랬었다. 그래서 영화 속 엄마가 야구를 포기하라고 종용하는 장면에서 눈물이 났다. 수인의 그 한마디가 너무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포기하라고? 만약에... 내가 잘하는 거면 어떡해'



장점을 봐야해, 단점이 아니라


단점을 극복하는데만 골몰했던 20대 였다. sky학벌이 중요한거 같아서 편입시험도 보고, 영어성적을 더 높이는게 좋겠지 싶어서 토익도 거의 만점에 가깝게 받았다. 하지만 그런것들이 나를 뛰어나게 만들어주는것이 아니었다. 영화 속에서 투수로서 속도와 힘을 극복하기 위해 수인은 손에 피가나도록 공을 던진다. 그런 수인을 보고 코치가 던지는 조언은 의미심장하다. '장점을 봐야해, 단점이 아니라' 


왜 좀 더 빨리 그 사실을 알지 못했을까. 20대를 지나오고 나서 나도 알았다. 무언가를 보완해서 남들과 같아지려는 노력은 쓸데없구나. 그 시간에 나의 장점을 극대화했으면 이렇게 힘들게 돌아오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성공한 여성의 이야기가 아닌, 없던 길을 개척한 여성의 이야기


영화는 전형적인 스포츠영화의 성공방식을 탈피하려고 애쓴다. 수인은 천재가 아니었고, 지독한 훈련끝에 빛나는 1군의 자리에 오르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수인을 보고 꿈을 꾸고, 가지 않은 길에 발자국을 낸다.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어쩔 수 없이 '처음' 이 되어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들인지. 


그렇지만 수인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엄마(염혜란 배우)를 상대적으로 납작하게, 너무나 평면적으로 그렸다는 아쉬움은 지울수가 없다. 가난한 사람을, 못배운 여성을 너무나 도구적으로 그렸다. 무능한 아빠는 수인을 응원하는 든든한 조력자가 되지만, 삶의 모든 무게를 감당하는 엄마는 수인을 계속 핍박하는 악인이 된다. 그러나 염혜란 배우가 맡은 엄마역할이야말로 우리 삶에 더 가까운 여성이며 극중에서나마 그런 대접을 받을 이유가 없는 인물이다.






영화를 보고와서 지인들과 각자의 20대를 이야기했다. 지금 20대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이부터, 이미 그 시기를 지나온 사람까지. 우리 모두는 누구나 한번쯤 그랬다. <야구소녀>의 수인같은 고민을 하고, 수인처럼 도전을 하고. '내가 잘하는지는 잘 모르겠어, 그런데 이게 하고싶어. 모든 사람들은 하지 말라고 하지, 그런데 난 이게 하고싶어. 잘 될지 안될지는 모르겠어, 그런데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


수인을 보며 나의 20대가 떠올라 가슴아팠지만, 그래도 수인에게 공감할 수 있는 20대의 기억이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나도 그랬는데. 나도 저렇게 힘들었는데.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나의 머리가 아닌 삶으로서 가능한 게 아닐까. 마운드에 올라선 수인의 모습이 마음에 남는다. 도전해본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수인의 모습에서 자신을 들여다 볼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