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쟝센 단편영화제 '비정성시' 섹션을 관람하고
미쟝센단편영화제에 다녀왔다
미쟝센은 사실 처음이다. 영화제를 자주 가기는 했지만 서울에서 하는 영화제는 어쩐지 가고싶지 않았다. 영화제는 부산이나 전주지. 서울이라니... 그렇지만 시국이 시국이라 웬만한 영화제가 다 온라인으로 대체되고 있는가운데, 미쟝센은 일부 극장 상영을 한다기에 마음이 동했다.
제목이 김현주가 뭐냐 김현주가
마스크를 쓰고 불편하게 앉아서 비정성시 섹션의 첫작품을 감상했다. 제목은 <김현주>였다. 전혀 기대가 되지 않았다. 김현주가 뭐냐, 김현주가. 제목을 엄청 성의없이 지었네? 하지만 감독님은 다 계획이 있었다. 첫 영화의 엔딩장면. 그리고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어떻게 저런 은유를 하지 싶어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와 이거 완전 물건이네. 신선한 충격과 함께 오래 곱씹고 싶은 여운이 당도했다. 아이고 강지효 감독님 절 받으세요 두번받으세요...
와 전주나 부산보다 나은데요?
극장을 나오면서 같이 간 지인들과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상영된 단편들의 수준이 다 높았다. 거를 타선이 없었다. 사회문제를 다뤘기에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지만 4편의 단편영화가 하나하나가 오래 마음에 맴돌았다. 김나연 감독의 <실버택배>, 송현주 감독의 <어제 내린 비>, 박희은 감독의 <언팟>까지. 이런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한국영화의 미래라면, 정말이지 앞으로가 기대된다고 생각했다.
비정성시.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동명의 영화에서 따온 말로 '슬픈 도시' 라는 뜻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무거웠고, 미간이 찌푸려졌다. 1분 1초도 마음편하지 않았고 (그나마 <어제 내린 비>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ㅠㅠ) 모든 영화가 끝나고나서는 한없이 마음이 우울해졌다.
- <실버택배>의 그 종이태우는 장면은 마치 <마더>의 김혜자를 연상시키더라구요
- <언팟> 의 식당씬 너무 좋지 않았어요? 배경이 외국인게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는게 와...
- <어제 내린 비>의 오프닝이 진짜 인상적이었죠. 이 영화는 그런거 같아요. 비오는 순간이 아니라, 그걸 지나보내고 난 뒤에 우산을 말리는걸 지켜보는 느낌
그래도 같이 간 사람들이 있어서 좋았다. 우리는 시덥잖은 이야기를 하며 영화를 곱씹고 또 추억했다. <김현주>의 현주를, <실버택배>의 할머니를, <언팟>의 자매를... 가끔 영화가 너무 가슴벅차게 좋다는 생각을 한다. 어떻게 몇 시간만에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뒤흔들수 있을까. 평생 모르고 살았는데, 어떻게 이렇게 한 순간에.
한 때 나도 영화를 꿈꿨던지라 좋은 영화를 보고나오면 경탄과 함께 질투가 일어나곤 한다. 20대때는 언제나 '그래도 저 사람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나도 언젠가 따라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고마운 마음이 더 크다. 이런 영화를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나는 가끔 영화를 꼭 껴안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고맙고도, 고마운 나의 영화들. 도대체 영화가 뭐길래 사람을 이렇게 행복하게 만드는 걸까. 도대체, 영화가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