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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퐝메리 Aug 30. 2020

모든 장면이 눈물나는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아이를 낳은적도, 키운적도 없지만 조카를 볼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이래서 사람들이 애를 낳는구나. 조그만 머리를 안고 있노라면 '좋은 사람이 되어야지' 하고 언제나 다짐하게 된다. 그 작은 아이의 심장이 내 가슴에 맞닿아 숨을 쉬고 있는걸 느낄때면 정말이지 이 아이를 위해서는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내가 태어나서 누군가의 '처음'을 지켜본 적이 있었던가. 조카가 태어났을 때 그 울음소리가 잊혀지지 않는다. 이 세상에 막 발을 내딛는 누군가의 '처음'을 지켜 본 순간, 그 감격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6년간 키운 아이가 내 아이가 아니라면 나는 어떻게 할까


영화의 줄거리를 대충은 알기에 첫 장면부터 눈물이났다. 마침 영화 속 케이타(주인공 료타의 키운 아들) 는 어찌나 내 조카와 눈매가 닮아 있는지. 쌍커풀 있는 동그란 눈을 보는 순간, 알 수 없는 눈물이 계속 흘러 어쩔줄을 몰라야했다. 아 미쳤어... 어떻게 쟤를 보내. 말도 안되지. 친자식이 중요해? 핏줄이 무슨 소용인데. 그렇지만 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내가 낳은 아이는 어떡하지? 지금 키우던 아이도 절대 못 보낼 것 같지만, 내가 낳은 아이가 내가 모르는 곳에서 살아가고 있다면? 그 아이가 행복한지, 어떻게 자랐는지는 내가 알아야만 하지 않을까?  


둘 다 저희한테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주인공 료타가 키운 아이도 낳은 아이도 포기할 수없어 상대측 부모에게 던지는 말에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무례하다. 말도 안된다 생각하지만, 사실 그랬다. 나라도 그렇게 말했을것이다. 친자식은 내가 키울 수 있는 상황보다 훨씬 열악한 곳에서 살고있다. 바뀐 아이는 6년간 정성을 다해 키워왔다. 환경이 전부는 아니지만 내 환경이 상대쪽보다 훨씬 낫다면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키운 케이타도, 낳은 류세이도 모두 내가 데려와 키우고 싶다고. 이 아이들을 나라면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고.



절대 대체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렇지만 류세이에게는 키워준 부모가 '대체 불가능한' 존재였다. 아무리 애써도 변하지 않는 것들. 모두가 하하하 웃고 이제는 새로운 가족이 되었다고 여기는 순간, 류세이는 '원래 부모에게 돌아가게 해달라' 고 기도한다. 케이타가 찍은 자신의 모습을 카메라로 확인한 순간, 료타 역시 케이타의 존재가 평생 지워지지 않을 것임을 직감한다. 부모-자식 관계는 그런 것이다. 모든 사랑하는 사이가 그렇듯 '대체 불가능한 어떤 것' 이라는 사실. 그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는 순간 우리는 영원히 되돌아갈 수 없다.



대체될 수 없는 모든 것은 사랑이기에


조카는 올해 4살이다. 그런데 그 아이가 없었던 이전 삶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저 아이가 없이 수십년을 살아왔다는 게, 어떨때는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 그건 쟤가 내 동생의 아이이기 때문이 아니고, 핏줄이기 때문이 아니다. 나를 보면 저 멀리서부터 달려오는 사람은 그 애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머리숱이 많지않아 머리를 양쪽으로 쪼매고, 자동차 운전을 자꾸 하려고 하고, 밥은 안 먹지만 면은 먹고, 리본이 달린 구두를 좋아하고, 평발이라 많이 걷는걸 힘들어하고, 아큼(아이스크림)을 세상에서 좋아하는 그 어린 여자아이가, 내 인생에는 유일하기 때문이다.  





료타는 이제 아버지란 역할은 자기 자신밖에 할 수 없는 대체불가능한 것임을, 케이타는 다른 아이와 쉽게 교환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란 것임을 절실하게 깨달았을 것이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그것은 인생에서 절대로 바꿀  없는 어떤 대체불가능의 존재가 하나  생겨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존재는 잃어버릴 가능성이 있고, 그 상실의 공포가 우리를 평생 아프게 할 것이다. 너를 사랑하지 않으면 아프지도 않겠지. 하지만 네가 아니라면, 그게 내 인생의 무슨 소용이 있을까.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함으로써 비로소 내 자신이 된다. 네가 아니면 안 되는 존재들이 하나씩 세상에 늘어갈 때. 그렇게 우리는 나이를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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