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너무 오래 짝사랑했으니까
마지막으로 한 편 만들어보고
꿈을 접어야겠다는 마음이었어요.
그동안 모아둔 돈을 거기다 쓰면서
'나는 이걸로 영화에 대한 꿈을 접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만들었어요.
마치 나한테 주는 선물처럼.
책을 읽다가 이 부분에 밑줄을 그었다. 눈물이 조금 났다. 윤가은 감독도 이렇게 방황했었구나. 윤가은 감독처럼 뛰어난 사람도 이런 시기가 한번쯤은 다 있는거구나. 놀라움과 안도감. 그리고 나중에는 저런 용기를 낼 줄 아는 사람이라, 역시 너무 좋다는 팬심이었다. 따지고보니 그랬다. 그래... 이렇게 생각하면서 좀 살걸. 뭘 해서 꼭 잘되려고, 이걸로 뭘 어떻게 해보려고 하는게 아니라 '너무 좋아했으니까 이것만 하고 그만둬야지' 하는 마음으로 살아볼걸. 그렇게 돈도 써보고, 시간도 써보고 할걸.
살아오면서 내 마음대로 하지 않은 선택은 없었다. 빡빡 우겨서 원하는 전공을 선택했고, 갑자기 이 길이 아닌것같아서 욕먹으면서 언론고시반을 나왔고, 그렇게 돌아돌아 취업을 할 시기에 다큐멘터리 조연출도 해보고. 원하는 대로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지며 살았다. 그렇지만 언제나 선택을 할때는 지나치게 무거웠다. '이것만 해보고 꿈을 접어야지' 이런 평안한 마음이 아니었다. '이거 아니면 안돼' 혹은 '나는 꼭 이걸 해야할것만 같아' 라는 절박함이었다. 그때는 그랬다. 무거운 마음가짐으로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지나고나니 할 수 있는 말이겠지만. 나도 한번쯤은 그럴걸 그랬다. '너무 좋아하니까 이것만 해보고 꿈을 접을래' 그런 마인드였으면 좋았을걸 그랬다. 그렇게 끝을 정해놓고 해볼걸. 그랬다면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지금도 다큐멘터리를 제작일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물론 나는 지금의 마케터 업무의 만족한다. 하지만 그런 마음가짐이었으면 그때를 더 행복하게 추억할 수 있을것 같다)
사람이 꿈꾸어오던 일을 위해서는
돈을 낙엽처럼 태워야 한다.
<뿌리깊은 나무>를 창간한 한창기 선생이 했다던 말이다. 윤가은 감독의 이 인터뷰를 읽으면서 나는 언제 내 돈을 낙엽처럼 태운적이 있었나, 하고 돌아보게 되었다. 드라마를 너무 좋아해서 한달간 유럽여행을 떠났을 때.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일주일간 뉴욕여행을 떠났을 때. 그 외에는 딱히 없는것 같더라.
그렇게 좋아했는데. 좀 더 해줄걸 그랬다. 조금 더 돈을 낙엽처럼 태우며 살걸. 배우고싶은 건 다 배우고, 가보고싶은 곳은 다 가보고. '좋아했으니까 이 정도는 괜찮아' 하며 돈을 낙엽처럼 태울 줄 아는 사람이 될걸. 포기하는 마음으로, 돌아서기 전에 딱 한번만. 나에게 주는 선물처럼. 정말이지 그럴걸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