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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퐝메리 Aug 10. 2020

무너진 세계, 흩어진 기억 - <파과>


주인공이 여자 노인인데, 킬러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문득 멈춰설 수 밖에 없었다. 아니 잠깐. 뭐라고? 노인이? 아니 그것도 여자노인이? 좋은 뜻으로 뭐 이런 소설이 다 있나 싶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강한 호기심과 흥분이 나를 서점으로 바삐 이끌었다. 도대체 무슨 소설인걸까. 누군가를 제압하는 킬러가, 세상 가장 약한 것들의 교집합이라니. 도저히 읽지 않고 넘어갈 도리가 없었다. 




주인공 조각은 오랜 방역업자(소설에서 살인청부를 뜻한다) 이다. 그녀는 뛰어난 운동신경과 순발력으로 맡은 임무를 충실히 해낸다. 그러나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어떤 코미디영화에서 봤을법한 소심하거나 엉뚱한 매력의 소유자도 아니다. 조각은 길거리에서 생명과 눈을 마주치고 그 생명을 주워올 지언정, 언제든 문을 열어두고 그 생명에게  너의 살길을 찾아가라고 조용히 내뱉는 인물이다. 조각은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매몰차거나 쉽게 연민에 빠지지도 않는다. 그녀는 그냥 노인이다. 세상에 어느정도 통달하고 건강이 다소 좋지 않은. 다른 것이 있다면 그녀의 직업이 사람을 죽이는 일이라는 것, 그 뿐이다.


   

킬러가 직업인 노인여성

당신이라면 이 주인공을 가지고
어떤 이야기를 풀어갈 것인가


죽음과 가까운 나이이고, 죽음과 가까운 직업이니, 혹여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며 죽음으로 인생의 마침표를 찍지는 않을까. 남을 죽여왔던 사람이니 남을 구하면서 죽음으로 용서를 구하지 않을까. 얼핏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의 얼개다. 작가는 독자의 상상력을 쉽게 이끌면서도 조금씩 비틀며 시선을 붙들어맨다. 조각은 왜 방역업자가 되었을까. 그녀 인생에도 의지할 만한 사람이 있었을까. 투우는 왜 조각을 죽이려하는 것일까. 조각은 앞으로  어떤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그녀 곁의 무용과 강박사는 그녀에 곁에서 어떤 결말을 맞게될까.




시종일관 흥미진진한 상황과 흡인력있는 문체로
오랜만에 책을 손에서 놓지못했다


다음이 궁금하고, 또 다음이 궁금해서 결국 한달음에 몰아쳐 이 책을 다 읽고말았다. 소설에서 이런 여성을 만나본적이 있었던가. 이처럼 강인하고, 이처럼 슬프면서도, 이처럼 담담한. 소설의 결말도 무척 마음에 들었다. 우리가 봐왔던 조각의 삶과 너무도 어울리는 마무리. 그녀는 그렇게 상실의 아픔을 견디며 살아가겠지. 그저 살아왔던 것처럼, 그저 앞으로도 그렇게. 








소설의 독특한 캐릭터와 박진감넘치는 장면으로 내내 영화 장면처럼 상상하며 읽었다. 그리고 여느 독자들이 입을 모으는것처럼 나 역시 조각은 예수정 배우를, 강박사는 지진희 배우를 떠올리며 읽었다. (뭐하냐 충무로놈들아 빨리 시나리오를 바쳐라) 영화처럼 몰입하게 되지만, 어쩔 수 없이 소설 특유의 여운이 오래가는 작품. 오랜만에 너무 즐겁게 한국소설을 읽었다. 조각을 만나 나의 세계는 그만큼 또 넓어지고 깊어졌다. 재고의 여지가 없다. 책을 덮으며 기쁜 마음으로 구병모 작가를 '나의 믿고보는 작가 리스트' 에  올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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