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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바이디, 루앙프라방

키링 다이어리 18 - 라오스 루앙프라방(Luang Prabang)

by 석류


액티비티를 두 개나 하고, 비바에서 새벽녘까지 놀고서 루앙프라방으로 넘어가려 한 게 미스였을까. 절묘하게도 눈을 뜨니 루앙프라방으로 넘어가는 새벽벤이 출발할 시간이었다. 망했다. 제대로 망했다. 차라리 자지 않고, 밤을 새웠어야 하는데. 왜 잠들어 버린 걸까. 하필 데이터도 다 써서 같이 벤을 타는 멤버들과도 연락이 닿지 않는 상황이었다. 내 숙소는 가성비는 좋았지만, 와이파이가 잘 터지지 않는 게 최대의 단점이었다. 와이파이를 사용하기 위해 방비엥인에 갔더니 사장님이 나를 보며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니, 차 놓쳤어요? 다른 사람들은 다 못 타도 석류씨는 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방비엥에서 꼭 한 번은 먹어봐야 할 샌드위치.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좋다.



그러게요. 저도 제가 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죠. 데이터를 충전하고, 오후 일정으로 루앙으로 출발하는 표를 다시 끊었다. 아까운 내 9만낍. 그 돈이면 시크릿라군을 두 번이나 더 다녀올 수 있는데. 이럴 줄 알았더라면 진작부터 오후에 출발하는 걸 끊을 걸 그랬다. 망연자실한 상태로 방비엥인 로비에 앉아있는데, 수정이와 주빈이가 나타났다. 오후 벤으로 루앙에 간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혼자 넘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안도감이 들자마자, 배고픔이 나를 찾아왔다. 주빈이와 수정이도 식사를 하지 않은 상태여서 우리는 함께 샌드위치를 사 먹기로 했다. 길가에 줄줄이 늘어서있는 샌드위치 노점들 중 나의 선택은 바로 폿 이모. 사 먹은 샌드위치중에 폿 이모네 샌드위치가 제일 내용물이 튼튼했기에 주저하지 않고 샌드위치를 구입했다. 방비엥인 로비에서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데, 사장님이 304호가 아직 안 일어났다고 말했다. 루앙으로 가는 새벽벤에 탑승해야 되는데,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응답이 없는 걸 보니 아직 자고 있는 것 같다며. 나만 벤을 놓친 줄 알았는데 놓친 사람이 또 있다니. 얼굴도 모르는 304호에게 동질감이 느껴졌다. 일어나면 샌드위치나 나눠줘야겠다 싶어서 304호 몫의 샌드위치를 남겨두었다. 벤도 같이 놓친 김에 친해지고 싶었다, 304호와.



*



원카드를 하는데 빨리 끝나지 않아서 요상했다. 원카드가 원래 이렇게 오래 걸리는 게임이었나?



비어라오를 한 캔씩 마시면서 애들과 카드 게임을 한 판하고 있는데, 체크아웃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304호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내가 잠시 화장실 간 사이에 숙소를 빠져나간 걸까? 304호에 대한 궁금증이 끝없이 모락모락 피어오를 때쯤, 애들은 마사지를 받으러 가고 나는 홀로 남아 책이나 읽을까 싶어서 전자책을 꺼내 들었다. 라오스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읽을 때 외엔 도통 책을 읽을 틈이 나지 않아서, 짐만 되나 싶었는데 들고 오길 잘했다. 전자책을 들고 온 건 신의 한 수였다. 열심히 책을 읽고 있는데, 마사지를 마치고 애들이 돌아왔고 드디어 루앙으로 갈 시간이 되었다. 빨리 루앙에 가고 싶었다. 라오스로 올 때 가장 기대했던 도시였던 만큼, 설렘은 내 안에서 풍선처럼 부풀었다. 땃새폭포, 탁발, 그리고 메콩강. 방비엥과는 다른 모습으로 나를 반겨줄 루앙프라방으로 이제 떠난다.



*


루앙으로 가는 길에 잠시 멈춘 간이 휴게소. 휴게소 건너편에서 아이들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루앙으로 가는 길은 먼저 출발한 팀의 말처럼 꼬불꼬불 멀고도 험했다. 안개가 가득한 산길을 빙글빙글 돌며 가는 탓에 아찔한 느낌도 들었다. 기사는 이런 길에 익숙하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운전했지만, 지켜보는 나는 조금 불안했다. 길이 너무 험해서 혹여나 사고라도 나면 어떡하나 싶어서. 그런 내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기사 아저씨는 험한 길을 뚫고 무사히 나를 루앙에 내려주었다. 낮에 출발했는데, 루앙에 도착하니 해가 져서 야시장이 한창 열리고 있었다. 야시장을 가로질러 숙소에 도착해 체크인을 했다. 수정이와 주빈이도 나와 같은 숙소를 잡아서 우리는 같이 붙어있는 방을 배정받았다. 짐을 내려놓고, 먼저 루앙에 도착한 팀들과 만나기로 했다. 루앙의 공기가 후덥지근하게 볼을 간질이는 저녁, 모두가 모였다. 여러 액티비티를 함께하며 끈끈한 정을 나누었던 멤버들과의 루앙에서의 첫 완전체 모임이자 어쩌면 마지막 모임일 수도 있는 만남. 눈앞에는 메콩강이 흐르고, 메콩강을 타고 흐르는 우리의 웃음소리가 달콤하게 귓가에 꽂히는 이 시간이 더없이 소중했다.



웃음꽃이 피어오르는 루앙. 시간 가는 게 아쉬울 정도로 빠르게 완전체 모임은 흘러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우리 테이블의 주문을 받던 직원이 모두의 시선을 강탈했다. SNL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오는 김민교와 똑같이 생겨서, 신기함에 나는 그와 함께 사진도 찍었다. 수줍은 표정으로 흔쾌히 사진 촬영에 응해주는 그의 모습이 너무도 순수해 보여서 귀여웠다.



날씨 탓인지, 아니면 맥주 탓인지 너무 더워서 화장실도 갈 겸 잠시 자리에서 빠져나와 바람을 쐬고 있는데 김민교를 닮은 직원이 다가와 내게 말을 걸었다. 어디서 왔냐 길래 한국에서 왔다고 대답했더니 아까 사진을 찍을 때처럼 수줍은 표정으로 대뜸 내게 뷰티풀 앤 핸섬이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생각지도 못한 칭찬에 기분이 묘해졌다. 근데, 뷰티풀이면 뷰티풀이지 핸섬은 뭘까. 투블럭으로 깎은 내 헤어스타일 때문에 그렇게 말한 걸까? 뭐, 어느 쪽이든 감사한 일이다. 나를 훈훈하게 봐주었다는 거 자체만으로도.



다시 자리로 돌아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새로운 걸 하나 알게 되었다. 규혁이가 바로 304호였다는 것. 애타게(?) 기다렸던 304호가 바로 옆에 있었다니. 그리고, 이미 진작에 체크아웃을 했는데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다는 것.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304호가 바로 내 옆에 있었을 줄이야. 나는 이미 떠나버린 줄도 모르고 304호에게 샌드위치를 건네 줄 때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렇게 루앙에서 304호를 만나다니. 그것도 바로 옆자리에서. 전혀 예측도 못한 상황이라 놀랍고 신기했다.



*



가게들이 방비엥보다 더 일찍 닫는 루앙의 특성상,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아직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기에 숙소의 위치가 비슷한 팀들끼리 나누어서 숙소 주변에서 가볍게 맥주를 마시다가 헤어지기로 했다. 두 팀으로 나누어 노상 맥주를 마시는데, 가게들이 다 문을 닫아서일까. 루앙의 거리에는 정적이 흘렀다. 아까의 활기는 온 데 간데 없이 어둠 속에 잠긴 거리를 바라보며 맥주를 마시는데, 간간히 거리를 울리는 오토바이 소리가 왠지 소름 돋게 느껴졌다. 다들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새벽 탁발 때 다시 만나기로 하고 이만 헤어지기로 했다.



루앙 첫날, 새벽 벤을 놓쳐서 망연자실했지만 사람들과의 만남은 망연자실함을 금세 잊을 수 있게 만들었다. 계획한 대로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아도 싫지만은 않은 이 느낌이야말로 여행지가 가진 긍정적인 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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