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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겁쟁이 생애 첫 튜빙을 하다!

키링 다이어리 17 - 라오스 방비엥(Vang Vieng)

by 석류



튜빙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휴대폰을 넣을 방수팩이 필요했다. 물놀이를 하게 될 거라는 생각을 안 했기에 방수팩을 미처 준비해 가지 못했던 터라 급하게 방수팩을 사고, 튜브를 빌리러 튜빙 가게에 갔다. 튜빙의 가격은 11만낍. 튜빙이 끝난 후 튜브를 반납하면 튜브 가격인 6만낍을 돌려주는 시스템이었다. 지갑을 까먹고 다른 사람에게 맡겨버린 터라 수중에는 라오스 낍이 하나도 없어서 튜빙을 함께 할 선애 언니에게 20만낍을 빌렸다. 튜빙이 끝난 후 지갑을 받으면 빌린 낍을 주기로 하고. 선애 언니가 나에게 낍을 빌려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방수팩도 못 사고, 튜브도 못 빌리고, 강가 바에서 맥주를 마실 수도 없었을 것이다. 흔쾌히 낍을 빌려준 선애 언니에게 감사했다.



*



인생 첫 운전에 이어 첫 튜빙. 언제 이런 걸 또 해볼까 싶을 정도로 물이 겁났던 내게는 커다란 도전과도 같던 튜빙이 시작되었다. 튜브를 타고 그냥 떠내려가다가 바가 보일 때 손을 흔들면 바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밧줄을 튜브 쪽으로 던져주는데, 그럼 그 밧줄을 잡고 바로 올라가면 된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나만 왜 엉뚱하게 직선으로 가지 않고 왼쪽 방향으로 튜브가 흘러가는 걸까. 분명 다 같이 튜빙을 시작했는데 나만 동떨어져서 엉뚱한 쪽으로 튜브가 가서 당황스러움에 휩싸였다. 끝없이 왼쪽 방향으로 전진하던 내 튜브는 공교롭게도 바의 계단 앞에 멈춰 섰다. 튜브가 내가 물을 무서워하는 걸 알고 여기로 나를 데리고 와준 건가? 다들 밧줄을 잡고 첫 번째 바로 올라오는데 나만 터벅터벅 계단을 밟고 바로 올라가서 다소 웃긴 상황이 되었다.



V20170612_171642000_8BF3011A-0DD6-4780-B577-1EA89C518985.MOV_000030284.png 첫 번째 바에서는 맥주 빨리 먹기 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나도 참여할까 순간 고민했다.



첫 번째 바는 우릴 제외하고는 전부 서양인들만 가득했다. 각자 무리를 지어 놀고 있어서 쉽사리 끼기 힘들어서 우리끼리라도 놀기로 했다. 맥주를 한창 마시며 음악에 몸을 맡기고 있는데, 어디선가 한 언니가 나타났다. 원래 이곳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 언니는 우리 사이에 자연스럽게 섞여들더니 비어퐁 게임을 제안했다. 팀을 나눠 맥주를 따른 컵에 탁구공을 던져 넣어서 성공하면 상대팀이 맥주를 마셔야 하는 게임이었다. 게임을 해서 일까. 분위기가 고조되는 게 느껴졌다. 돌아가면서 탁구공을 던지는 재미에 심취해있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내리자 나는 걱정이 됐다. 강물이 많이 불어날까 봐 두려웠으니까. 부디 바에서 내려갈 때는 비가 적게 내리기만을 마음속으로 빌었다.



한창 비어퐁에 빠져있는데 옆을 보니 바를 가득 메우고 있던 서양인들이 전부 사라져 있었다. 두 번째 바로 내려가거나 튜브를 타고 떠내려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우리도 이동하기로 했다.



조금만 떠내려가면 있는 두 번째 바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첫 번째 바에서 내려와 튜브에 몸을 실었다. 두둥실 튜브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하나 둘 튜브들이 강물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계단 쪽으로 튜브가 데려다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품었는데, 이게 웬걸? 이번엔 오른쪽으로 튜브가 계속 흘러가더니 대나무가 가득한 곳에 걸려서 멈춰버렸다. 아무리 손을 휘저어도 튜브가 움직이지 않아서 내 얼굴은 하얗게 질려버렸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두 번째 바에 도착했는데 나만 낙오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무서웠다. 혼자 튜브를 타고 쏭강 위에 떠있는 느낌이 오싹하게 느껴질 만큼.



“도와주세요! 헬프 미! 칭 빵방워! 쑤어 이대!”



누구라도 나를 구해주러 왔으면 하는 바람에 도와주세요를 여러 개의 언어로 계속 외쳤더니, 여자 친구와 함께 떠내려가던 한 외국인이 나를 발견하고는 내 쪽으로 헤엄쳐왔다. 여러 언어 중 헬프 미가 온 것이다. 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그는 내 튜브를 잡고 대나무 숲에서 꺼내어주더니 내가 두 번째 바를 갈 거라고 얘기하니 그쪽으로 세게 내 튜브를 밀었다. 손을 들어 바에서 밧줄을 던져주는 사람에게 힘차게 흔드니 내 쪽으로 밧줄이 던져졌다. 이제 두 번째 바에 갈 수 있겠다 싶어서 안심하려던 순간이었다. 밧줄을 아무리 잡아당겨도 나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이번엔 돌부리에 튜브가 걸린 거였다. 바로 올라가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내 모습이 안타까웠던 걸까. 대나무 숲에서 나를 구해준 그가 다시 내가 있는 쪽으로 와서 무사히 바로 올라갈 수 있게 내 튜브를 돌부리에서 빼내 주었다. 연달아 신세를 지게 될 줄 몰랐던 터라 당황감이 컸다. 앵무새처럼 땡큐만 연신 연발하는 나를 보며 그는 씨익 웃었다.



반쯤 혼이 빠진 상태로 두 번째 바에 입성하고 맥주라도 하나 대접해야겠다 싶어서 주변을 둘러보니 그는 없었다. 바를 들르지 않고 계속 떠내려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흔쾌히 나를 도와준 그가 아니었다면 두려움에 빠져있던 나는 그대로 튜빙을 종료했을 테니까. 이름도 모르는 그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보내고 싶다. 땡큐. 당신 덕분에 살았어요.



V20170613_154752032_709FBA99-4767-446E-9DCB-BDED2CECB8E9.mp4_000011208.png 비와 지붕에서 흘러나온 물로 모두가 촉촉하게 젖은 두 번째 바. 방비엥에서 제일 신났던 장소로 내게 기억되고 있다.



두 번째 바는 첫 번째 바와 달리 지붕이 아예 없었다. 바의 카운터를 제외하고는 완벽한 오픈형의 구조였다. 공간도 훨씬 좁았고. 각자 무리 지어서 놀던 첫 번째 바와는 다르게 모두가 한데 어우러져 춤을 췄다. 음악 선곡도 좋았다. 방비엥에서 들은 플레이 리스트 중에서 단연 최고였다! 게다가 바의 카운터 쪽의 지붕에서 물이 흘러나와서 장난기가 발동한 사람들은 저마다 맥주컵에 물을 받아 눈에 보이는 사람들에게 뿌려대기 시작했다. 몇 번 물을 맞았더니 약이 올랐다. 나도 지고 있을 수는 없다 싶어서 맥주컵에 물을 잔뜩 받아서 복수를 시도했다. 복수는 더 큰 복수를 낳는다더니, 이런. 엄청난 물세례가 내게 쏟아졌다. 눈을 뜨기도 힘들 정도로 물을 맞아버렸다. 아이스버킷을 했을 때보다 더 많은 물줄기를 맞아 본건 처음이다. 그래도 신났다. 국적을 불문하고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물과 비를 맞으며 춤을 추는 경험이 결코 쉽지만은 않으니까. 한창 춤을 추고 있는데, 바 밑에서 춤추는 우리를 보며 쭈뼛주뼛 구경을 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딱 봐도 한국인 같아 보여서 같이 놀아요!라고 말하며 손을 내밀었더니 잠시 머뭇거리던 그들은 우리와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후에도 머뭇거리는 사람이 보일 때마다 국적을 불문하고 손을 내밀었고, 모두가 하나 되어 댄스타임을 즐겼다. 카약을 타고 지나가다가 재밌어 보여서 들른 사람들도 있었고, 친구와 함께 튜브를 타고 떠내려가다가 재밌어 보여서 일행과 흩어져 바에 들른 사람도 있었다. 혼자든 둘이든 상관없이 새로운 사람과 함께 어울려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것, 내가 좋아하는 여행의 모습이 바로 이곳 튜빙 바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



너무 장시간 두 번째 바에 머물렀다. 튜브 반납 시간이 가까워져 와서 움직여야 했다. 그러나 나는 이제 더 이상 튜브를 타고 떠내려가는 것에는 흥미가 줄었기에 튜빙 바에 더 머물고 싶었다. 함께 튜빙을 했던 이들을 먼저 보내고, 툭툭이를 타고 갈 생각으로 툭툭이 멤버들을 모으는데 좀체 사람이 모이지 않았다. 비어퐁을 함께 했던 언니와 동생 한 명이 모였는데 더 이상 인원이 늘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아서 조금 떠내려가다가 인원을 모아보기로 하고 튜빙 바를 벗어났다. 아까처럼 낙오될까 봐 겁이 났던 나는 물이 무섭다고 불안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고, 그들은 걱정 말라고 같이 움직여주겠다고 했다. 그 말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잠시 후의 상황은 미처 알지도 못 한채.



*



분명히 동시에 출발했는데 어째서 내 튜브만 움직일 생각을 안 할까. 한쪽 방향으로 가도 좋으니 움직이기라도 하면 좋겠는데 튜브는 내 바람과 달리 한 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기만 할 뿐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함께 출발했던 언니와 동생은 이미 저만치 떠내려가고 있었는데 나만 고정된 상태로 튜브가 움직이지 않았다. 다시 또 혼자 동 떨어지는 상황이 발생할까 봐 겁이 났던 나는 안간힘을 쓰며 팔을 저었다. 한참 팔을 젓자 기적 같게도 튜브가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나도 드디어 떠내려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빨리 떠내려 오지 않은 내가 걱정이 되었던 건지, 두 사람은 떠내려가던 걸 멈추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겨우겨우 두 사람과 조우한 나는 이젠 정말 떠내려갈 힘이 없었고 툭툭이를 타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애석하게도 내 바람과는 다르게 툭툭이를 탈만한 인원은 아직도 모이지 않은 상태였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더 떠내려갔고, 한 명 정도의 인원만 더 모인 상태에서 툭툭이를 탔다. 내 튜브를 잡고 함께 가준 그들이 없었다면, 나는 계속 두려움에 떨며 쏭강 위를 힘없이 유영하고만 있었을 테다. 그렇게 나의 첫 튜빙은 피니쉬 라인까지 닿지 못하고 툭툭이를 타는 걸로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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