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링 다이어리 16 - 라오스 방비엥(Vang Vieng)
버기카는 시크릿라군을 먼저 찍고, 그다음 블루라군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코스였다. 시크릿라군으로 가는 길은 전날 가본 것처럼 꽤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 우기답게 곳곳에 물웅덩이가 있었는데, 웅덩이를 요리조리 잘 피해 가는 가이드와 달리 초보운전인 우리는 피해가지 못하고 정면으로 웅덩이와 마주했다. 덕분에 버기를 탄지 얼마 되지 않아서 온몸이 흙탕물 투성이가 되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시크릿라군이 눈앞에 보였다. 시크릿라군에 우린 이미 다녀왔기에 굳이 물에 들어갔다 오지 않고, 바로 블루라군으로 갈 생각이었다. 시크릿라군에 정차해서 각자의 버기에서 구명조끼를 내려주는 가이드에게 물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더니 가이드는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버기에 탑승했다.
블루라군으로 향하는 길은 시크릿라군 보다는 도로 사정이 좋아서 오프로드의 느낌이 거의 나지 않았다. 물웅덩이도 거의 없었고. 버기카는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재미가 있는데, 비교적 잘 포장된 도로 위를 달리니 흙먼지만 날릴 뿐이라 재미가 반감되었다. 그래도 버기카 특유의 속도감은 여전히 좋았지만.
*
블루라군에 도착했다. 다들 흙먼지와 흙탕물을 뒤집어써서 몰골이 말이 아니어서 블루라군에서 물놀이 겸 정화를 하고 돌아가기로 했다. 버기에서 내리는데 다들 내 모습을 보더니 혼자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버기카 출발 전의 비포와 애프터의 모습이 확연하게 차이날 정도로 나는 거지꼴이 되어있었다. 물을 무서워하는 나지만, 거지꼴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용기를 내 조심스레 블루라군에 몸을 담갔다. 겁이 나서 차마 다 들어가지는 못하고 반쯤 들어갔다가 나왔다를 반복했다. 겁쟁이라고 놀려도 할 말이 없다. 나는 정말 물이 무서우니까. 물이 겁나서 우물쭈물하고 있는 나와 달리 다른 사람들은 다이빙까지 하며 신나게 블루라군을 즐겼다. 비록 다이빙은 하지 못해도, 블루라군 물에 들어갔다가 나왔으니 그걸로라도 만족하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여기 까지기에.
블루라군에서 흙탕물을 다들 씻어내고, 다시 버기에 올라탔다. 이젠 내가 운전대를 잡을 차례였다. 운전대를 잡자 마음이 두근거렸다. 태어나서 처음 하는 첫 운전이었다. 버기는 일반적인 차와 다르긴 하지만. 나와 마찬가지로 면허가 없던 규혁이도 무난하게 운전했으니 나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긴장하지 않고 해야겠다 다짐했다. 그러나 몇 초 후 그 다짐은 무색해져 버렸다. 시동을 걸자마자 엑셀과 브레이크를 헷갈려서 다른 버기를 제대로 박아버릴 뻔했으니까. 규혁이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블루라군 주차장을 빠져나와 본격적으로 버기를 몰기 시작했다. 공식적인 버기 코스를 다 돌았기에 돌아가는 길은 매우 짧게 느껴졌다. 금세 처음 버기를 탑승했던 장소에 도착했다. 처음 버기를 빌렸던 시간은 세 시간인데 우린 시크릿라군에서 물놀이를 안 했기에 시간이 사십 분가량 남아있었다. 시간이 남았는데 이대로 버기가 종료된다는 게 모두들 아쉬웠는지, 가이드와 딜을 했고 우린 시크릿라군을 한 번 더 돌고 올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
가이드를 따라 시크릿라군으로 가는 길은 아까와는 좀 달랐다. 훨씬 더 오프로드의 느낌이 진하게 느껴졌다. 이미 옷도 다 더러워졌기에 웅덩이 위를 거침없이 달렸더니, 옆에 앉은 규혁이가 소리쳤다.
“누나 운전 진짜 와일드해!”
내 운전 와일드한 거 인정. 이보다 더 와일드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웅덩이를 쌩쌩 지났고, 웅덩이 위주로 운전하다 보니 눈에 자꾸 흙탕물이 튀어서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눈을 감으면 안 되는데 나도 모르게 눈이 아파서 살짝살짝 눈을 감았더니 버기가 방향을 잘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휘청거렸다. 내 운전이 못 미더웠던 걸까. 앞서가던 가이드가 버기를 멈추더니 나와 규혁이에게 자리를 체인지하라고 손짓했다. 더 운전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규혁이에게 운전대를 넘겨주고 조수석에 탔다. 웅덩이만 골라서 운전하는 나와 달리 훨씬 안정적으로 운전하는 규혁이 덕에 눈이 아플 정도로 튀던 흙탕물이 좀 멎어 들었다. 흙탕물이 덜 튀니 눈은 안 아팠지만, 스릴감은 줄어서 루즈해지려던 찰나였다. 우리 앞에 강이 나타났다. 가이드는 한 번에 부웅- 소리를 내며 강을 지났고, 우리도 따라 강을 지나가려는데 한 번에 지나 가지지 않아서 물속에서 시간이 조금 지체되었다. 흙탕물이 튀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온몸이 흠뻑 젖어들었다. 강물이 우리를 향해 힘차게 밀려들고, 그 강물을 밀어내며 앞으로 전진하는 그 느낌은 직접 그 코스를 지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짜릿함이었다. 한 번에 강물을 통과하진 못했지만, 비교적 무난하게 강물을 지나온 우리와 달리 뒤따라오던 버기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전속력으로 건너야 되는데 속력을 줄인 탓에 강 한가운데에서 버기가 멈추고 만 것이었다. 다행히도 다른 버기 멤버들이 도와줘서 낙오된 버기는 하나도 없이 무사히 강물을 건넜다. 비포장도로를 넘어서 버기를 타고 강을 건너던 짧은 그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생각하기만 해도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것만 같다. 만약 우리가 시간이 남지 않았고, 한 번 더 버기를 탈 수 있게 가이드와 딜을 하지 않았더라면 강물 코스는 절대 가지 못했겠지. 운이 좋은 날이었다.
*
짜릿했던 버기 타임이 끝나고, 반납하는 곳에 수도가 있어서 간단하게 흙탕물을 씻어내고 방비엥 시내로 돌아가기 위해 툭툭이에 탔다. 어제 튜빙을 했던 멤버들 몇몇을 제외하고, 튜빙을 아직 하지 못한 다른 사람들은 오늘 튜빙을 하러 간다고 했다. 나에게도 함께 가자고 제안을 했는데, 튜빙에 대한 호기심은 있었지만 강에서 떠다니며 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몰려왔다. 물에서 하는 게 아니라면 고민 따위 하지도 않고 단 번에 오케이 할 텐데. 툭툭이를 타고 가면서 한참 고민을 하다가 이왕 옷도 버릴 옷을 입고 버기를 탔으니 한 번 도전해볼까 싶어서 하겠다고 했다. 사실, 전날에 튜빙을 갔던 사람들이 튜빙 할 때 강가 옆에 있는 바들이 재밌다고 극찬을 한 게 큰 영향을 미쳤다. 다들 튜브를 타고 강에서 떠내려가며 경치를 보는 목적으로 가는데, 나는 반대로 튜빙이 주가 아닌 강가 바에서 놀기 위해서 가겠다고 결심한 게 웃겼지만 어쩌랴. 그런 동기 부여라도 없으면 아예 시도조차 못해볼 테니까. 물이 무서워서 피니쉬 라인까지 못 내려올 거 같으면 툭툭이를 타고 내려가면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도 결정에 한몫했고. 그렇게 1일 1 액티비티를 하겠다는 다짐을 무너뜨리고 나는 튜빙 멤버에 합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