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링 다이어리 15 - 라오스 방비엥(Vang Vieng)
시크릿라군을 다녀온 후, 각자 숙소에서 뽀송뽀송한 모습으로 단장하고 저녁을 먹기 위해 뽈살 집으로 모였다. 뽈살은 그릴에 구운 돼지, 치킨, 오리 등의 메뉴가 있었고 우리는 종류별로 맛을 보자며 각 테이블마다 조금씩 다른 메뉴를 시켰다. 얼마 후에 나온 뽈살은 맛있지만 무척 딱딱했다. 미리 구워놓은 고기를 데운 것 같았다. 맛은 평범했지만, 소스가 마치 마법 같았다. 야채를 찍어 먹어도 맛있고, 뽈살과 국수면을 찍어 먹어도 맛있었다. 뭘 찍어 먹어도 맛있는 소스라니. 이게 마법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한창 뽈살을 먹고 있는데, 우리 중 누군가가 호기심이 발동했는지 직원에게 이게 무슨 부위냐고 물었다. 직원은 대답 대신 자기 볼을 가리키며 웃었다. 그 모습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모션만으로도 이해 가능한 뽈살. 이토록 정직한 대답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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뽈살 집을 나와 아까보다 불어난 인원으로 바나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바나나에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데, 강가 옆이라 그런지 시원했다. 인원이 더 늘어나서 다닥다닥 붙어 앉았는데도 시원하다니. 강 옆의 장점이 이런 건가 싶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여기 진짜 시원하다고 얘기하고 있는데, 천장을 가리키며 누군가 외쳤다.
“여기 천장에 선풍기가 있어서 시원한 거였어!”
다들 강 옆이라 시원하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천장에서 돌아가고 있던 선풍기 덕분에 시원했던 거였다. 뽈살에 이어서 또 한 번 큰 웃음이 터진 순간이었다.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고 있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를 뚫고 두 명의 멤버가 나타났다. 막내 수정이와 주빈이가 왔다. 가짜 막내 인척 하고 있었는데, 진짜 막내들이 나타난 것이다. 그냥 자리에 앉으면 재미없으니 장기자랑을 해야 앉을 수 있다고 했더니 둘은 춤을 췄다. 빼지 않고, 흔쾌히 응하는 둘의 모습이 기특했다. 두 사람의 합류로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고, 내리는 비와 천장에서 돌아가는 선풍기도 우리의 열기를 막을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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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멎어들 때쯤, 우리는 다시 자리를 옮기기로 결정했다. 이번에 갈 곳은 비바 펍. 외국인들이 많아서 핫하다는 이야기를 미리 들은 터라 기대감이 몽실몽실 피어올랐다. 때마침 비바는 프리드링크 타임이었고, 우리는 각자 손에 보드카가 담긴 잔을 하나씩 들고 음악에 맞춰 춤을 췄다. 라오스에 와서 처음으로 추는 춤. 비바의 분위기가 나는 마음에 들었다. 방비엥에 머무는 동안 또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바는 춤을 추기는 참 좋았지만,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어서 오래 머물지는 못하고 우리는 거리로 나왔다. 방비엥의 가게는 이제 하나 둘 영업을 마감하고 있었고, 그나마 오래 영업을 하는 것 같아 보이는 락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의 가게로 걸음을 옮겼다. 어느덧 4차였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많은 장소를 이동한 건 처음이었다. 한국에서도 이런 적은 없었는데.
락 페스티벌은 이제껏 간 곳 중에 가장 고급스러운 분위기였다. 이미 와본 사람의 말에 따르면 라이브 공연도 한 번씩 열리곤 한단다. 이제 더는 움직일 곳도 없었기에, 이곳을 마지막 장소로 삼기로 했다. 여러 번 자리를 옮겼음에도 불구하고, 열기는 전혀 사그라들지 않았고 오히려 더 불타올랐다. 방비엥의 습도보다 더 뜨겁게 느껴질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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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헤어져야 할 시간이 되었다.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은데, 헤어지려니 아쉬웠다. 그래서 몇 명의 멤버들과 간단히 슈퍼에서 한국 소주를 사서 노상 소주를 마시고 헤어지기로 했다. 소주 안주로 컵라면도 샀는데, 라면 선택의 실패인지 전혀 입맛에 맞지 않았다. 망고와 소주 조합이 제일 나을 것 같아서 망고를 가운데 두고 잔을 비웠다. 소주를 마시다가 문득 라오 소주에 대한 궁금증이 발동했고, 도수가 고량주 못지않게 높았기에 서로 가볍게 눈치를 보다가 라오 소주 자그마한 병을 하나 사서 나눠 마시기로 결정했다. 처음 맛 본 라오 소주는 보드카처럼 음료를 섞어 먹어야 간신히 마실 수 있을만한 맛이었다. 아무것도 섞지 않은 라오 소주를 한 잔씩 들이킨 모두의 얼굴이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바뀌어있었다. 다행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한참 노상 술자리를 가지고, 이젠 정말로 헤어져야 할 시간이었기에 버기카 탈 때 만나자며 작별의 인사를 건넸다. 방비엥의 거리가 고요히 잠든 시각, 우리도 고요한 공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그렇게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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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아침은 왔다. 새벽 늦은 시간까지 달려서일까. 버기카를 하러 모인 멤버들 중 노상 술자리를 함께 했던 멤버들은 다들 조금은 늙은 얼굴로 버기를 타러 나타났다. 그러나 피곤함도 버기카에 대한 기대감을 넘어설 순 없었다. 피곤함 속에서도 다들 설렘으로 눈빛이 반짝거렸다. 2인 1조로 버기를 타야 되는지라, 각자 함께 탈 파트너를 꾸리는데 내 파트너는 의외의 인물인 규혁이가 낙점되었다. 어제 술자리로 조금은 가까워지긴 했지만, 아직 그렇게 친하진 않은데 같이 버기를 타게 될 줄이야. 역시 사람일은 알 수가 없다. 갈 때는 규혁이가 운전하고 돌아올 때는 내가 운전대를 잡기로 하고 공터에서 간단히 버기카 연습을 하고 가이드의 지휘에 따라 버기카가 한 줄로 정렬된 채 동시에 시동을 걸었다. 와일드한 엔진 소리와 함께, 버기가 덜컹거리며 움직였다. 자 이제 오프로드를 달리러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