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원이 사랑한 도시 - 구미 (1)
삼일문고를 추천받고, 구미로 가는 길에 걱정과 설렘이 머릿속에서 뒤엉켰다. 구미에 오픈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궁금했던 공간이었기에 이렇게 다음 서점으로 추천받아 갈 수 있다는 사실에 설레었지만, 첫 타자인 꿈꾸는 책방의 정도선 점장님과 달리 한 번의 안면도 없는 그를 만나 버벅거리지 않고 인터뷰를 잘 해낼 수 있을까라는 걱정 감이 들었다. 내가 전문 인터뷰어가 아니기에 더 그랬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삼일문고에 들어선 순간 나는 그 모든 감정들을 잊어버렸다. 대신 내 머릿속에는 또 다른 감정만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사랑. 그렇다. 나는 사랑에 빠져버렸다. 삼일문고에. 처음 만난 이 공간에 나는 첫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혼자 수줍게 얼굴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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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하기로 했던 시간보다 한 시간 먼저 삼일문고에 도착해 서점 곳곳을 구경했다. 정갈하고, 포근한 이미지의 공간감. 지하 1층과 지상 1층 두층으로 구성된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공간의 유기성이 곳곳에 느껴져서 감탄스러웠다. 서가의 배치 또한 튀는 것 없이 모든 공간과 일체가 되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윤동주를 좋아하는 내게 더 특별하게 다가왔던 윤동주 100주년 전시. 삼일문고를 둘러보며 나는 점점 더 거세게 심장이 뛰고 있음을 깨달았다. 공간과 사랑에 빠지는 게 대체 얼마만이던가. 삼일문고 곳곳에 보이지 않는 발자국을 남기며 나는 직감했다. 오래도록 이 공간을 내가 애정 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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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넋을 잃고, 곳곳을 구경하며 푹 빠져있는데 시계를 보니 인터뷰 시간이 코앞이었다. 이제 좀 차분해져야 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오늘의 주인공을 만나야 할 시간. 김기중 대표님에게 연락을 드렸더니 잠시 위층에 있다고 곧 내려온다고 하셨다. 떨리는 마음으로 카운터 주변을 서성이고 있는데, 그가 나타났다. 어색한 표정으로 인사를 나누고 서점 옆에 자리한 카페 비블리오에서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우선 자기소개 먼저 부탁드려도 될까요?”
“안녕하세요. 구미 삼일문고의 대표를 맡고 있는 김기중입니다. 저는 원래 서점인은 아니었고, 자전거를 탔습니다. 2007년경부터 자전거를 탔고요. 2011년도부터 5년간 국제 대회에 도전을 했습니다. 히말라야 도전을 마지막으로 자전거는 취미로 타고 있는 중입니다. 이제는 자전거가 아닌 사회 속에서의 도전을 위해 움직이고 있어요. 자전거를 탔을 때는 많은 리스크를 감내하고서도 도전을 했는데, 막상 제 직장에서는 그렇지 못해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유창하다. 한 번의 막힘도 없이 술술 말을 풀어내는 그의 모습에 나는 깜짝 놀랐다.
“오기 전에 대표님이 쓰신 <행복한 고통>을 읽어보았는데요. 읽으면서 저도 함께 램을 달리는 기분이 들어서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만 같았어요. 이건 딴 소리지만 글도 잘 쓰시던데요?”
글을 잘 쓴다는 나의 말에 그는 작게 웃고는 대답했다.
“사실 원래는 지금 나온 형식의 글이 아닌 일기 식으로 글을 썼었어요. 그런데 제가 유명한 선수도 아니고 해서 어렵다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그래서 가독성을 좀 더 높이기 위해서 다시 쓰다 보니 지금의 책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대표님의 도전 정신과 많은 인내를 가지고 오랜 시간 대회를 준비한 것을 보며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때는 정말 자전거에 미쳤었죠. 그래서 가능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현재는 자전거가 아닌 서점에 미쳐 있는 상태지만요.”
서점에 미쳐 있는 상태라고 말하는 그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작은 책방을 만들 수도 있는데, 구미에 작은 규모가 아닌 대형 서점을 만들게 된 이유가 있으세요?”
“이 부분도 자전거와 맞닿아 있는데요. 저는 자전거를 탈 때 정말 제 모든 걸 다 쏟아부어서 달렸거든요. 서점도 마찬가지예요. 처음에는 서점을 큰 예산을 잡지 않고 시작하려 했어요. 그런데 막상 서점에 대한 준비를 하다 보니 예산이 점점 더 불어나더라고요. 그렇다고 해서 예산에 맞추어서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제 머릿속에 그려진 서점의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것들을 최대한 구현해보려고 하다 보니 제가 할 수 있는 최대치까지는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처음 할 때 공간을 충분히 준비해놓지 않으면 리모델링하는 상황이 왔을 때 정말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의 삼일문고 공간을 만들게 되었어요. 참 재미있는 건 처음에 저는 서점이 하고 싶어!라는 생각으로 서점을 연 건 아니라서 다른 사람들과 좀 달라요. 서점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는데, 우리나라의 기형적 서점 구조가 저를 서점을 만들게끔 만든 것 같아요. 오프라인 서점 공간은 점점 더 매출과 연관이 높은 참고서 비중이 늘어가고, 일반 서적들은 구색을 위해 가져다 놓는 정도로 변했어요. 그래서 독자들은 일반 책을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에서 더 사게 되고요. 구미도 마찬가지였어요. 도서정가제 전이라 할인 정책도 엉망이었고, 참고서의 비중은 과도하게 높아서 일반 책을 찾기가 힘들었어요. 그리고 구미에서 오랜 시간 서점을 운영하셨고 매장의 규모도 크다고 여겨지던 서점도 문을 닫아버릴 정도여서, 서점이 점점 더 사라지면 곤란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이 결국 서점을 여는데 큰 영향을 끼쳤어요.”
서점이 점점 더 사라지면 곤란하다는 그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얘기를 듣다 보니 그의 특이한 이력만큼이나 자전거와 서점의 상관관계가 궁금해졌다. 자전거와 서점의 닮은 점은 무엇일까. 그라면 그런 내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전거와 서점의 닮은 점은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꿈을 이루어가는 부분에서 자전거와 서점은 가장 닮지 않았나 싶네요. 그리고 제가 운동을 할 때도 그렇고, 서점도 혼자만 이루어 갈 수가 없더라고요. 제가 램에 도전했을 때도 같이 훈련과 준비를 도운 크루들이 있고, 서점도 마찬가지로 오픈하기 전까지 인테리어를 도와주신 건축가분들이 있고 서점을 열고 난 뒤에도 함께 해주는 직원들이 있다는 것에서 혼자였다면 이룰 수 없는 꿈이 아니었을 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아, 하나 더 닮은 게 있어요. 자전거도 그렇고 서점도 누군가가 먼저 걸어간 길이 아닌 개척해나가는 생각으로 하고 있거든요. 독자가 어떤 걸 원할지 잘 모르는 상황에서 이건 이러이러하지 않을까라는 가정을 세우고, 움직여나가는 부분이 램을 달렸을 때와 닮았네요. 램도, 서점도 주변에서 많이 말리고 반대했다는 부분도 닮은 점이 많네요. 램은 위험을 무릎 쓰고 목숨까지 걸어본다는 점에서 만류가 심했고, 서점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불안정해질 수도 있다는 부분에서 반대가 심했거든요. 만약 제가 자전거를 타보지 않았다면 반대를 돌파할 수 있는 에너지를 느끼지 못해서, 서점이라는 공간을 여는데 부딪힌 반대에서 더 큰 어려움이 따랐을 거 같아요.”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자전거가 그를 서점이라는 공간으로 결국 이끌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지금 자전거를 타고 달리지는 않지만, 서점이라는 공간을 통해 많은 책들 사이를 달리고 있다. 그의 눈빛에서 나는 지금 이 순간도 그가 달리고 있음을 느꼈다.
“홈페이지를 보니 ㈜삼일이 삼일 장학문화재단에 이어 오랜 시간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두 번째 문화 사업입니다.라고 나와 있던데, 삼일 재단과 삼일문고는 어떤 관계인가요?”
“이 부분은 아버님이 하시던 장학사업과 관련이 있는데요. 아버님이 장학사업을 시작하시면서 삼일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 당시 삼성전자 대리점을 하셔서 거기에서 ‘삼’이라는 단어를 따온 것도 있고, 삼일이라는 이름이 삼위일체라는 뜻도 있고 나 혼자 걸어가는 것이 아닌 함께 걸어간다는 뜻에서 삼일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서점이 있는 공간이 예전에 삼일빌딩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곳이기에 굳이 바꾸기보다는 그대로 이름을 이어나가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했어요. 아버지 세대의 그런 마음들을 다음 세대에도 이어가기 위한 부분에서도 가장 적합하다고 느껴졌고요. 현재 서점으로 따로 기부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삼일 재단의 또 다른 장학문화 사업이라는 생각도 하고 있고요. 사실 처음에는 삼일문고가 아닌 북 러버라는 이름도 생각했었어요.”
“아 정말요?”
“네. 그런데 예상보다 규모도 커져서 북 러버는 무산되었어요. 작은 공간으로 만들어지면 북 러버라고 하려고 했거든요. 그리고 서점이라는 이름보다는 문고라는 이름이 더 좋게 와 닿아서 삼일문고라는 이름으로 이 공간이 탄생하게 됐네요.”
북 러버라니. 전혀 상상도 가지 않는다. 삼일문고라는 이름이 너무 착착 입에 달라붙어서, 서점 입구에 삼일문고가 아닌 북 러버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대부분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으로만 서점에 대한 소식을 전하곤 하는데, 홈페이지까지 만드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사실 처음에 홈페이지까지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했었어요. 근데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은 지나간 소식들을 챙겨보기는 힘들잖아요. 그래서 누적된 데이터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게 필요하겠다 싶어서 홈페이지를 만들게 됐어요. 홈페이지라고 해서 그렇게 거창하진 않고요. 심플한 디자인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아, 나중에는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을 받기도 할 예정입니다.”
그의 말처럼 SNS 페이지들은 한 번 피드가 흘러가버리면 다시 그 내용들을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삼일문고의 소식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홈페이지가 있다는 것은 이곳만의 강점이 아닐까.
“SNS 계정과 홈페이지 관리는 대표님이 다 직접 하시는 건가요?”
“네. 제가 직접 다 관리하고 있습니다.”
“와, 정말 바쁘실 것 같아요.”
“네. 그래서 죽겠습니다 아주.”
죽겠다고 웃으며 말하는 목소리에서 그의 책 제목인 ‘행복한 고통’이 떠올랐다. 바쁘고 피곤한 일 투성이일 테지만 그에게는 지금 이 순간들이 정말 행복한 순간들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