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방 피노키오, 그리고 피노

서점원이 사랑한 도시 - 대구 (1)

by 석류


바람이 많이 불던 어느 날, 대구에 도착한 나는 긴장감으로 가득 찬 마음으로 피노키오의 책방지기인 피노님과 만나기 위해 약속 장소로 향했다. 원래는 오프라인 책방을 운영했지만 지금은 온라인으로 잠시 전환해 운영을 하는 그를 만난다는 건 설렘도 있었지만 걱정감도 컸다. 이제까지와는 달리 오프라인 책방이 없는 서점이었기에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인터뷰를 어떻게 이끌어나가야 하는 가에 대한 고민도 있었고. 그러나, 약속 장소에 들어서자 나의 그런 고민들은 한낱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장소로서의 책방만 현재 없을 뿐, 그의 눈빛은 오프라인을 운영하는 그 누구보다도 더 강렬한 열정으로 빛났으니까.



IMG_0927.JPG 인터뷰가 진행되었던 파이데이아 건물의 디얼 북카페. 이 공간에 피노키오의 간판이 걸려있던 때도 있었다.



“자기소개 먼저 부탁드려도 될까요?”

“안녕하세요. 저는 피노키오라는 그림책 서점의 책방지기 피노입니다. 한국 이름은 이희송인데, 예전에 직장을 다닐 때부터 사용했던 외국식 이름인 피노를 책방을 열면서도 쓰게 되었어요. 피노가 소나무라는 뜻인데, 제 이름에도 송이 들어가니 그보다 잘 어울리는 이름은 없더라고요. 피노키오라는 책방 이름과도 잘 어울리기도 하구요.”



자기소개를 들으며 나는 머릿속에 피노키오가 반갑게 손을 흔드는 모습이 자동으로 연상되었다. 그 이미지를 떠올리자마자 뭔가 몽글몽글해지는 느낌도 함께.



“맨 처음 서울 연남동에서 피노키오를 운영하기 시작하셨는데, 연남동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으세요?”

“제가 연남동을 선택했던 시기는 2012년도 말이었어요. 책방을 해야 되겠다고 결심하고 어느 동네에서 시작을 할까 한창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사실 서울이라는 도시가 워낙 큰 곳이어서 후보로 생각한 동네도 여러 군데였어요. 책방을 열기 위해서 가장 크게 생각했던 부분이 있는데요. 동네라는 느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아파트로 둘러싸이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외지 지도 않으면서 작은 책방을 할 수 있는 데면 좋겠다는 것이요. 여러 곳을 다녀보는데, 연남동이 제일 좋았어요. 책방을 열 당시의 연남동은 ‘어? 서울에 이런 데가 어떻게 있지? 그것도 홍대 근처에 이런 데가 있다니.’라는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연남동의 골목들도 정말 좋았고요. 작은 골목들이 주는 이미지들이 제가 어렸던 시절의 골목의 느낌을 연상시키게 했거든요.”



지금은 많이 변했지만, 그가 책방을 시작하던 당시의 연남동은 천천히 골목의 시간들이 흘러가는 느낌의 동네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연남동이라는 곳에서 첫 둥지를 틀었을 것이고.



“다른 책방과 달리 그림책이 중심이 된 그림책방을 운영하시게 된 이유도 궁금하네요.”

“동네책방이라는 이미지를 생각하며 책방을 시작했기에, 동네책방이면 연령대를 불문하고 동네 사람 모두가 볼 수 있는 책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서적들은 보는 연령대가 나뉘는데 반해, 그림책은 편하게 아이던 어른이던 누구나 편히 볼 수 있으니 좋았어요. 그림이 주는 특유의 힐링적인 요소도 정말 좋았구요. 그래서 그림책방을 하게 됐어요.”



그의 말처럼 다른 책들과 달리 그림책은 접근 장벽이 높지 않다. 내용이 어렵지도 않고, 읽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고. 남녀노소를 다 어우를 수 있는 장점을 지녔기에 그는 망설임 없이 그림책이 중심이 된 책방을 오픈했으리라.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서점이라는 공간에서 막상 일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은데 서점에서 일하게 된 계기가 있으세요?”

“사실 되게 복합적인 이유를 가지고 시작하게 됐어요. 서점이란 공간에 대한 추억과 로망도 있었고, 책으로 둘러싸여 지내는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는데, 책방을 처음에 하고자 생각했던 당시에 책방이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뉴스를 봤어요. ‘왜 사라지지? 사라지면 안 돼! 나는 안 사라지게 할 자신 있어. 내가 한 번 해볼까?’라는 오기도 가지고 있었구요. 서점이라는 공간에서 책을 통해 좋은 방향으로 사회가 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그리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그만두고, 내가 혼자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해보니 서점이라면 다른 사람 도움 없이 나 혼자서도 꾸려 나가는 게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절로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은 오기라고 표현했지만, 그런 포부를 가지고 책방의 세계에 뛰어든다는 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싶다. 작은 책방들이 곳곳에 많이 생기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사라지는 책방도 많은 지금 같은 시대에.



“현재는 오프라인 책방은 잠시 쉬고, 온라인으로 운영하고 계시잖아요. 보통은 스토어팜 같은 곳에 입점을 해서 운영하는데 직접 홈페이지까지 운영하시게 된 이유도 궁금하네요.”

“저도 그런 형태를 만들긴 했어요. 그런데 스토어팜은 왠지 책방의 느낌이 들지가 않았어요. 책의 물성에 집중한 게 아닌 상품으로써의 책이 소비되는 느낌 때문에, 그나마 홈페이지가 낫겠다 싶어서 홈페이지를 만드는 방향으로 하게 됐죠. 피노키오 오픈 초기에 인터뷰를 했을 때 절대로 저는 온라인은 하지 않겠다고, 종이책은 직접 봐야 한다고 얘기를 하곤 했었는데 지금은 어째 온라인을 하고 있네요. 그렇지만 책은 오프라인으로 봐야 한다는 믿음만큼은 현재도 변함이 없어요.”



지금은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으로 운영 중이지만, 그의 목소리에서 굳은 의지가 느껴져서 나는 멀지 않은 시일에 오프라인으로 다시 피노키오를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이 들었다.



“보통 한 도시에서 서점을 운영하는데, 서울 연남동에서 출발해 경주, 대구까지 여러 도시에서 피노키오라는 이름으로 책방을 운영하셨어요. 도시를 옮겨 책방을 오픈하는 일은 쉽지 않은데 이유가 있으세요?”

“사실 큰 이유는 없어요. 연남동이라는 동네가 변화하면서 제가 꿈꾸었던 책방의 모습이 잘 그려지지가 않게 됐어요. 그런 부분에 대한 스트레스가 생기면서, 책방을 옮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서울을 벗어나 서울 근교로 갈까? 아니면 지방으로 갈까? 고민하다가 경주를 택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서울을 벗어나게 된다면 제주도에서 책방을 하는 건 어떨까 생각을 했어요. 그러나 제주도도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른 곳이라 제가 제주도로 간다 하더라도 그곳에서 책방을 잘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들었어요. 그러던 차에 경주를 가게 됐는데, 오랜만에 마주한 경주의 모습이 너무 좋더라고요. 그래서 경주에서 피노키오를 다시 오픈하게 됐고, 지금 있는 대구는 다른 곳으로 가기 전 잠시 머무르는 단계라 보는 게 맞을 것 같아요. 따로 책방 공간을 오픈한 게 아닌, 원래 있던 공간을 빌려 책방을 운영했던 것도 그렇구요. 이렇게 도시들을 옮겨 다니며 책방을 한 건 제 개인적인 이유가 가장 커요. 현재는 어디에서 피노키오를 다시 시작할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시기예요. 일반적인 서점이 아닌 그림책 전문 서점이기에 좀 더 문화적 스펙트럼이 넓은 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 생각하고 있어요. 다시 서울 쪽으로 올라가게 될 가능성도 배제하진 않고 있고요. 그렇지만 서울로 다시 가게 되면 임대료에 대한 부분을 무시할 수가 없어서 그게 가장 큰 걱정이에요.”



오프라인에 대한 고민이 그의 목소리 곳곳에서 묻어 나왔다. 나는 그래서 다음 질문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조금은 조심스러워졌다. 며칠 전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다큐를 보았는데 거기에 피노님도 나왔기 때문이다. 혹시 달갑지 않은 질문일 수도 있어서 패스를 할까 했는데 인터뷰 질문지를 흘끔 본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



“어, 방송 보셨네요. 전 아직 못 봤는데.”

“네. 보면서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제가 책방을 옮기게 된 것도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부분이 꽤나 영향을 미쳤어요. 책방을 연남동에 오픈하면서 집도 연남동으로 이사했는데, 이사를 하고 나니 24시간을 전부 연남동에서 지내게 되더라고요. 24시간을 연남동에서 지내다 보니 연남동이 변화하는 과정들을 직접 몸으로 겪었는데, 원래 있던 사람들이 연남동을 떠나는 모습들을 보며 우울한 느낌이 들었어요. 동네 책방이다 보니 동네 사람들과의 유대관계가 제일 중요한데 기존의 사람들이 떠나면서 그런 부분들이 약해지는 게 참 안타까웠어요.”



동네책방을 표방하며 힘차게 연남동에서 문을 열었지만,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관광객은 늘어나는데 반해 기존에 연남동에 살던 주민들은 동네를 떠나는 현상. 그러다 보니 자연히 그가 처음에 생각했던 동네책방의 이미지는 무뎌지고, 피노키오가 하나의 관광지가 되어가는 모습을 아마 그는 견디기 힘들었으리라.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그의 마음이 어땠을지가 느껴져서 나도 절로 마음이 아팠다.



“운영해온 기간이 짧지 않은 만큼 단골도 많이 생기셨을 텐데, 책방을 옮기면서 새로 단골손님을 만들어 가는 것에 대한 어려움은 없으신가요?”

“솔직히 말하자면 손님들에게 너무 죄송해요. 지금은 비록 온라인으로 피노키오를 운영하고 있지만,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대부분의 고객분들이 다 오프라인을 운영할 때 알게 된 분들이에요. 책방을 옮길 때마다 짧은 시간이지만 단골손님들이 생겨나곤 하는데, 한 군데에서 정착을 못하고 있으니 책방을 찾아주시는 분들에게 미안하더라고요. 피노키오가 있어서 정말 좋다고 얘기해주시는 분들과 더 오래 함께하지 못하고, 공간을 계속 옮기다 보니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들어요. 친해진 동네 사람들과의 이별도 힘들구요. 그래서 이제는 다시 오프라인을 시작하면, 한 곳에 정착해서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한 곳에서 운영하는 것도 힘든데, 같은 지역 안에서의 이동도 아니고 전혀 다른 도시를 옮겨 다니며 책방을 운영하느라 많이 지쳤을 그. 그러나, 그는 자신의 지침보다는 책방을 찾아주는 사람들에게 한 곳에 정착해서 책방을 운영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 더 커 보였다. 그런 그의 마음들이 전해졌기에 지금도 꾸준히 피노키오를 찾고, 사랑해주는 이들이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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