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원이 사랑한 도시 - 대구 (2)
“피노키오의 블로그는 다른 책방의 블로그보다 더 책을 알기에 좋은 소통의 창구가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외국 원서가 많고, 그 언어를 알지 못하는 이상 각각의 설명이 필요하기 때문에 블로그가 마치 서가에 붙어있는 책 소개처럼, 하나의 책 소개 창구 같았어요. 블로그에서 보이듯이 외국 서적이 많은데 그 서적들의 정보는 어디서 수집하고, 수입해 오시는지도 궁금하네요.”
“처음부터 직접 부딪혔어요. 마음에 드는 책이 있는 출판사에 다이렉트로 연락을 했죠. 처음에는 책을 수입하기가 정말 힘들었어요. 유명한 곳도 아닌, 조그마한 책방에서 책을 달라고 하니 책 수급에 대한 어려움이 컸는데 한 군데 두 군데씩 뚫다 보니 지금은 훨씬 수월해졌죠. 저는 하루의 많은 시간을 새로운 책을 찾고, 그 책을 수입하려고 연락을 취하며 보내는데 그 시간들이 정말 좋아요. 기다렸던 책이 도착했을 때 직접 만져보고 살펴보는 과정에서 마음에 드는 책도 있고 마음에 들지 않는 책도 있는데, 마음에 드는 책을 만났을 때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이 좋아지죠.”
직접 만져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와도 같은 새로운 책들을 만나고, 그 책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처럼 정말 좋은 책이라는 느낌이 드는 순간들은 황홀 그 자체 일 것이다. 서점원으로 일했을 때 좋은 신간을 만나는 순간마다 짜릿함을 느꼈던 나처럼. 그처럼 책들이 주는 소소한 즐거움은 그가 책방을 이어나갈 수 있는 하나의 원동력으로 작용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노키오의 책들 중 고양이에 대한 그림책의 비중이 꽤나 높은데, 혹시 피노님 자신이 집사 셔서 그런 건가요?”
피노키오의 책들 중에는 고양이가 들어간 그림책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그가 집사여서 그런 이유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개인적인 궁금증이 들어간 질문. 내 질문에 그는 싱긋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책방을 시작하면서 고양이를 키우게 됐는데, 고양이가 제 인생의 많은 부분을 바꾼 것 같아요. 그런 부분 때문에 고양이 서적이 많은 것도 있어요. 그리고 책과 고양이는 정말 잘 어울리는 조합이라는 생각도 하고요.”
맞다. 책과 고양이의 조합은 그의 말처럼 정말 잘 어울린다. 책방의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을 쬐며 나른하게 누워있는 고양이의 모습을 상상하기만 해도 따스한 느낌이 들 정도니까.
“피노키오를 운영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어떤 게 있을까요?”
“역시 연남동에서 있었던 시절이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많네요. 지금은 책방들이 많이 생기고 있지만, 제가 오픈할 당시만 해도 책방이 감소하고 있던 시기여서 멀리서 일부러 응원차 찾아주신 분들이 많았어요. 어렵게 생긴 책방이 없어지면 안 된다고 같은 지역도 아닌데 찾아주셨던 분들요.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이 있는데, 50대 중반쯤 되는 분이셨는데 아기를 키울 때는 그림책이 재미있는지 몰랐는데, 그림책이 이렇게 재밌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해주신 분이 있어요. 아이가 어릴 때는 내용에는 공감하지 못하고 기계적으로 읽어 주기만 하셨던 거죠. 피노키오로 인해서 그림책의 재미를 알게 됐다고 말해주셔서 뿌듯했죠. 동네분들하고의 에피소드도 있는데요. 옹기종기 모여서 책방에서 고기를 구워 먹기도 하고 그랬어요.”
“책방에서요?”
“네. 덕분에 책에 고기 냄새가 다 배어버렸죠. 그래도 좋았어요. 정말 그때가 너무 좋아서 다시 돌아가고 싶은데,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죠.”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안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에서 지난 시간에 대한 그리움과 씁쓸함이 배어 나왔다.
“지금은 오프라인을 쉬고 계시지만, 오프라인을 운영하실 때 책방 문을 열며 하는 생각이 있었다면 무엇일까요.”
“예전에는 손님이 아무도 안 와도 책방을 연다는 생각만으로도 좋았어요. 그때는 마음의 여유도 많았던 때라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지금은 그런 느낌들이 많이 사라져서, 다시 오프라인을 열면 그 느낌들을 되살릴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어요. 책방 문 여는 게 너무 즐거운 그런 느낌요.”
내 손으로 직접 오픈을 하고, 클로즈를 하는 그런 순간의 기쁨. 현재는 오프라인을 쉬고, 온라인으로 운영하다 보니 더더욱 책방 문을 여닫는 느낌이 그는 그리울 테다. 어느 도시가 될지 모르지만 다시 오프라인에 자리를 잡게 된다면 그는 금세 사라진 즐거움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누구보다 책방에 대한 열망이 강한 사람이니까, 그는.
“다른 서점과는 차별화된 피노키오만의 특색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어, 계속 돌아다닌다는 거? 지금은 그게 가장 큰 특색이겠네요. 사실 저는 특색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얘기해준 것들을 보면 아이들만 보는 책이라는 그림책의 선입견을 벗어나 새로운 인식을 가지게 해주는 것들이 피노키오만의 색깔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림책도 이렇게 예쁘고 매력 있을 수 있다는 것요.”
사실, 나는 딱히 그림책에 대한 편견은 없었지만 피노키오에서 구입한 책을 보며 내가 기존에 생각했던 그림책의 이미지를 벗어나 그림책도 이렇게나 사랑스러울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일반 책과는 다른 매력을 지녔다, 그림책은. 손이 계속 간다는 모 과자처럼, 그림책도 한 번 빠져들면 쉽게 헤어 나오기 힘들다.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그림책의 마력에 흠뻑 빠져든 것처럼.
“여러 도시에서 책방을 운영하셨잖아요. 애착이 갔던 곳도 있을 텐데, 가장 애착이 갔던 동네는 어디세요?”
“역시 처음에 책방을 시작한 연남동이 아닐까 싶어요. 가장 오래 운영했던 만큼 많은 추억이 자리했기에 더 그런 것 같아요.”
오래 운영하기도 했지만, 그가 생각했던 동네 책방의 이미지를 처음으로 실현했던 장소이기에 연남동은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아있는 게 아닐까. 그와 대화를 나누며 나는 연남동에서의 그의 모습들을 상상해보았다. 도란도란한 느낌의 아늑한 조그마한 동네 책방 피노키오. 그리고 책방 문을 열고 들어가면 보이는 사랑스러운 그림책들. 상상만으로도 이렇게나 설레는데, 그는 오죽했을까. 피노키오의 가장 벅찼던 순간들을 아마 그는 연남동에서 맞이했겠지.
“피노님이 이제껏 살아오면서 읽은 책 중 이 책을 만난 건 행운이라고 생각이 드는 책이 있다면 어떤 책일까요.”
“행운이라 느껴지는 책은 정말 많은데, 제가 그림책방을 하다 보니 그림책으로 이야기하고 싶네요. <작은 나무>라는 제목의 팝업북이 있어요. 씨앗이 생기고, 나무가 자라고, 계절에 따라 나무의 색이 변하고 그런 내용인데요. 나무에 사람의 일생을 비유해서 똑같이 보여줬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한 권 더 있는데요. 최근에 제가 죽음이란 것에 대한 관심이 늘어서 그런 종류의 책도 많이 살펴보는데요. <나는 죽음이에요>라는 제목의 그림책이에요.”
“제목부터 적나라하네요.”
“이 책은 노르웨이 책인데요. 한국어로도 번역이 됐어요. 이 책의 저자는 병원의 소아병동에서 아이들에게 웃음을 주는 역할을 하는 분이에요. 직접 광대 복장 같은 것을 하기도 하고요. 죽음이 가까워져 오는 아이들에게 죽음이라는 걸 어떻게 하면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이 책을 만들었다고 해요. 죽음이라는 것도 삶의 일부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걸 알려주는 내용이에요. 그림책이라는 게 아무래도 타겟층이 어린 친구들이 많다 보니 죽음이라는 내용은 약간 금기시되는 게 있어요. 부모님들의 반응도 그렇고요. 왜 살아갈 날들이 많은 애들한테 이런 걸 보여주냐는 반응도 있구요. 그렇지만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직면해야 할 문제기에 그런 부분에서 정말 좋은 책이라고 생각해요.”
나도 요즈음 부쩍 죽음이란 주제에 관심이 많아져서 죽음에 관한 책들을 틈날 때마다 찾아보고 있다. 인간의 삶은 무한하지 않고 유한하기에 죽음은 떼려야 뗄 수 없다. 그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기에, 죽음에 관한 책도 많이 살펴보는 것이리라.
“피노키오에 책을 읽어보지 못한 사람이 와서 책을 추천해달라고 말한다면, 피노님이 추천해주고 싶은 책은 무엇인가요?”
“음, 쉽지 않은데요. 제가 아무리 추천해드려도 그 사람의 마음에 와 닿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니 어려운 것 같아요. 우선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다른 추천을 드려야 될 것 같아요. 한 권만 꼽는다면 앞에서도 얘기한 <나는 죽음이에요>를 추천드리고 싶어요. 삶에 대해서 고민해볼 수 있는 책이라서 아이가 아닌 어른이 읽어도 충분히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제가 힘들 때마다 읽는 책이 있는데요. <빨간 나무>라는 책이에요. 삶에 대한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느끼는 한 소녀가 희망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 내용이에요. 그 책을 읽고 나면 희망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되고, 힘이 되더라고요. 그림책들이기에 부담 없이 읽기에도 정말 좋아요. 두꺼운 책들보다 책장을 넘기는데 큰 힘이 들지 않거든요. 그림만 읽어도 충분히 내용을 상상할 수 있다는 게 그림책의 장점인 것 같아요.”
굳이 글자를 보지 않아도 그림만으로도 내용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고, 자신만의 스토리를 상상할 수 있게 만드는 그림책의 힘. 어쩌면 처음 책에 입문한 사람에게 그림책만큼 좋은 건 없을지도 모른다.
“피노님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서점도 궁금하네요. 현실에 없는 것이라도 괜찮아요.”
“제 개인적인 이상향인데요. 현실에 있는 서점이에요. 일본의 ‘이나기 서점’이요.
아주 시골에 위치해있는 서점인데, 근처에 주택가도 없이 달랑 서점 하나만 있어요. 강아지 한 마리, 고양이 한 마리랑 같이 주인분이 서점을 꾸려가세요. 정말 외진 곳에 위치해있는데도 사람들이 찾아가요. 책방을 찾아오는 손님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소소하게 운영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이나기 서점’은 제가 생각하는 책방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형태 같아요. 제가 그분의 삶의 모습을 제대로 알 수는 없지만, 보여지는 이미지만 봐도 스트레스 덜 받고 즐겁게 공간을 운영하는 느낌이 들거든요.”
이나기 서점을 이야기하는 그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번졌다.
“이제 질문도 끝을 향해 가네요. 여행자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여행 그림책이 있을까요?”
“벨기에 그림 책중에 <겨울 여행>이라는 책이 있어요. 기차를 타면서 보이는 바깥 풍경들을 6m 정도 길이로 만든 그림책이에요. 기차 길이에 맞춰서 길게 만들어져 있는 책인데요. 이 책을 펼치면 겨울에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느낌이 들어요.”
제목부터 여행의 느낌이 물씬 나는 <겨울 여행>. 겨울에 하는 기차 여행을 책으로 만들었다니, 설명만 들어도 설렌다. 이제 대망의 마지막 질문만이 남았다. 다음 서점을 추천받는 것.
“다음 코스로 가보았으면 하는 책방은 어디일까요.”
“경주의 오늘은 책방을 추천하고 싶어요. 사회복지를 전공하신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책방인데요. 책방을 대하는 두 분의 마음가짐에서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느껴지는 공간이에요. 서점이란 공간이 어떤 곳이라는 걸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게 해주는 곳이기도 했고요.”
경주를 많이 갔지만, 정작 겨울의 경주를 느끼러 간 적은 없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다음 책방인 오늘은 책방이 더욱더 궁금해졌다. 오늘은 책방은 경주의 겨울을 어떻게 담아내고 있을까.
*
처음의 긴장감과 달리 피노님과 인터뷰를 진행하며 나는 이제까지 했던 인터뷰 중에서 가장 편안함을 많이 느꼈다. 이제까지는 질문을 던지는 역할로만 존재했던 내가 역으로 질문을 받기도 하고. 짧은 글로는 다 담아내기 어려운 여러 이야기들을 나누며, 나는 오프라인으로 다시 만나게 될 피노키오가 한껏 기대됐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 서서 책방의 미래를 다방면으로 고민하는 만큼, 다음에 내가 그를 만나게 될 때는 지금보다 더 풍성한 느낌으로 책방을 채워가고 있지 않을까 싶다. 나중에는 단순히 글로만 책 소개를 하는 게 아닌 비디오 형식으로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겨가며 소개하는 걸 만들고 싶다고 얘기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나는 어느 도시가 되던 피노키오는 여전히 찬란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노키오에게는 이렇게 멋진 책방 지기, 피노가 존재하니까.